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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와 머리싸움

아청 박혜정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6-17 16:13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너구리를 라쿤(Raccoon)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 말하는 너구리는 ‘라쿤을 닮은 개(Raccoon Dog)' 이고 꼬리에 줄무늬가 있는 캐나다에서 볼 수 있는 너구리는 '미국 너구리(America Raccoon)'라고 부른다. 이 두 종류의 너구리는 이름 말고는 관련이 없다. 너구리는 개과이고 미국 너구리는 너구리 곰과이다. 너구리는 생김새 때문인지 능글맞은 이미지로 사람들의 별명으로도 쓰인다. 또 만화영화 캐릭터로도 많이 등장해서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야생 너구리의 수명은 보통 2-3년이고 애완용으로 키우는 경우에는 20년 이상을 산다. 야생의 경우 사냥이나 교통사고가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너구리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야행성 동물이다. 사람에게는 온순하지만 개나 다른 동물에게는 사납다. 언제인가 노스 밴쿠버의 친구 집에서 정담을 나누고 있는데 리빙 룸 창가에 같이 동참하듯 앉아 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또 나무나 암벽을 잘 타서 10층 아파트에 올라와 베란다(veranda)에 침입한 사례도 있다.

 작년 여름, 잔디에 물을 주려고 수도를 틀어 놓았는데 너구리가 손을 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귀여웠던지 만화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눈 주위의 다크써클은 뭔가 간청하는 듯한, ‘장화신은 고양이’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때는 비가 안 와서 걱정을 하던 시기라 주위에 물이 없어 목이 말라 그러는 줄 알고 마음껏 먹으라고 좀 더 물을 틀어 놓았었다. 그런데 너구리는 먹을 것을 물에 씻어 먹는 습성이 있단다. 그렇지만 물이 없을 때는 그냥도 먹는단다. ‘그럼 그 때도 무엇을 먹으려고 씻는 중이었을까?’ 인터넷 기사 중 어떤 사람이 준 솜사탕을 물에 씻어 먹으려다 다 없어져 황당해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어느 날, 우리 집 주차장에 대(大)자로 누워 있는 너구리를 보았다. 너무 가까이는 무서워서 못 가고 조금 떨어져서 보니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 지켜보다 걱정이 되어 동물 보호소 같은 곳에 전화를 했다. “너구리가 죽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나요?” “몇 시간 후에도 그대로 있으면 다시 전화하세요.” 2시간쯤 지나 나가 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너구리의 특성을 알아보니 살이 많아 움직임이 둔하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도망가기 보다는 죽은 척을 한다고 했다. 아마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집 주위를 외롭게 너구리 1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니더니 얼마 후부터 새끼까지 대동해서 5마리가 같이 다니곤 했다. 가족이 같이 다니는 것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집 뒷마당에 ‘응가’를 하고 가곤 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는데 치워도 또 다시 반복이 되었고, 심지어 그 부분에는 풀이 자라지 않아 잔디밭이 꼭 영구 머리 같았다. 너구리의 또 다른 습성이 한 번 다니는 길은 매일 다니고, 화장실을 만들어 대소변을 한 곳에서 해결한 후 그곳을 정보교환 장소로 이용을 한단다.

 ‘이걸 어찌한다? 밤 새 환하게 불을 켜둘까?’ 단 기간이라면 몰라도 매일 밤 뒷마당을 훤하게 불을 켜두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다가 스포트라이트처럼 태양열을 이용한 랜턴(?) 같은 것을 보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샀다. ‘그 부분을 집중해서 무대처럼 밝게 해 놓으면 부끄러워서? 아니면 야행성이니까 밝은 것을 싫어해서 그만 두겠지.’ 하지만 덜 하는 것 같아도 계속 되었다. ‘그 랜턴(?)이 요즘 비가 많이 와서 빛이 어두워서 계속 화장실로 이용하기로 했나?’ 날씨가 화창해져 태양열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너구리 화장실을 조준해서 두었다. 다음 날 나가 보니 또 다시 화장실로 사용하였고 나를 비웃기라도 한 듯 랜턴이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너구리가 손으로 탁 쳐서 날려 버린 듯한 모습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너구리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야간 헤드라이트를 켜도 피하지 못 한다나….

 너구리는 자신의 영역을 누가 침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이미 사람의 영역이라도 배변의 목적으로 한 곳을 택하면 그곳을 고수한단다. 심지어는 지붕을 뚫고 들어가 코를 골며 자고 쿵쾅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한단다. 그래서 너구리를 쫓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 사람이 잡아서 멀리 보내도 다시 왔다고 한다. 집 주인 생각에 냄새가 나면 안 올 것 같아 지붕에 좀약을 한 가득 넣어 두었는데도 퇴치를 못 했다고 한다. 그런 것에 비하면 양호하지만….

 여기 저기 퇴치법을 물어 보니 곰 똥을 갖다 놓으면 된다는데…. 등산을 하다가 보긴 했지만 가능할지. 아직 시도는 안 해 보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여기 저기 인터넷을 찾다 보니 농작물 피해를 줄이려고 큰 토끼 인형을 만들어 허수아비처럼 세워둔 분, 너구리를 쫓는 전자파 막대기를 세워 놓은 분, 홈 디포 가든 섹션에 가면 3인치 와이어 망을 사서 울타리처럼 치던지 잔디 위에 깔아서 퇴치한 분등의 사례를 보고 잔디를 예쁘게 만들려면 그렇게 해야 할 것도 같은데 괜히 너구리가 화장실이 없어졌다고 실망하거나, 화를 낼 것도 같고. 아직은 어찌해야할 지 모르겠다. 한국에는 너구리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심지어 너구리 카페까지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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