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내가 태어난 시절은 일본 식민지 시대였고 조선인들은 모두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고 살았다. 우리 집에서도 김 씨를 가네하라 라 했고, 우리 형제들 이름도 모두 일본 이름을 썼으며 내 이름도 金春姬(가네하라 슝끼?)라 했다. 해방 후 아버지는 두 아들과 맏딸 이름은 모두 한국 이름으로 고쳤는데 내 이름만은 고치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천주교에서 세례명으로 받은 이름이다. 유아세례를 받았으므로 내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세속이름은 김춘희, 세레명은 아가다 !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어쩌다 내 세례명을 알고는 그 당시 백치 아다다 라는 영화가 상영되던 때라서 내 친구들은 나를 백치 아다다! 하고 불러댔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서부터 죽 ~ 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만 되면 선생님이 “저 불란서의 유명한 춘희, 한번 읽어 봐!” (프랑스 소설 춘희 Madame Aux Camélias. Alexandre Dumas fils의 소설의 한국어 번역 이름). 그러면 친구들이 낄낄 웃어대고 공부시간이 끝나면 “불란서의 유명한 춘희 씨” 하며 놀려 대곤 해서 그때마다 얼굴을 붉히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세속명도 그렇고 교회의 세례명도 그렇고 내게는 다 못마땅한 이름들이라 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30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가고 있을 때(아니면 안 갔던 것인지!) 절친한 친구가 하루는 재미있는 사람 만나러 간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덜렁덜렁 따라간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점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묻더니 잠시 이마를 찌푸리고는 내 이름 위에 연필로 좍~ 십자형을 그으면서 이 사람은 자살하고 죽을 사람이라며 이름을 고치란다. 난 기분이 잡쳐서 곧 그 집을 나왔다. 암튼 내 이름은 고상하지도, 점잖지도 더더욱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인이 된 후 하루는 아버지께 항의했다. 왜 아들들과 맏딸 이름은 다 한국 이름으로 고쳐주시고 유독 내 이름만 그대로 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도 좀 남들처럼 점잖은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또 세례명도 맘에 들지 않고.... 불평이 아닌 항의였다.
아버지는 아주 진지한 모습으로 대답하셨다. “넌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이름이 천해야 하고, 그 천한 이름 덕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또 그 이름 때문에 네가 원하면 어떤 시험이든 다 합격을 했으니 그 이름이 복을 갖다 주는 이름이지 천한 이름이 아니니 너는 그대로 춘희니라.” 연예인들은 자기 이름을 맘대로 만들기도 하는데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김춘희이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니까 남편 성을 따라 김 씨가 아니고 최 씨로 불리게 되었다. 미세스 최(Mrs. Tchoi)라 불리면 기분이 좋았다. 춘희란 이름을 덜 부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인생의 황혼 끝자락에 서서 생각해 보면 내 이름이 어때서! 라고 노래하고 싶다. 이름 덕에 캐나다란 나라에서 편안하게 잘 살았으니 말이다.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내 세례명인 성녀 아가다는 3세기에 살았고 15세 어린 나이에 시칠리아 로마 제독의 수청을 거절하여 가슴을 잘리는 고문을 받았으나 베드로 사도가 나타나 상처를 치유해 준 후 감옥에서 순교했고 가톨릭 교회 미사 전례에 7명의 성녀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신 아름답고 훌륭한 성녀다. 또 춘희란 뜻은 봄을 알리는 아가씨이니 모든 이에게 희망을 알리는 사람으로 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좋다. 2월 4일은 입춘, 내 세례명 축일은 5일, 올 구정은 8일, 이곳 BC의 가정의 날도 8일, 밸렌타인데이는 14일. 정말 2월은 겨울의 한기를 느끼더라도 따듯한 달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내 생일은 2월 25일이니
나야말로 봄 처녀처럼 주위를 따스하게 해 주는 봄기운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자위해 본다. 우리 집안에는 2월생들이 많아서 밸렌타인데이가 아니더라도 서로 사랑을 나눈다. 내 위 언니는 2월 20일, 우리 언니의 아들과 동생의 딸 그리고 내 딸 셋은 모두 23일, 내 생일은 25일, 막내 제부는 17일, 조카 손주는 21일, 정신 못 차리게 분주한 생일 달이다.
밸렌타인데이의 역사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는 3세기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가 기혼자보다는 미혼 남성이 군인으로 더욱 적합함을 선포하여 미혼의 청년들은 모조리 징병에 뽑혀나갔다. 이에 밸렌타인 신부는 법을 피해 몰래 젊은이들에게 혼배 성사를 집전해 주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발렌타인 신부는 2월 14일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2월 14일은 유럽에서 새들이 교미하는 날이라 하여 이래저래 14일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날이 되어버렸고 이름도 밸렌타인데이 라 명명했다.
나의 발렌타인은 2008년 2월 8일에 천국으로 먼저 떠났다. 오늘 나의 발렌타인은 없어도 이달 생일을 맞이하는 식구들 덕에 발렌타인 쵸콜릿은 넉넉히 얻어먹을 수 있으리라.
나에게 백치 아다다라는 호칭을 얹어 주더라도 꽁꽁 얼어붙은 마음들 안에 봄을 실어 나르는 향기로 주위를 따듯하게만 해 줄 수 있다면 내 이름이야 아무렴 어떨까! 아가다, 김춘희, Mrs. 최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다 좋아요.
그런데 내게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천주교에서 세례명으로 받은 이름이다. 유아세례를 받았으므로 내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세속이름은 김춘희, 세레명은 아가다 !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어쩌다 내 세례명을 알고는 그 당시 백치 아다다 라는 영화가 상영되던 때라서 내 친구들은 나를 백치 아다다! 하고 불러댔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서부터 죽 ~ 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만 되면 선생님이 “저 불란서의 유명한 춘희, 한번 읽어 봐!” (프랑스 소설 춘희 Madame Aux Camélias. Alexandre Dumas fils의 소설의 한국어 번역 이름). 그러면 친구들이 낄낄 웃어대고 공부시간이 끝나면 “불란서의 유명한 춘희 씨” 하며 놀려 대곤 해서 그때마다 얼굴을 붉히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세속명도 그렇고 교회의 세례명도 그렇고 내게는 다 못마땅한 이름들이라 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30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가고 있을 때(아니면 안 갔던 것인지!) 절친한 친구가 하루는 재미있는 사람 만나러 간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덜렁덜렁 따라간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점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묻더니 잠시 이마를 찌푸리고는 내 이름 위에 연필로 좍~ 십자형을 그으면서 이 사람은 자살하고 죽을 사람이라며 이름을 고치란다. 난 기분이 잡쳐서 곧 그 집을 나왔다. 암튼 내 이름은 고상하지도, 점잖지도 더더욱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인이 된 후 하루는 아버지께 항의했다. 왜 아들들과 맏딸 이름은 다 한국 이름으로 고쳐주시고 유독 내 이름만 그대로 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도 좀 남들처럼 점잖은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또 세례명도 맘에 들지 않고.... 불평이 아닌 항의였다.
아버지는 아주 진지한 모습으로 대답하셨다. “넌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이름이 천해야 하고, 그 천한 이름 덕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또 그 이름 때문에 네가 원하면 어떤 시험이든 다 합격을 했으니 그 이름이 복을 갖다 주는 이름이지 천한 이름이 아니니 너는 그대로 춘희니라.” 연예인들은 자기 이름을 맘대로 만들기도 하는데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김춘희이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니까 남편 성을 따라 김 씨가 아니고 최 씨로 불리게 되었다. 미세스 최(Mrs. Tchoi)라 불리면 기분이 좋았다. 춘희란 이름을 덜 부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인생의 황혼 끝자락에 서서 생각해 보면 내 이름이 어때서! 라고 노래하고 싶다. 이름 덕에 캐나다란 나라에서 편안하게 잘 살았으니 말이다.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내 세례명인 성녀 아가다는 3세기에 살았고 15세 어린 나이에 시칠리아 로마 제독의 수청을 거절하여 가슴을 잘리는 고문을 받았으나 베드로 사도가 나타나 상처를 치유해 준 후 감옥에서 순교했고 가톨릭 교회 미사 전례에 7명의 성녀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신 아름답고 훌륭한 성녀다. 또 춘희란 뜻은 봄을 알리는 아가씨이니 모든 이에게 희망을 알리는 사람으로 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좋다. 2월 4일은 입춘, 내 세례명 축일은 5일, 올 구정은 8일, 이곳 BC의 가정의 날도 8일, 밸렌타인데이는 14일. 정말 2월은 겨울의 한기를 느끼더라도 따듯한 달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내 생일은 2월 25일이니
나야말로 봄 처녀처럼 주위를 따스하게 해 주는 봄기운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자위해 본다. 우리 집안에는 2월생들이 많아서 밸렌타인데이가 아니더라도 서로 사랑을 나눈다. 내 위 언니는 2월 20일, 우리 언니의 아들과 동생의 딸 그리고 내 딸 셋은 모두 23일, 내 생일은 25일, 막내 제부는 17일, 조카 손주는 21일, 정신 못 차리게 분주한 생일 달이다.
밸렌타인데이의 역사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는 3세기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가 기혼자보다는 미혼 남성이 군인으로 더욱 적합함을 선포하여 미혼의 청년들은 모조리 징병에 뽑혀나갔다. 이에 밸렌타인 신부는 법을 피해 몰래 젊은이들에게 혼배 성사를 집전해 주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발렌타인 신부는 2월 14일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2월 14일은 유럽에서 새들이 교미하는 날이라 하여 이래저래 14일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날이 되어버렸고 이름도 밸렌타인데이 라 명명했다.
나의 발렌타인은 2008년 2월 8일에 천국으로 먼저 떠났다. 오늘 나의 발렌타인은 없어도 이달 생일을 맞이하는 식구들 덕에 발렌타인 쵸콜릿은 넉넉히 얻어먹을 수 있으리라.
나에게 백치 아다다라는 호칭을 얹어 주더라도 꽁꽁 얼어붙은 마음들 안에 봄을 실어 나르는 향기로 주위를 따듯하게만 해 줄 수 있다면 내 이름이야 아무렴 어떨까! 아가다, 김춘희, Mrs. 최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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