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밖은 깜깜했다. 나는 여섯 시에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손님들에게 팔 네 종류의 커피를 만들며 연신 밖을 살폈다. 머핀이 배달될 시간이기 때문이다. 키가 크고 마른 베이커리 주인이 매일 직접 차로 싣고 와서 건물 문 앞에 놓고 가는데, 정신없이 일하다가 언뜻 밖을 보니 어떤 행색이 남루한 남자가 머핀 박스를 통째로 들고 달아나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반사적으로 뒤쫓았지만, 그는 뒤를 흘끔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배가 고프면 그냥 몇 개 집어 갈 것이지 쉰 개가 들어있는 상자를 통째로 들고 뛰다니, 나는 다리에 맥이 풀리며 커피와 함께 머핀을 아침 식사로 하는 손님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나 걱정이 되어 일손을 놓고 멍하게 서 있었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일정한 숫자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회사에 다시 주문할 수도 없었다.
갑자기, 처음 이 가게를 인수하여 도와주던 헬퍼가 한 달 만에 나가고 내가 혼자서 손님들을 감당하게 되어 막막했을 때가 생각났다. 니클과 쿼터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돈에 대해 서투름과 알아듣지 못하는 그 많은 담배의 이름, 가게에 진열된 상품들의 기묘한 명칭들이 주는 혼란스러움은 손님이 가게에 올 때마다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나를 주눅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생존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뒤로 물러설 수 있단 말인가. 용기를 내어 묻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적어달라 해서, 또는 눈치로 열심히 외운 결과 두어 달 후에는 모든 상품이 눈에 들어왔고, 오가는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프렌치가 섞인 발음, 나처럼 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의 독특하고 어눌한 말씨, 때론 바쁘게 뛰어온 사람의 숨이 찬 독특한 말투들, 그리고 각각 개성적인 발음에 익숙해지기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외부 손님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는, 오 육백 명의 내부 손님을 단골이 되게 하자면 특별한 관심과 친절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옷차림은 물론, 정중하고 격조 높은 언어 사용, 세련된 매너, 품격의 고양 등등 가급적 동양인인 내가 이 건물의 코너스토어에서 자기들을 이용하여 생계를 꾸리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손님이 올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안부를 묻자 가족들을 데려와 인사를 나누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건물 안에 하나밖에 없는 이 가게에 올 때만이라도 포근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가게의 쇠창살에 매주 월요일이면 새로운 꽃과 열매들로 장식하여, 주말의 느긋함에서 다시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그들의 ‘블루 먼데이’를 자연스럽게, 일하는 자의 성실함과 강인함으로 이겨내도록 나의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더 많은 종류의 꽃, 덩굴과 나무줄기, 화려한 색깔의 열매로 꾸미고 할로윈에는 호박, 거미와 거미줄, 허수아비 그리고 해골들로 온통 할로윈 임을 강조하였다. 벽의 공간에는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발췌한 인상 깊은 구절들과 프랑스, 영국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들도 붙여 놓았다. ‘눈물 없는 사람의 영혼에는 무지개도 없다.’와 같은 짧은 경구와 격언, 속담들도 바꾸어 붙여 놓으니 반응이 뜻밖에 뜨거웠다. 어떤 이들은 이 글들을 베껴가기도 했다. 그리고 더 좋은 글이 있으면 내게 그 자료를 보여주어 벽에 붙이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한국의 경단처럼 생긴 과자를 손수 만들어, 중국식 접시에 담아 색색으로 된 리본으로 장식하여 갖다 준 톰, 뜨개질하여 만든 하얀 천사를 주었던 웬디,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양초를 가만히 놓고 간 수줍음 많은 캐시, 자작한 곡을 CD에 담아준 라이언, 회사에서 파티가 있을 때마다 위층으로 데리고 올라가 케이크 등을 챙겨 주었는데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이다, 점심 후 동료들과 축구시합을 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숨져, 어린 세 딸과 아름다운 아내를 남겨놓고 떠나버린 예의 바르고 선량하며 훤칠한 외모의 스티브,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임신하여 만삭이 된 황금빛 아름다운 머릿결을 지닌 린다는 나를 찾아와서 출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몸을 떨며 퍽퍽 울었다. 나는, 출산은 축복이며, 자연의 순환 중 하나이고, 태어나서 너를 보고 엄마라고 불러줄 아기를 생각하라고 어깨를 감싸며 다독여 주었다.
캐나다는 나라가 커서 동부와 서부가 다섯 시간씩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내가 가게 문을 여는 오전 여섯 시란 동부에서는 이미 일을 시작하는 아홉 시라, 그 시간에 맞추려면 고객들은 일찍 와서 커피를 마시고 정신 차려 전화 팩스 등 자신의 업무를 보아야 했다. 어떤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또 어떤 고객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토론토와 오타와, 몬트리올과 같은 국내여행을 하면서도 제 자리에 왔을 때는 끊임없이 나의 가게에 들러 인사하고 뭔가를 사 갔다. 동쪽 하늘이 짙은 오렌지 색으로 동터올 때, 가로수인 벚나무에서 아기 주먹만 한 분홍 꽃들이 꽃 비를 환호처럼 흩날릴 때, 천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눈발이 세상을 덮을 때, 내 가게에서는 늘 나와 고객들을 어우르는 웃음소리와 가벼운 음악의 선율이 신선한 커피 향내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가게 문을 잠깐 닫은 뒤 중국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로 달려갔다. 도둑맞은 머핀 대신, 다른 맛이 나더라도 나는 머핀을 준비해야만 했다. 머핀을 한 입 베어 물고 ‘어? 다른 맛이네!’하며 어리둥절할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처음 이 가게를 인수하여 도와주던 헬퍼가 한 달 만에 나가고 내가 혼자서 손님들을 감당하게 되어 막막했을 때가 생각났다. 니클과 쿼터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돈에 대해 서투름과 알아듣지 못하는 그 많은 담배의 이름, 가게에 진열된 상품들의 기묘한 명칭들이 주는 혼란스러움은 손님이 가게에 올 때마다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나를 주눅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생존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뒤로 물러설 수 있단 말인가. 용기를 내어 묻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적어달라 해서, 또는 눈치로 열심히 외운 결과 두어 달 후에는 모든 상품이 눈에 들어왔고, 오가는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프렌치가 섞인 발음, 나처럼 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의 독특하고 어눌한 말씨, 때론 바쁘게 뛰어온 사람의 숨이 찬 독특한 말투들, 그리고 각각 개성적인 발음에 익숙해지기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외부 손님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는, 오 육백 명의 내부 손님을 단골이 되게 하자면 특별한 관심과 친절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옷차림은 물론, 정중하고 격조 높은 언어 사용, 세련된 매너, 품격의 고양 등등 가급적 동양인인 내가 이 건물의 코너스토어에서 자기들을 이용하여 생계를 꾸리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손님이 올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안부를 묻자 가족들을 데려와 인사를 나누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건물 안에 하나밖에 없는 이 가게에 올 때만이라도 포근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가게의 쇠창살에 매주 월요일이면 새로운 꽃과 열매들로 장식하여, 주말의 느긋함에서 다시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그들의 ‘블루 먼데이’를 자연스럽게, 일하는 자의 성실함과 강인함으로 이겨내도록 나의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더 많은 종류의 꽃, 덩굴과 나무줄기, 화려한 색깔의 열매로 꾸미고 할로윈에는 호박, 거미와 거미줄, 허수아비 그리고 해골들로 온통 할로윈 임을 강조하였다. 벽의 공간에는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발췌한 인상 깊은 구절들과 프랑스, 영국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들도 붙여 놓았다. ‘눈물 없는 사람의 영혼에는 무지개도 없다.’와 같은 짧은 경구와 격언, 속담들도 바꾸어 붙여 놓으니 반응이 뜻밖에 뜨거웠다. 어떤 이들은 이 글들을 베껴가기도 했다. 그리고 더 좋은 글이 있으면 내게 그 자료를 보여주어 벽에 붙이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한국의 경단처럼 생긴 과자를 손수 만들어, 중국식 접시에 담아 색색으로 된 리본으로 장식하여 갖다 준 톰, 뜨개질하여 만든 하얀 천사를 주었던 웬디,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양초를 가만히 놓고 간 수줍음 많은 캐시, 자작한 곡을 CD에 담아준 라이언, 회사에서 파티가 있을 때마다 위층으로 데리고 올라가 케이크 등을 챙겨 주었는데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이다, 점심 후 동료들과 축구시합을 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숨져, 어린 세 딸과 아름다운 아내를 남겨놓고 떠나버린 예의 바르고 선량하며 훤칠한 외모의 스티브,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임신하여 만삭이 된 황금빛 아름다운 머릿결을 지닌 린다는 나를 찾아와서 출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몸을 떨며 퍽퍽 울었다. 나는, 출산은 축복이며, 자연의 순환 중 하나이고, 태어나서 너를 보고 엄마라고 불러줄 아기를 생각하라고 어깨를 감싸며 다독여 주었다.
캐나다는 나라가 커서 동부와 서부가 다섯 시간씩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내가 가게 문을 여는 오전 여섯 시란 동부에서는 이미 일을 시작하는 아홉 시라, 그 시간에 맞추려면 고객들은 일찍 와서 커피를 마시고 정신 차려 전화 팩스 등 자신의 업무를 보아야 했다. 어떤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또 어떤 고객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토론토와 오타와, 몬트리올과 같은 국내여행을 하면서도 제 자리에 왔을 때는 끊임없이 나의 가게에 들러 인사하고 뭔가를 사 갔다. 동쪽 하늘이 짙은 오렌지 색으로 동터올 때, 가로수인 벚나무에서 아기 주먹만 한 분홍 꽃들이 꽃 비를 환호처럼 흩날릴 때, 천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눈발이 세상을 덮을 때, 내 가게에서는 늘 나와 고객들을 어우르는 웃음소리와 가벼운 음악의 선율이 신선한 커피 향내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가게 문을 잠깐 닫은 뒤 중국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로 달려갔다. 도둑맞은 머핀 대신, 다른 맛이 나더라도 나는 머핀을 준비해야만 했다. 머핀을 한 입 베어 물고 ‘어? 다른 맛이네!’하며 어리둥절할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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