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섬진강 변은 서서히 내리는 어둠 속에서 비안개를 뿌리며 젖어든다. 산등성이에는 마치 꽃 구름이 내려앉은 듯 신기루인 듯 희뿌옇게 군데군데 매화 꽃들이 피어있다. 아직 이른 듯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매화의 자태는 나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강 건너 매실 마을 기슭에 허연 무엇인가가 눈길을 잡는다. 매화의 무리다. 봄비는 속절없이 추적 거리고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이 세상 어디에 누워있다는 실감이 난다.
아침 일찍 매화를 보러 갔다. 비는 아직 부슬거리지만, 기분은 좋았다. 회색이 더 어울리는 풍경이 흑백 사진을 보는 듯 푸근하다. 비 내리는 섬진강 변도 아름답다. 이른 시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소리가 맑게 가슴에 와 닿는다. 잘생긴 매화 가지를 잡고 사진을 찍다 놀랄 발견을 했다. 우연히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이렇게 감미로운 냄새를 가지고 있다니……. 꽃은 향기로 나비와 벌을 유혹하고 열매를 맺는 평범한 사실이 오늘은 유난히 나를 감동하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벌들이다. 꽃봉오리가 활짝 핀 꽃에는 벌들이 날아가지를 않는다. 벌어질 듯 말 듯한 꽃들만 찾아가는 것을 보고 젊음은 그래서 돈으로도 못산다고 했던가? 매화에 이런 향기가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자연 속에서 무리 지어 피어있는 꽃들에서 맡아보지 못하던 진한 냄새가 꽃잎 하나를 코에 대고 음미하니 향기가 진동했다.
매화 화분을 샀다. 두 개가 다 홍 매화이다. 흰색은 너무 외로워 보여서다. 하나는 이미 꽃 몇 송이를 피우고 있고 다른 하나는 봉오리만 있었다. 열심히 물을 주고 기다리니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테이블 위에다 올려놓고 책이라도 읽다 보면 조그마한 꽃들에서 그리도 진한 향이 나오는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누가 매화꽃보고 청순한 여인 절개 등을 노래했던가! 이리도 매력적인 향을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매화는 청순하면서도 가련한 외모 속에 뜨거운 욕망을 지닌 여인 같은 꽃인가 보다. 같은 홍매화인데 향이 달랐다. 하나는 아주 진한 분 냄새 같은 데 다른 하나는 좀 더 가벼우면서 상쾌한 냄새가 났다. 두 향을 여인에게 비교해보았다. 하나는 3, 40, 대의 성숙한 여인이라면 다른 하나는 사춘기의 풋풋한 소녀 같은 느낌이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답고 좋다고 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며칠 동안 매화 향기에 푹 빠져서 행복했다. 그 속에서 책을 읽어도 좋고 낮잠을 자도 좋았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와서 현관문을 여니 전에 나지 않던 향기가 집 안 가득했다. 처음에는 무슨 냄새인지 몰랐다. 매화 향이었다. 나는 매화분 두 개로 굽이굽이 휘도는 섬진강 가에서 매화 꽃 속을 거니는 듯 향기에 취해서 즐거웠다. 그런데 며칠도 못 가서 매화는 떨어지고 행복도 가버렸다. 어느 날 아침 허망하게도 꽃잎은 떨어지고 애처롭게도 시들은 꽃들만 가지에 남았다. 외로운 꽃잎들은 안개구름처럼 주위에 흩어져있다.
내 마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즈음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다시 우울하면서 복잡한 시간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병원, 집을 오가면서 매화 분을 살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보니까 파란 잎을 피우고 있었다. 너무나 신기해서 살펴보니 그동안 무심했던 나에게 초록의 빛깔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푸른색이 희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곧 열매도 맺겠지, 매실이 열리면 매실주를 담을까? 매실 장아찌를 할까? 요렇게 조그마한 나무에서 무슨 술이야 하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생각의 실마리도 풀리지 않고 나를 찾지 못한 채 방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잎들도 제법 커지고 푸른색도 날로 더해간다. 희망도 매화 분에다 걸어본다. 다 잘 될 거야 죽으란 법은 없으니까 마음을 다스려 본다. 하지만 한쪽으로 불안한 마음은 또 고개를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에는 이른 시간에도 많은 차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간다. 내 인생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오늘도 허망한 생각과 싸움을 한다. 행복으로 가겠노라고, 그 사이로 매화 잎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반짝이면서 인사한다. "이렇게 눈 부신 햇살이 있고 또 살아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내가 열매를 맺을 때쯤이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아침 일찍 매화를 보러 갔다. 비는 아직 부슬거리지만, 기분은 좋았다. 회색이 더 어울리는 풍경이 흑백 사진을 보는 듯 푸근하다. 비 내리는 섬진강 변도 아름답다. 이른 시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소리가 맑게 가슴에 와 닿는다. 잘생긴 매화 가지를 잡고 사진을 찍다 놀랄 발견을 했다. 우연히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이렇게 감미로운 냄새를 가지고 있다니……. 꽃은 향기로 나비와 벌을 유혹하고 열매를 맺는 평범한 사실이 오늘은 유난히 나를 감동하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벌들이다. 꽃봉오리가 활짝 핀 꽃에는 벌들이 날아가지를 않는다. 벌어질 듯 말 듯한 꽃들만 찾아가는 것을 보고 젊음은 그래서 돈으로도 못산다고 했던가? 매화에 이런 향기가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자연 속에서 무리 지어 피어있는 꽃들에서 맡아보지 못하던 진한 냄새가 꽃잎 하나를 코에 대고 음미하니 향기가 진동했다.
매화 화분을 샀다. 두 개가 다 홍 매화이다. 흰색은 너무 외로워 보여서다. 하나는 이미 꽃 몇 송이를 피우고 있고 다른 하나는 봉오리만 있었다. 열심히 물을 주고 기다리니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테이블 위에다 올려놓고 책이라도 읽다 보면 조그마한 꽃들에서 그리도 진한 향이 나오는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누가 매화꽃보고 청순한 여인 절개 등을 노래했던가! 이리도 매력적인 향을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매화는 청순하면서도 가련한 외모 속에 뜨거운 욕망을 지닌 여인 같은 꽃인가 보다. 같은 홍매화인데 향이 달랐다. 하나는 아주 진한 분 냄새 같은 데 다른 하나는 좀 더 가벼우면서 상쾌한 냄새가 났다. 두 향을 여인에게 비교해보았다. 하나는 3, 40, 대의 성숙한 여인이라면 다른 하나는 사춘기의 풋풋한 소녀 같은 느낌이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답고 좋다고 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며칠 동안 매화 향기에 푹 빠져서 행복했다. 그 속에서 책을 읽어도 좋고 낮잠을 자도 좋았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와서 현관문을 여니 전에 나지 않던 향기가 집 안 가득했다. 처음에는 무슨 냄새인지 몰랐다. 매화 향이었다. 나는 매화분 두 개로 굽이굽이 휘도는 섬진강 가에서 매화 꽃 속을 거니는 듯 향기에 취해서 즐거웠다. 그런데 며칠도 못 가서 매화는 떨어지고 행복도 가버렸다. 어느 날 아침 허망하게도 꽃잎은 떨어지고 애처롭게도 시들은 꽃들만 가지에 남았다. 외로운 꽃잎들은 안개구름처럼 주위에 흩어져있다.
내 마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즈음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다시 우울하면서 복잡한 시간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병원, 집을 오가면서 매화 분을 살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보니까 파란 잎을 피우고 있었다. 너무나 신기해서 살펴보니 그동안 무심했던 나에게 초록의 빛깔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푸른색이 희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곧 열매도 맺겠지, 매실이 열리면 매실주를 담을까? 매실 장아찌를 할까? 요렇게 조그마한 나무에서 무슨 술이야 하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생각의 실마리도 풀리지 않고 나를 찾지 못한 채 방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잎들도 제법 커지고 푸른색도 날로 더해간다. 희망도 매화 분에다 걸어본다. 다 잘 될 거야 죽으란 법은 없으니까 마음을 다스려 본다. 하지만 한쪽으로 불안한 마음은 또 고개를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에는 이른 시간에도 많은 차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간다. 내 인생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오늘도 허망한 생각과 싸움을 한다. 행복으로 가겠노라고, 그 사이로 매화 잎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반짝이면서 인사한다. "이렇게 눈 부신 햇살이 있고 또 살아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내가 열매를 맺을 때쯤이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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