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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6-05-21 11:43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부모 노릇을 잘하는 걸까? 이 질문 앞에선 누구나 하나같이 어렵다는 말부터 꺼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일이면서도 가장 힘들어하는 게 바로 이 부모 노릇이 아닌가 싶다. 특히 낯선 문화권에서 아이들을 키워야만 하는 이민자들은 그 어려움이 더 배가 되는 듯하다. 도시도 아닌 이 북쪽 시골까지 와 아이들을 키우며 좌충우돌하는 내게 캐네디언 친구들이 들려줬던 조언들을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레슬리란 친구는 두 아들이 있다. 이 부부의 특징은 둘 다 엄청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부모를 닮았던 것인지 무난하게 자라준 큰아들은 UBC를 거쳐 스탠포드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지금은 호주에 있는 대학에 교수로 갔다. 하지만 문제는 둘째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시급 8불을 주는 가게에 취직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계획 없이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런 아들이 너무 실망스러워 집에선 절대 담배를 피울 수 없다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매일 밤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술집을 순례하기 시작했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그래서 얼른 자기들이 정한 법을 집 안에서만 못 피우지 정원에선 괜찮다로 바꿨다고 한다. 아들이 옆길로 새면 더 대화를 하고, 같이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렇게 강하게 밀어가면 아들이 더 멀어져 심각한 길로 빠질 수 있다 판단했던 것이다. 여하튼 그 후론 아들이 정원에 나가 5분 정도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고, 결국 2년 후엔 그 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에 갔다. 그리고 지금은 직업치료사가 되어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부모노릇은 이러하다. “네 머릿속에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에 대한 이미지를 정확히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 내가 그릴 수 있는 3가지 유형의 부모가 있다. 첫째는 브릭(벽돌) 같은 부모이다. 옳고 그름이 확실한 엄격한 부모이다. 생각해 봐라. 아이들이 벽돌에 가서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깨지고 만다. 지나친 간섭과 엄격함은 결국 아이들을 망치고 만다. 그럼 둘째로 해파리 같은 부모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자유롭다. 그런 부모 밑에선 아이들은 자유롭긴 하겠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질서를 배우질 못한다. 그러니 그런 부모도 아이들을 망치고 만다. 그래서 내가 항상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는 ‘척추 같은 부모’이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지만 꼭 필요할 땐 가이드를 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점은 있으되 구부러질 줄도 알고 펴질 줄도 아는 그런 유연성을 지닌 부모이다.” 자유와 가이드의 접목? 난 여기까지 듣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자식이 담배를 피우면 스스로 뭔가를 깨닫고 금연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담배로 시작해서 술과 마약으로 더 진전되지 않도록 자식을 집 밖으로 밀어내지 말고 가능하면 집 안으로 끌어들여라. 이 부부가 정원에선 담배를 피우도록 허락한 것이 바로 아들의 자유와 부모의 가이드가 접목된 부분이란 말이었다. 자식이 머리에 빨강, 노랑 염색을 하고 다닌다. 그냥 놔둬라. 머리는 다시 자라면 되는 거니까. 자식이 이상한 옷을 입고 다녀도 그냥 놔둬라. 옷은 언젠간 갈아입으면 되니까. 한창 젊을 때는 호르몬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아이들을 미치게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기 속에서 끊고 있는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건 방출할 수 있도록 최대한 허락해라. 그러나 영구하게 입을 손상이 있다면 간섭하고 들어가라. 하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허락을 했기 때문에 그땐 간섭이 들어가도 중재가 좀 수월해진다. 만약 문신을 하겠다 하면 이건 영구한 것이니 일회용문신을 붙이면 어떨지 아님, 할머니를 불러 피부가 탱탱할 때 가슴에 했던 고양이 문신이 늙어서 피부가 축 처지고 보니 그만 흉한 기린이 되어버렸더라는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도 방법이다. 여하튼 다양한 접근을 통해 아이들의 자유와 부모의 가이드가 우리 등의 척추처럼 유연하게 이루어지도록 해라. ‘난 척추 같은 부모다’란 이미지를 항상 머리에 그리며 그때그때 답을 찾아가라는 것이 그녀의 부모 노릇 팁이었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 신디는 자식이 옆에서 저지르는 많은 말썽에 감사하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깨지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그런 아이들이 있다. 어차피 깨져야 한다면 부모 옆에서 깨져야 고쳐주기가 쉽지 만약 독립한 후에 깨지면, 주위에 성숙한 사람이 없으니 회복도 더디고 때론 더 심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부모 옆에서 최대한 깨지고 성장한 후에 독립하는 것을 더없이 기뻐하라는 말이었다.

나라면 어떤 경지에 올라야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연한 부모 노릇을 여기 캐나다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칼릴지브란이 쓴 ‘예언자’를 보면 부모는 활이고 아이들은 화살이라 한다. 그 활에 화살을 끼워 과녁을 향해 당기는 자는 물론 신이다. 내 자식이어도 내가 과녁을 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신이 겨냥하는 그곳으로 화살이 정확히 날아가도록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구부러지되 흔들리지 않도록 버텨주는 활이 되어야만 한다. 어쩜 그 구부러진 활의 모양이 척추와도 닮아있다. 아마 같은 이치를 품고 있어서일 거다. 언젠가 내 자식들이 옆길로 새 나갈 때, 레슬리처럼 자식의 자유와 내 가이드를 적절하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 신디처럼 자식이 저지르는 말썽에 기뻐할 수 있을지. 그때가 되면 제발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이 모두를 이해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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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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