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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단상

김베로니카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9-04 15:00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며칠째 비가 내린다.
눈이 내려도 비가 내려도 밤에 예쁘게 내리더니 오늘은 빗소리가 온종일 경쾌한 노랫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쓸쓸한 바람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한기를 느끼게 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혼자서 길을 나서볼까?
벤프로 가 볼까.

창가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그저 앉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루이스 호수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어떤 소리로 다가올까.
내리는 빗속에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내가 그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호수 가를 거닐어 볼까, 아니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들고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속이나 읽어볼까...? 현실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마음뿐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창가에서 컴퓨터와 씨름한다.
먼 기억 속의 내가 방황한다.
그림 속에 나를 그려 넣어본다.
비가 막 그친 듯한 파리의 샹젤리제의 카페 거리, 마차가 말발굽 소리 대신 빗소리로 연인들을 실어 나른다.
거리에는 짝을 지은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고 빗물이 비친 아스팔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하면서 가슴속까지 행복을 마셔본다.
비만 오면 무조건 거리로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강촌이나 춘천 가까운 인천도 여러 번 갔다.
비 오는 차창 밖으로 그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푸른 나무들은 물방울의 안식처가 된다.

뿌연 창으로 비치는 내 얼굴은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인다.
열심히 유리창만 닦는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도 더 보고 싶은 내 마음의 표현인지.


역에서 내려 무작정 걸었다.

옷이 다 젖고 신발도 젖어서 걸을 수도 없을 때 즈음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곤 했다.
택시를 탔다.
나도 모르게 "비가 오니 참 좋아요."
철없다는 듯이 아저씨는 나에 한바탕 핀잔을 하곤 나를 내려놓곤 떠났다.
아직도 철없는 여자가 되어서 여기저기를 헤맨다.
비가 나를 불러내고 빗소리가 나를 인도한다.
빗소리와 더불어 들려오는 새소리, 자동차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
비 오는 날은 모든 소리가 더욱더 울려 퍼진다.
깊은 잠 속에서도 빗소리가 나를 깨우곤 한다.
커튼을 젖히고 내다본 거리엔 가로등이 졸고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빗물을 따라 춤을 춘다.
가로수들도 소리 없이 리듬을 타는 듯 흔들거리고 물줄기는 시원스럽게 더러운 것들을 씻어간다.
비 내린 후의 햇빛은 눈이 부시고 마음속의 찌꺼기까지 다 태워 줄 것 같이 강렬하다.
머나먼 이국땅은 때때로 나에게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 있다.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굵은 빗줄기가 큰 물방울을 만들면서 내린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아주 굵은 빗줄기를 내리퍼붓는다.
번개가 여기저기 계속해서 번쩍이고 하늘은 시커멓게 변한다.
계속되는 번개와 천둥소리에 모두 창문을 열고 내다본다.
물받이에선 금방 작은 폭포를 이루고 빗물은 거세게 흘러내린다.
빗소리가 너무 시원해서 내 가슴속이 씻겨질 것 같이 상쾌하다.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시름이 흘러간다.
하염없이 내다보고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몇십분 내린 비는 언제 왔느냐는 듯이 해가 나면서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든다.
선명하게 드러난 무지개를 보곤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크고 선명한 무지개를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도화지에 그려본 그 무지개였다.
황홀한 무지개를 바라보면 희망이 샘솟는다.
테라스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는 무지개의 빛깔은 살아온 인생의 그림처럼 여러 가지 아름다운 빛을 띄운다.
뒤돌아보면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길은 정녕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필연의 삶이 아니었는지?
돌이킬 수만 있다면 꼭 필요한 그리고 후회하지 않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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