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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7-10-20 16:39


내 고향 광주

심현숙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를 갖게 되는 것처럼 고향을 갖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가슴에 고향을 담고 살듯이 나 또한 내 고향 광주를 늘 마음에 지니고 산다. 1980년 5월 광주 항쟁이 있기 전, 그 곳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무등산 기슭에는 작설차(雀舌茶)와 춘설차(春雪茶)로 이름 난 다원이 있고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옹은 이 산 속에서 차를 재배하고 손수 달이며 지내셨다. 광주 시민들은 그 분을 우러러 모시고 그것을 긍지로 삼는 순박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봄이면 한반도의 상징인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하여 무등산을 찬란하게 수놓았고, 여름철의 계곡, 가을철의 단풍 그리고 겨울의 설경 그 모든 것이 광주 사람의 정서를 아늑하고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특히 늦가을이면 온 산을 덮는 갈대밭이 황홀했고 등산객들은 줄을 잇는다. 바람에 물결치는 갈대밭은 마치 아이보리색의 실크 차일이 흔들리는 듯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광주 태생의 시인 김현승님은 자신의 고향을 가리켜 지구상에서 가을이 가장 긴 땅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가을을 많이 노래했고‘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의 저명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흔히 광주를 교육의 도시, 문화의 도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내 고향 광주를 애국의 땅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투쟁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이 그렇고 5.18 민주항쟁이 이를 말해준다. 

  최인훈의 ‘화두’(제2권)에서는 5.18 광주 항쟁의 시발을 이렇게 쓰고 있다. 

 '79년에 군사반란을 일으킨 자가 자기 부하에게 사살되었을 때 국민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역사가 낭비되기는 했을망정, 새 시대가 열리는 줄 알았다. 그 새 시대를 여는 과도기를 처리할 절차만을 관리해야 할 기득권 세력들이 우물쭈물 하면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을 때, 국민들은 초조하고 화가 났었다. 광주에서는 시민 전체가 정치적으로 깨어 있었다.'라고.


  군사 정권의 계승자들은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광주를 겹겹이 둘러싸고 고립시켜서 온갖 의도적 악성풍문을 유포시켜가면서 잔인하게 시민을 학살하였다.

  공자는 불의를 보면 자식이 아비와 다투지 않을 수 없고, 신하가 임금과 다투지 않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중국의 가장 위대한 스승들인 공자와 맹자가 가르친 것이 바로 대중 혁명이요, 이 혁명은 중국 역사를 움직여 온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호남인은 불의(不義)를 보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기질을 가졌다. 호남인의 이 기질 때문에 더 많은 희생을 내었지만 그 거대한 희생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5.18 민주항쟁은 3.1 운동이나 4.19 의거처럼 귀중한 역사인데도 한낱 폭도들의 반란 정도로 오랫동안 왜곡되어 왔다. 송지나씨가 쓴 드리마 모래시계가 TV 화면에 방영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새로 인식했다 하여도 그것 역시 광주의 진실에 정면으로 접근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광주 망월동의 공동묘지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너무 삭막하고 초라하여 보는 이는 누구나 눈살을 찌푸렸다. 광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겨레의 한이고 꼭 풀어야만 하는 조국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오랜 군사 정권은 민족을 동서로 분열시켰고 어디에서나 호남인과 호남 지방은 항상 푸대접에 찬밥 신세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민 초기에 어느 분께서 사소한 일로 나와 언짢은 대화가 오고 갔는데

“전라도 사람 취급해 버린다”며 화를 내셨다. 그 분은 나를 극도로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하였겠지만 나는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 그러셔요. 전라도 사람은 당신들과 뼈와 살갗이 다른 이민족인가요?’ 나는 속으로 가만히 외쳤다. 입 밖에 내어 큰소리로 말하지 못한 것은 예기치 못한 그 분의 한 면을 발견하고 실망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쩜 일종의 연민이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오랜 세월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하여 남편을 따라 진해로 직장을 전출해 갔을 때의 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성이나 이름을 묻는 동시에 고향을 묻곤 한다. 부임 인사차 교장실에 들렸는데 그 어른께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 선생 고향은 어디시오?”

  “광주입니다.”

  “전라도 광주요?”

  “예.”

  “으음…….”

  그 며칠 후 교무실에 들르신 교장 선생님께서는“전라도 사람들은 양달과 응달이 있다고 하던데 심 선생은 양달이드구먼…….”하시며 만족하신 듯 웃으셨다.

  생전 처음 고향을 떠나 타향사람으로부터 내가 몰랐던 내 고향에 대한 평을 듣고 좀 당황하고 기분이 언짢았으나 그 뒤 별 탈 없이 4년을 그 곳에서 보냈다.

  역사학자인 토인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스런 것으로 지역적,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꼽았다. 그렇다. 그것처럼 꼴불견이 또 있겠는가. 다른 지방 사람들은 모두 양달이고 왜 전라도 사람들만 유독 양달과 응달이 있단 말인가.

  외국에 막상 나와 사니 내 가슴속에는 늘 향수가 고질병인양 도사리고 있다.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갈망하는 고향은 내 조국 한국이요, 서울이요, 그리고 광주이다. 때로는 내 남편의 고향인 대구이거나 내 아이들의 고향인 진해일 수도 있다.

  모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이 광활한 땅에 와 보니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또 이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진 창피한 일인가를 새삼 절감한다.


  내 고향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모태이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온 국민의 고향이 될 것이다. 망월동 국민묘지에 누워 계신 영령들은 말이 없지만 전라도 광주는 조국 민주화의 횃불이 되어 영원히 온 겨레를 비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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