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내 이름은 김춘희, 아가다

김춘희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2-05 11:02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내가 태어난 시절은 일본 식민지 시대였고 조선인들은 모두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고 살았다. 우리 집에서도 김 씨를 가네하라 라 했고, 우리 형제들 이름도 모두 일본 이름을 썼으며 내 이름도 金春姬(가네하라 슝끼?)라 했다. 해방 후 아버지는 두 아들과 맏딸 이름은 모두 한국 이름으로 고쳤는데 내 이름만은 고치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천주교에서 세례명으로 받은 이름이다. 유아세례를 받았으므로 내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세속이름은 김춘희, 세레명은 아가다 !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어쩌다 내 세례명을 알고는 그 당시 백치 아다다 라는 영화가 상영되던 때라서 내 친구들은 나를 백치 아다다! 하고 불러댔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서부터 죽 ~ 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만 되면 선생님이 “저 불란서의 유명한 춘희, 한번 읽어 봐!” (프랑스 소설 춘희 Madame Aux Camélias. Alexandre Dumas fils의 소설의 한국어 번역 이름). 그러면 친구들이 낄낄 웃어대고 공부시간이 끝나면 “불란서의 유명한 춘희 씨” 하며 놀려 대곤 해서 그때마다 얼굴을 붉히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세속명도 그렇고 교회의 세례명도 그렇고 내게는 다 못마땅한 이름들이라 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30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가고 있을 때(아니면 안 갔던 것인지!) 절친한 친구가 하루는 재미있는 사람 만나러 간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덜렁덜렁 따라간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점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묻더니 잠시 이마를 찌푸리고는 내 이름 위에 연필로 좍~ 십자형을 그으면서 이 사람은 자살하고 죽을 사람이라며 이름을 고치란다. 난 기분이 잡쳐서 곧 그 집을 나왔다. 암튼 내 이름은 고상하지도, 점잖지도 더더욱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인이 된 후 하루는 아버지께 항의했다. 왜 아들들과 맏딸 이름은 다 한국 이름으로 고쳐주시고 유독 내 이름만 그대로 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도 좀 남들처럼 점잖은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또 세례명도 맘에 들지 않고.... 불평이 아닌 항의였다.

아버지는 아주 진지한 모습으로 대답하셨다. “넌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이름이 천해야 하고, 그 천한 이름 덕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또 그 이름 때문에 네가 원하면 어떤 시험이든 다 합격을 했으니 그 이름이 복을 갖다 주는 이름이지 천한 이름이 아니니 너는 그대로 춘희니라.” 연예인들은 자기 이름을 맘대로 만들기도 하는데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김춘희이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니까 남편 성을 따라 김 씨가 아니고 최 씨로 불리게 되었다. 미세스 최(Mrs. Tchoi)라 불리면 기분이 좋았다. 춘희란 이름을 덜 부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인생의 황혼 끝자락에 서서 생각해 보면 내 이름이 어때서! 라고 노래하고 싶다. 이름 덕에 캐나다란 나라에서 편안하게 잘 살았으니 말이다.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내 세례명인 성녀 아가다는 3세기에 살았고 15세 어린 나이에 시칠리아 로마 제독의 수청을 거절하여 가슴을 잘리는 고문을 받았으나 베드로 사도가 나타나 상처를 치유해 준 후 감옥에서 순교했고 가톨릭 교회 미사 전례에 7명의 성녀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신 아름답고 훌륭한 성녀다. 또 춘희란 뜻은 봄을 알리는 아가씨이니 모든 이에게 희망을 알리는 사람으로 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좋다. 2월 4일은 입춘, 내 세례명 축일은 5일, 올 구정은 8일, 이곳 BC의 가정의 날도 8일, 밸렌타인데이는 14일. 정말 2월은 겨울의 한기를 느끼더라도 따듯한 달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내 생일은 2월 25일이니

나야말로 봄 처녀처럼 주위를 따스하게 해 주는 봄기운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자위해 본다. 우리 집안에는 2월생들이 많아서 밸렌타인데이가 아니더라도 서로 사랑을 나눈다. 내 위 언니는 2월 20일, 우리 언니의 아들과 동생의 딸 그리고 내 딸 셋은 모두 23일, 내 생일은 25일, 막내 제부는 17일, 조카 손주는 21일, 정신 못 차리게 분주한 생일 달이다.

밸렌타인데이의 역사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는 3세기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가 기혼자보다는 미혼 남성이 군인으로 더욱 적합함을 선포하여 미혼의 청년들은 모조리 징병에 뽑혀나갔다. 이에 밸렌타인 신부는 법을 피해 몰래 젊은이들에게 혼배 성사를 집전해 주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발렌타인 신부는 2월 14일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2월 14일은 유럽에서 새들이 교미하는 날이라 하여 이래저래 14일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날이 되어버렸고 이름도 밸렌타인데이 라 명명했다.

나의 발렌타인은 2008년 2월 8일에 천국으로 먼저 떠났다. 오늘 나의 발렌타인은 없어도 이달 생일을 맞이하는 식구들 덕에 발렌타인 쵸콜릿은 넉넉히 얻어먹을 수 있으리라.

나에게 백치 아다다라는 호칭을 얹어 주더라도 꽁꽁 얼어붙은 마음들 안에 봄을 실어 나르는 향기로 주위를 따듯하게만 해 줄 수 있다면 내 이름이야 아무렴 어떨까! 아가다, 김춘희, Mrs. 최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다 좋아요.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보리굴비 한 두름 2023.06.28 (수)
 맛의 기억은 회귀본능을 일깨운다. 텃밭에 올라온 여린 머위와 미나리를 조물조물 무쳐 맛을 보니 아득한 고향 들판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진다. 나물 바구니를 든 어릴 적 친구 얼굴도 아지랑이 속에서 가물거린다. 기억회로에 깊이 저장돼 있다 불현듯 나타나는 고향 들녘은 나를 설레게 한다. 모든 것이 신비롭게 채색돼 있던 그때 그 시절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간절함에 목이 메는 봄이다. 이제 밖으로 떠돌던 삶의 여정은 뿌리를 찾아...
조정
날자, 날아오르자 2023.06.23 (금)
온몸을 일으켜 날갯짓을 해보지만날 수 없는 선풍기미풍으로 파닥거리다가강풍으로 날아보지만달달거리며 헛 바람만 일으킬 뿐이다다람쥐 쳇 바퀴 돌듯제자리걸음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난 날을 생각하며피아노를 두드려 보는데어깨는 저리고 눈이 침침해자꾸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언제 다시 피아노를 신나게두드리며 리듬을 탈것인가언제 다시 어린 날로 돌아가그 리듬에 맞춰 훨훨하늘로 다시 날아 볼것인가
유우영
오래 참음 2023.06.23 (금)
 오래전에, 자동차에 경보 장치를 부착하기 위하여 자동차 서비스 센터에 자동차를 맡기고 기다릴 때였다. 테크니션이 새로 고용된 사람이었나 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작동도 안 되어, 여러 번 시도하여 오래 기다려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숙련된 기술자가 맡아서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요구하고도 싶었다.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고, 과연 저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할 것인가 하여 조바심도 생겼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어 결국 경보...
김현옥
Roses in June 2023.06.23 (금)
Translated by Lotus Chung                            The sky is silent.The land is fragrant, and the heart is hot.The rose of June speaks to me. Whenever I get depressed over trivial things.“Lighten up”“Become clear”A rose that asking laughter On the road of lifeFrom the closest onesIn the name of loveThorn that stabs indifferentlyNever stab dear with a thorn againLet them make soft petals bloom. Every time we forgive someone.That fresh leaves are sprouting.The rose bushes of JuneFollowing me...
로터스 정
실버여행 견문록 2023.06.23 (금)
봄 소풍을 떠나는 시각, 오월의 햇살을 기대했으나 먹구름이 내려와 있었다. 밤잠을 설치지는 않았지만, 생애 처음으로 패키지여행에 참가하는 아침이어서 조금은 설렜다. 내 나이가 아직은 시니어 그룹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일행에 나를 끼워 주셨다. 캐나다에 산지 거의 이십 년이 흐르는 동안 아이 넷을 키운다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드디어 오늘 하루쯤 행선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관광버스에 이 한 몸 자유분방하게...
김 보배아이
새로운 준비 2023.06.12 (월)
한해의 껍질을 벗고 계묘년 토끼의 해가 벌써 중반을 달리고 있다. 작년이 호랑이해인 데 반해 올해는 온순한 검은 토끼해라고 하니 세상사가 더 잠잠해질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토끼 하면 먼저 거북이와 달리기 경주를 했던 이솝 우화가 생각난다. 거북이에게 한참을 앞서다가 방심을 한채 잠을 자는 바람에 우직한 거북에게 그만 지고 만 이야기다. 지난 펜데믹 기간을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지내온 우리 앞에 나타날 온순하지만, 재간동이...
권순욱
아모르 파티 2023.06.12 (월)
오면 반드시 가고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것이는 자연의 법칙이며진화와 멸종의 순리라 하네지극히 작고 유한한 생명체에 불과한 내가전생에 무슨 좋은 업을 지었기에이처럼 아름다운 창조주의 작품들을무시로 누릴 자격이 주어졌는가?공기, 빛, 물, 푸른 대지그리고 그대! 어제의 숲을 지나와오늘의 삶의 광장으로 흘러든 내가무한한 내일의 대양(大洋) 앞에 서서인간으로, 오직 하나뿐인 진정한 나로숨 쉬고 있음이여ㅡ 아모르...
안봉자
속삭임 2023.06.12 (월)
   시원한 강 바람 불어오는 선창가 봄을 맞이하는 상춘객으로 들끓는다. 어느새 겨울옷 벗고 밝고 상쾌한 차림인 그들의 소곤거림과 웃음소리가 새어 나가고 있다. 난 아직도 거무튀튀한 겨울의 칙칙함을 몸에 칭칭 감고 있다. 그러나 햇살은 영락없이 봄을 쏟아내며 현란한 빛을 자랑한다. 냄새와 실 바람은 감미로운 아이스크림같이 영혼에 스며든다. 강 둑에 넘치는 자연의 유희는 찰랑이고 아득한 산 자락은 산봉우리 꼭대기 흰 눈을...
박혜경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