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겨울 아침 골든 이어 산 순백의 봉우리가 여명의 햇살 속에 눈부시다. 푸른 대기 속에 고요하고 깊은 기상은 티벳의 카일라스가 되어 신비하게 다가온다. 하늘에 닿을듯한 네 개의 눈 덮인 봉우리들은 언제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산속 나무들이 깊이 뿌리 내리고 산새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저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유리창 문을 통해 눈부신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일은 내 마음에 평화를 심는 시간이다. 이 겨울 ‘비움으로써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산의 소리가 멀리서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지난 연말, 나는 이웃 친구였던 마사코의 카드를 우편함에서 꺼내 들고 반가움보다는 미안함에 할말을 잊고 있었다. 못 보고 지낸 몇년 동안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던 마사코가 올해도 어김없이 카드를 보내온 것이다. 나는 곧 그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과 빨리 한 번 만나자는 내용의 새해 카드를 보내야만 했다. 10여 년 같은 동네에 살다 내가 이사를 오며 멀어진 우리의 인연을 그녀는 긴시간 동안 놓지 않고 있었다. 함께 보낸 지난날들을 잊지 못하는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다. 친구 관계의 지속성이 지란지교의 덕목이라고 믿는 그녀의 무구함은 나와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했다.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저 먼 기억 속의 친구들이 빙긋이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친구라는 이름 앞엔 세월이 흐르지 않아 지금도 서로의 이름 부르는 정겨운 얼굴들!
유난히 추운 올겨울, 오랜 친구와 통화하며 받은 감동의 여운은 봄날 햇살처럼 지금도 나를 감싸고 있다. 서울 생활을 고집하던 그 친구는 귀촌 계획을 알리며 나와 이웃해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부푸는 이 계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는 아득한 고향의 산과 들에서 뛰어놀던 그때를 다시 한번 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이른 봄날 뒷동산 하얀 찔레꽃 덤불 옆에서 소꿉 놀든 그 평화롭든 시절을 갈증처럼 꿈꾸며. 우리의 50년 지음지기 인연은 아름답던 그 시절과 현재의 삶을 함께 그리워하고 위로하다, 이제는 노후를 계획하는 기쁨도 공유하게 된 것이다. 한 시인은 젊은 날 이별을 고하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우정이란 진정 위태로운 잔에 떠 놓은 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서로의 다른 생각과 형편을 비교하며 감정의 갈등을 겪다 결국엔 이별을 선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와 함께 겪은 그 많은 추억과 몇 번의 어긋남은 우리의 관계를 발효시킨 밑거름이었다. 무던하고 속깊은 그 친구는 내가하는 모순된 말도 진의를 살펴 이해하려 했고, 내 결점을 알면서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우린 이제 나를 비우려 애쓰며 한 발자국씩 물러나 서로를 바라보는 나이 듦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스스로 부족하기에 더욱 정겨운 우리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마음 둘 곳 임을 알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인 모습을 서로 고마워하며!
‘친구야! 장독대 위로 살구꽃이 분분히 날리는 봄날, 우리 어린 날의 평화롭던 기억들을 끝없이 떠올려보자!’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나 홀로는 많이 외로웠을 생
함께여서 행복한
참 고마운 친구여
나의 소중한 길벗이여
(벗의 노래, 정연복) 중에서
지난 연말, 나는 이웃 친구였던 마사코의 카드를 우편함에서 꺼내 들고 반가움보다는 미안함에 할말을 잊고 있었다. 못 보고 지낸 몇년 동안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던 마사코가 올해도 어김없이 카드를 보내온 것이다. 나는 곧 그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과 빨리 한 번 만나자는 내용의 새해 카드를 보내야만 했다. 10여 년 같은 동네에 살다 내가 이사를 오며 멀어진 우리의 인연을 그녀는 긴시간 동안 놓지 않고 있었다. 함께 보낸 지난날들을 잊지 못하는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다. 친구 관계의 지속성이 지란지교의 덕목이라고 믿는 그녀의 무구함은 나와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했다.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저 먼 기억 속의 친구들이 빙긋이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친구라는 이름 앞엔 세월이 흐르지 않아 지금도 서로의 이름 부르는 정겨운 얼굴들!
유난히 추운 올겨울, 오랜 친구와 통화하며 받은 감동의 여운은 봄날 햇살처럼 지금도 나를 감싸고 있다. 서울 생활을 고집하던 그 친구는 귀촌 계획을 알리며 나와 이웃해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부푸는 이 계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는 아득한 고향의 산과 들에서 뛰어놀던 그때를 다시 한번 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이른 봄날 뒷동산 하얀 찔레꽃 덤불 옆에서 소꿉 놀든 그 평화롭든 시절을 갈증처럼 꿈꾸며. 우리의 50년 지음지기 인연은 아름답던 그 시절과 현재의 삶을 함께 그리워하고 위로하다, 이제는 노후를 계획하는 기쁨도 공유하게 된 것이다. 한 시인은 젊은 날 이별을 고하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우정이란 진정 위태로운 잔에 떠 놓은 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서로의 다른 생각과 형편을 비교하며 감정의 갈등을 겪다 결국엔 이별을 선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와 함께 겪은 그 많은 추억과 몇 번의 어긋남은 우리의 관계를 발효시킨 밑거름이었다. 무던하고 속깊은 그 친구는 내가하는 모순된 말도 진의를 살펴 이해하려 했고, 내 결점을 알면서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우린 이제 나를 비우려 애쓰며 한 발자국씩 물러나 서로를 바라보는 나이 듦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스스로 부족하기에 더욱 정겨운 우리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마음 둘 곳 임을 알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인 모습을 서로 고마워하며!
‘친구야! 장독대 위로 살구꽃이 분분히 날리는 봄날, 우리 어린 날의 평화롭던 기억들을 끝없이 떠올려보자!’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나 홀로는 많이 외로웠을 생
함께여서 행복한
참 고마운 친구여
나의 소중한 길벗이여
(벗의 노래, 정연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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