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왠지 자꾸 서운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냥 넘어가도 될 만한 일에도 그렇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도 서운해지곤 한다. 오늘도 아내의 처사가 당연한 것인데도 괜스레 심통이 났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주말에 친정어머니 생신엘 간다고 했었다. 난 세미나가 있어 가지 못하게 되었고, 아이들도 다들 멀리 가 있으니 아내 혼자 가는 것으로 해 두었었다. 헌데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처제와 처형한테서 계속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언제 갈 것이며 누구 차로 가겠느냐 인가 보다. 그런데 그런 광경을 보면서 슬그머니 심통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내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기도 했다.
아내는 나와 결혼 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신을 합해 80여 회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부모님 생신을 해 드릴 수 없었던 내 심정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것 같다. 당연히 세상에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고 살아있는 사람만 있는 사람일 터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런 것에도 안타까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큰 어머님 작은 어머님 생신에 다니면서도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어 뜸해지고 말았다. 마치 어린 날 학교에서 어버이날에 다들 빨간 카네이션 꽃을 만드는데 나만 하얀 카네이션 꽃을 만들던 때만큼이나 서글퍼졌던 것이다. 그때도 부끄러운 일은 아녔을 텐데도 부끄러웠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것이 내 탓도 아니건만 부모님이 다 있는 저들 앞에서 난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인 양 주눅이 들곤 했다. 책상 밑에 숨기며 하얀 카네이션을 만들던 어린 마음은 나를 아득한 슬픔의 나라로 가게 했었다.
그런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가셔지지 않았고 그 때의 슬픔이나 안타까움은 어른이 된 후에도 상흔(傷痕)처럼 남아 나를 아프게 했다. 그래서일까. 35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와 나인데도 가끔씩 절대 타인(絶對他人)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 것도 그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남편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없느냐는 투정인 셈이다. 물론 아내는 그게 하루 이틀 전의 일이냐며 오히려 핀잔을 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신이 안 되면 돌아가신 날이라도 제대로 챙기느냐 하면 그도 그렇지 않다. 가족들이 다 크리스천이지만 돌아가신 부모님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신 날에 예배를 드리는 것도 늘 마음이 맑지 못했다. 그래서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다 나도 아내도 그 날을 놓치고 만 날엔 괜히 화가 나 엉뚱한 짓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나라 치더라도 며느리 된 입장에선 얼굴 한 번 못 본 시부모라 해도 한 해 한 번쯤이라도 예의를 갖출 구실거리는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항의요 불만인 셈이었다.
어린 날엔 배가 자주 아팠었다. 할머니는 그런 내 배를 쓸어주곤 했다. 그러면 감쪽같이 아프던 배가 나아버렸다. 나는 가끔씩 아프지도 않은 배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며 할머니가 배를 쓸어주는 걸 즐겼다. 때로는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물수건을 얹게도 하고 콜록콜록 거짓 기침을 하여 불에 구운 배 맛을 즐기기도 했다. 중학교까지 할머니에게서 다니면서 가끔씩 할머니를 성가시게 했던 것도 무언가 채워지잖은 허전함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 허전함을 달고 산 나여서 인지 커서도 여전히 그걸 채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변하기도 하련만 내 여린 심성은 그러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은 할머니께 거짓 기침을 하고 배가 아프다고 했던 것처럼 세월이 이만큼 흘러버린 지금에도 누군가에게 그러고 싶은데 그걸 받아줄 대상이 없어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아내가 그런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것이 더 서운했다.
아내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은 아이 엄마가 되어있는 딸아이나 역시 아빠가 되어있는 아들에게도 그런 서운함이 곧잘 일어난다. 전화 목소리에서도 그렇고 무심코 나눈 대화 속에서도 서운해지곤 한다. 아내는 그런 나를 두고 할아버지가 되더니 손녀들을 따라가는지 삐치기도 잘한다고 또 핀잔이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행복놀음이 아닐까 싶어진다. 행복한 투정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럴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말이다.
장성한 아이들이라도 부모는 언제나 힘 있어 보이고 커다란 나무 같이 든든한 존재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저희들보다 이미 한참이나 작아지고 약해져 있다는 것을 언제쯤이나 알게 될까. 나도 그랬었다. 그래서 어린 날에 보던 집안 어른들이 그토록 커 보였는데 내가 결혼을 한 후 그분들을 찾아 뵈었을 땐 그 큰 모습이 간 곳 없었다.
소나무 등걸처럼 거칠어지고 메말라 버린 그분들의 손을 잡으면서 사람이 그렇게 늙어가고 쇠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이제 나도 어느덧 그분들 모습에 와 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결코 많지 않을 나의 날들이다. 그래서 더 쉽게 마음이 여려지고 아내의 핀잔에도 속수무책인 내 처신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서운함이란 마음에 모자라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라고 하지만 마지막 기댈 대상에 대한 바람이 아닐까. 아내가 친정에 다녀오면 또 그곳 이야길 한참 할 텐데 혹시 또 나만 소외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화분에 물이나 흠뻑 주어야겠다. 혹시라도 내 손길이 덜 미친 것들이 있어 서운하지 않게 흠뻑 흠뻑 고루 고루 물을 주리라. 그러고 나면 내 마음도 풀릴지 모른다.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내 눈에도 보일 테니 말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였다는 듯 벌써부터 녀석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늘을 보니 유난히도 맑고 파랗다. 벌써 가을인가. 그렇다면 내 서운함은 그토록 더워 못 견디겠다 했음에도 가버린 여름에 대한 서운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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