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감사와 행복은 늘 함께하는 연결고리이다. 하늘은 이 땅에 아름다운 계절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거기에 걸맞은 옷을 갈아입히신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행복에 겨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듣는다. 이것들은 모두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이다.
올해 봄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봄은 계절 중에 가장 역동적인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 시인은 땅속에서 들려오는 풀뿌리들의 합창을 들으며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수액의 속삭임을 글로 쓰기도 한다. 야외로 발길을 옮겨 사진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꽃이 만발하고 나뭇잎이 청청한 계절보다 이른 봄과 초겨울에 작품사진촬영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쯤이면 나는 불청객인 알레르기와 씨름을 하게 된다. 몇 년 전 반응검사 결과 사월에서 유월 초까지만 절 넘기면 된다고 했다. 치료책으로 벌꿀로 만든 비 프로폴리스(Bee Proplis)와 혀 밑에 넣는 알약(A. Vogel Pollinosan)을 복용하고 있다.
오늘은 통증 때문에 눈을 감고 많은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며,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으로는 언젠가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라는 법정 스님의 글도 생각났다.
눈을 떠 보았다. 티브이 화면에 나오는 장애인들의 힘든 경기 속에서도 웃음 띤 행복한 삶의 연결고리들을 보며 내가 가진 이 작은 고통에 감사했다.
한편, 깁슨(Barnett Gipson) 박사의 저서” 행복한 하루(Happiness Day and Night)”가 생각났다. 그는 우리 소유의 크고 적음이 결코 행복의 요건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빠져있다면 우리는 이미 파멸의 노를 저어가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감사의 요건은 감사의 예술 (Fine art of Gratitude)을 터득할 때만 가능하다 하겠다. 참으로 감사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감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빛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남들이 모르는 전문적인 지식을 앞세워 유명해진 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삶의 참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깨닫고 가르친 사람들로써 행복의 비결이 바로 “감사”에 있었음을 엿 불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감사는 진정한 행복의 연결고리였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평과 감사라는 두 개의 단추가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불평의 단추 대신에 감사의 단추를 누를 때 삶의 기적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의 연결고리가 되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 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또한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불평을 멀리한 기쁨의 삶이야말로 풍성함을 가지고 세상으로 다가가는 크나큰 능력이며,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행복의 참 빛을 목격할 수 있는 연결고리이다.
그렇다. 행복은 감정의 표현에서 오는 기쁨이며, 기쁨은 이성에서 표출되는 감사인 것이다. 또 다른 계절 앞에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 불청객(Allergy) 앞에서도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귀한 말씀들을 묵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올해 봄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봄은 계절 중에 가장 역동적인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 시인은 땅속에서 들려오는 풀뿌리들의 합창을 들으며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수액의 속삭임을 글로 쓰기도 한다. 야외로 발길을 옮겨 사진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꽃이 만발하고 나뭇잎이 청청한 계절보다 이른 봄과 초겨울에 작품사진촬영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쯤이면 나는 불청객인 알레르기와 씨름을 하게 된다. 몇 년 전 반응검사 결과 사월에서 유월 초까지만 절 넘기면 된다고 했다. 치료책으로 벌꿀로 만든 비 프로폴리스(Bee Proplis)와 혀 밑에 넣는 알약(A. Vogel Pollinosan)을 복용하고 있다.
오늘은 통증 때문에 눈을 감고 많은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며,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으로는 언젠가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라는 법정 스님의 글도 생각났다.
눈을 떠 보았다. 티브이 화면에 나오는 장애인들의 힘든 경기 속에서도 웃음 띤 행복한 삶의 연결고리들을 보며 내가 가진 이 작은 고통에 감사했다.
한편, 깁슨(Barnett Gipson) 박사의 저서” 행복한 하루(Happiness Day and Night)”가 생각났다. 그는 우리 소유의 크고 적음이 결코 행복의 요건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빠져있다면 우리는 이미 파멸의 노를 저어가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감사의 요건은 감사의 예술 (Fine art of Gratitude)을 터득할 때만 가능하다 하겠다. 참으로 감사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감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빛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남들이 모르는 전문적인 지식을 앞세워 유명해진 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삶의 참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깨닫고 가르친 사람들로써 행복의 비결이 바로 “감사”에 있었음을 엿 불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감사는 진정한 행복의 연결고리였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평과 감사라는 두 개의 단추가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불평의 단추 대신에 감사의 단추를 누를 때 삶의 기적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의 연결고리가 되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 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또한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불평을 멀리한 기쁨의 삶이야말로 풍성함을 가지고 세상으로 다가가는 크나큰 능력이며,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행복의 참 빛을 목격할 수 있는 연결고리이다.
그렇다. 행복은 감정의 표현에서 오는 기쁨이며, 기쁨은 이성에서 표출되는 감사인 것이다. 또 다른 계절 앞에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 불청객(Allergy) 앞에서도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귀한 말씀들을 묵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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