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미어캣

박병호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7-31 16:41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동화
   수많은 별들이 달빛과 함께 바다를 이루어 하늘이 땅에, 바다가 하늘에 떠 있는  밤이었습니다. 어려서 고향 칼라하리에서 아빠의 어깨 위에 무등 타고 처음 보았던 밤하늘에 비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밤의 사막, 뚝 떨어진 체온의 혈관에서 미세한 맥박의 고동소리가 이어 나오게 하기에는 충분한 별빛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곧추선 나의 콧등을 숨결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아마도 달과 별이 전하는 사막의 신화 이야기 일거야” 라고 쉽게 단정 지어 버렸지만 그렇게 애매한 이야기를 땅 위에 남겨두고 곧장 가족이 기다리는 땅속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버린 바람의 말을 잡기 위해 다시 기다리는 시공간엔 아직도 어른들로 인해 나의 작은 뇌에 박혀 있는 의심증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원수와 친구를 구분할 줄 안다고 골 백 번을 말했어도 듣지도 않던 서부 아프리카의 고향 어른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양심을 전하는 상대의 눈을 보고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알기 때문에 먼저 의심을 하고 누군가를 대할 필요가 없는데도 10퍼센트의 적들 때문에 나머지 90퍼센트의 친구들까지 의심부터 하고 보라는 가르침이 못마땅했습니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살만한 세상을 살기 힘든 세상으로 만든다는 것을 일교차가 큰 사막에서 살만큼 산 어른들이 아직 삶의 지혜를 다 배우지 못한 나보다 더 모르고 있다는 것도 싫었습니다.

  나와 내 작은 집단을 위해 큰 세상을 힘들게 만들면 결국 나와 내 집단도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어른들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깜깜한 사막의 땅에 바람을 기다리며 마치 나의 가느다란 두 다리, 등뼈 그리고 목뼈가 한 그루   대나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빨리 오지 않듯이 한 참을 기다려도 바람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나에 대한 나의 걱정은 없었지만 엄마가 나를 걱정할 것 같은 걱정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게 내 의지를 꺾고 있었습니다. 내가 겁이 없게 된 것은 원래부터 용감해서가 아닙니다. 캐나다 유일의 사막지대인 이곳은 어쩌다 한 번씩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기류를 타고 왔다 금 새 사라지곤 하는 흰 머리에 노란 부리, 갈색 깃털의 독수리 외에는 무서운 녀석들도 없어서 밤에 긴 시간을 땅 밖에 나와 있어도 불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한 줄기 바람이 사막의 모래알들을 한 알 한 알 말끔하게 씻어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가버린다 해도 한 낮에 찾아오는 바람은 밤에 떠올려도 시원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엄마가 땅굴에서 나와 나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이어서 집으로 따라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나의 엄숙한 수직 자태를 보고,“이제 엄마와 교대하고 그만 돌아가서 자지 않겠니?”라는 신화를 전하는 바람소리 같이 희미한 말을 남기고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람아, 내가 와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 선조 자이언트 낙타가 캐나다에서 베링대교를 건너 시베리아로 갔다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막지대로 숨어들었다고?” 기다리다 지친 내가 먼저 북극성을 쳐다보고 혼자 외쳤습니다.

 곧 이어 잠시의 틈도 없이 생각은 바삐 돌아 어김없이 또, 고향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깊은 슬픔 뒤 송알송알 밀려드는 그리움에 취해 이대로 동장군이 되어 죽어간다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역사는 비극과 희극으로 반복된다. 비극처럼 사라진 낙타의 고향에 그들을 대신해 들어온 너는 너희 미어캣의 역사를 새로 써가야 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언제 왔는지 바람이 내 뱉고 나서 또 다시 곧장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 캐나다 미어캣의 역사는 희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의심이 믿음으로 불안이 안심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게다가 내 고향에는 아직 여기보다 훨씬 많은 미어캣이 살아 있습니다. 의심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긴 하지만... 인간들이 사막에 신도시를 지어대지만 않는다면 침입자들이 칼라하리로 진출한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무모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마 그곳은 희극과 비극의 교대가 필요 없는 영원한 안식처가 될 지도 모릅니다. 믿음만 다시 돌아 온다면… 캐나다에 낙타가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이방인의 사막에 살아남았지만 우리 미어캣은 고향에도 살아남고 새로운 땅에도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고향보다 부족한 모래 때문에 땅 속 깊이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면 겨울 철 추위를 견디기 위해 우리의 털이 더 두꺼워질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막에서, 똑똑한 녀석들은 누구나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 집을 짓습니다. 자신을 지상에 드러냈다가는 뜨거운 햇볕에 태워지거나, 모래바람에 묻혀버리거나, 사나운 짐승에 잡아 먹히거나, 몇 년 만에 한번 찾아오는 홍수에 휩쓸려버리거나... 아무거나 하나에 걸려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구름위로 솟는 초고층 빌딩을 짓거나 우주선을 만들어 하늘 높이 올라 세상을 내려다본다 해도 인간들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막의 하찮은 지하도시도 찾아 낼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드러난 외모만을 보고 황량하다느니 살 곳이 못 된다느니 하며 함부로 내뱉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약한 자기 눈으로 본 세상이 전부 인줄로 착각하는지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면서...

   온 밤을 허허벌판에 곧추서있던 나는 새벽이 다가올수록 더 심해진 추위에 배가 시리고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전갈처럼 모래 속에 숨은 자세를 취해보고, 뱀처럼 몸을 꽈리처럼 꽈 체온을 보존하려고 해도 선천적으로 꼿꼿한 나는 구덩이에 들어가 귀와 눈만 밖으로 내놓는 방법 외에는 추위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어느덧 별들이 밝은 빛을 일어갈 즈음 아주 멀리서 사람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 오고 있다는 감이 든 순간 나는 내 의지와 따로 노는 미어캣 본능으로 인해 집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잡으러 와?” 세상모르고 사랑스런 두 동생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다 눈을 뜬 엄마가 서둘러 들어온 나의 태도에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아니 별것 아니야. 하지만 사람들이 전갈을 미끼삼아 긴 땅굴 낚시 대를 여기까지 집어넣을지 모르니 더 깊이 들어가야 할 준비는 하고 있어야겠어요.” 라고 차분한 음성으로 엄마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미끼는 아무리 군침이 돌아도 절대 안 물면 되는데, 우리의 보금자리에 숨을 못 쉬게 하는 지독한 연기를 뿜어 넣으면 어쩌지.” 평소 걱정이 많은 엄마가 점점 초조해하며 아이들이 못 듣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든 후 사람의 소리에 깨어난 나는 엄마와 동생들은 더 밑의 피난처로 내려가게 한 후 살금살금 땅 위로 올라갔습니다. “내가 신기루를 보았을까? 분명 망을 보는 미어캣의 머리였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내가 보초를 서던 곳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잘못 들었겠지. 내가 모르는 동물의 소리도 있으니까. 전갈이나 방울뱀처럼” 자세히 들어보니 전갈이나 방울뱀을 찾으러 온 아직 어린 소녀의 목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타고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라고 확실히 들려오는 말뜻으로 보아 야생 동물과 친구가 되려고 온 인간소녀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우리 미어캣과 소통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반갑기도 했습니다. “맞아. 아무리 영특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꼭두새벽도 되기 전에 여자 어린이를 미끼로 앞세워 우리를 잡으러 그들이 보기에는 이 볼품없는 사막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야.” 라고 금방 나의 경계심은 호기심이라는 의지 앞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땅 밖은 훤하게 밝아진 아침이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소녀의 말이 들려 왔습니다. “아니야, 미어캣이 여기 있을 수가 없어. 아프리카 사막에 있어야 할 애들이 왜 여기에 있겠어. 괜히 앞만 보고 내달리다 억센 잡목 잎에 상처만 입었지 않아. 아침 식사하러 나온 지네나 찾아보자.” 우리를 포기하고 다른 동물의 집으로 가버릴 것 같은 소녀인간의 말에 초조해진 내가 재빨리 고개를 추켜 올린 순간, 나는 두 손을 합장하듯 가슴에 모으고 꼬리는 두 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땅에 내린 채 꼼짝 없이 소녀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우우우~” 저렇게 예쁘고 선하게 생긴 인간을 미어캣 낚시꾼으로 의심해서 밤새 사서 고생했다는 생각에 머쓱해진 나는 멀리 있는 가족을 부를 때 내는 경고음을 냈습니다. 그러자 소녀로부터 “워 워 워 우어~” 더 긴 말로 금 새 반응이 왔습니다. “와 진짜 미어캣 맞구나, 세상에.” 라는 말로 우리의 긴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응, 내 이름은 방고라고 해.” 가슴에 모은 한 손을 내밀자 소녀도 반갑게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재인이라고 해. 다른 언어의 사람들보다 동물들과 더 유창하게 통할 수 있어.” 재인이 더 가까이 나에게 다가오며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듯 그녀의 다중소통능력을 자랑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움츠리는 나에게 “너를 해치지 않아. 그 미끈하게 잘 생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라고 재인이 말했습니다. “흥, 두 번 속지는 않아.” 인간들이란 처음부터 본색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내가 일부러 튕기는 말을 골라 했습니다. “뭐라고? 나는 처음이야. 아 전에 어떤 사람한테 속았나 보구나.” 의심하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재인이 태도를 바꿔 말했습니다. “내가 내 고향을 떠나게 된 것도 사람들 때문이라고.” 또 한 번의 튕기는 나의 말에 “방고, 나는 너와 대화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내가 아니면 누가 네 편이겠니?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네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어.”마치 빛을 잃어가는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재인이 말했습니다.

   “재인, 내가 전에 칼라하리에서 잡힐 때도 그랬어. 사람이 내 소리를 흉내 내서 친구인줄 알고 깜빡 속았다 낚였다고.”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봐. 방고, 나는 너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착한 동물들과 통할 수 있어. 나는 사람만큼 똑똑한 동물들의 친구란 말이야. 사람들이 다 나쁘거나 거짓말만 하는 것은 아니야. 너희 미어캣 중에서도 망보기 싫거나 놀고먹으려고 진짜 엄마처럼 젖을 부풀리고 젖까지 흘려 새끼들에게 누가 진짜 엄마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 나쁜 여자어른도 있듯이 말이야. 나는 미어캣을 처음 본다고. 그리고 나는 알아, 너희들도 개처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 좋아한다는 것을. 그러니 괜히 시침 떼지 말고 잠자코 있어봐. 잠깐이면 돼.”

   이렇게 해서 친해진 나와 재인은 사막의 동물들 이야기부터 서로 캐나다에 흘러 들어온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칼라하리사막에서 낚여 장사꾼에게 팔려 홍콩으로 가서 애완용 동물로 살다, 캐나다로 이민 오는 주인의 이삿짐과 함께 국경을 넘다가 걸려 ‘야생동물은 사막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동물검역소의 결정에 의해 오소유스에 오게 되었다는 것과 조기 다중 언어교육이라는 미끼에 걸려 싱가폴로 갔다가 다시 캐나다로 오게 된 재인의 여정이 비슷하다는 것에 끌려 우리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고향으로 보내준다는 재인의 말에 내가 “재인, 우리는 겨우 이제 여기 적응을 끝냈어. 여기서 태어나 살아남은 두 동생들도 있고, 맛있는 사막 독 방울뱀이 많아서 굶을 일도 없어. 안전하기도 하고.”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고향이 좋지 않니 방고?” “아빠,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 보고 싶고 그 속에서 함께 살고 싶기는 해. 우리는 대가족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이젠 삼 년도 넘은 옛날이야. 몇몇 친구들 얼굴만 어렴풋하고 아빠 얼굴까지도 잊어버릴 지경이야.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도 안나 다시 데려다 놓아도 소용없을지 몰라. 망을 보다가 독수리를 발견하고도 일광욕에 정신을 빼앗겨 제대로 무리에게 알리지 않아 가족들을 죽게 만들 수도 있고. 안 갈 거야. 아니 못 가.” 라는 나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멀리서 덩치 큰 어른 인간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 나의 본능은 또 다시 나를 우리의 보금자리로 이끌었습니다. 내 경고음에 내 엄마와 동생들은 땅 속 더 깊이 들어가 있었고 나는 “알아. 나도 안다고 나를 뒤 따르는 다른 사람이 곧 여기 도착할 것 같다는 것을. 그런데 그 분은 우리 아빠야. 야생 동물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운동을 하는 동물 인권 운동가라고.” 라고 서둘러 말하는 재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엄마와 동생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칼라하리에서 내가 싫다는 데도 인간이 내민 미끼가 뭔지 받아 오라고 시킨 어리석은 어른들이 생각나 나는 절대 고집 센 무모한 어른으로 자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 나와도 좋아. 그런데 겨울에 춥지는 않아?” 마치 나를 보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고 계속 떠들어 댈 것처럼 재인이 쉬지 않고 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내버려 두면 더 큰 호기심을 갖고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되돌아 올 지도 모른다는 가족의 의견을 받아들여 우리 가족 모두 햇빛도 쐴 겸 밖으로 나왔습니다. “매우 춥지만 적응해야 살 수 있으니까 더 깊이 땅을 팠지.” 재인에게 대답을 하면서 밖으로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등장했더니 재인이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재인의 아빠도 진짜 동물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뒤 따라온 재인의 동생과 엄마도 칼라하리 미어캣들 만큼 순해 보였습니다.

   “우리도 넷, 너희도 넷, 우리 여기서 던지기 시합을 하자.” 자기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칼라하리에 돌아가는 우리들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덧붙이며 재인이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 하는 운동 중 유일하게 원반던지기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재인은 우리 미어캣보다 똑똑한 인간 같았습니다. 나의 팔이 좀 굽어 짧은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만큼 똑똑해 보이는 인간한테 이기겠다는 생각을 버리니 당장 탁구시합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사막에 별빛이 물러간 자리에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는 핏빛 햇빛이 세상을 훤히 밝히고 있었고 사막의 맥박은 벌써 힘찬 고동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오소유스 호수의 아침 안개가 사막의 신기루 같은 햇빛에 물러나면서 만들어 놓고 간 둥근 탁자모양 아지랑이 속의 캑터스 선인장은 훌륭한 원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반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단한 솔방울 같은 봉오리 외에는 눈에 띄는 것도 없었습니다. 대신 소프트볼만한 단단하고 큰 꽃봉오리로 탁구시합을 하려고 재인과 내가 원형탁자에 다가서는 순간 재인 아빠가 놀라 만류 했습니다.

 “저것은 탁구대로 쓸 수 없다고 어서 멈춰. 원형 탁자로 보이는 것은 햇빛이 비틀어지면서 만든 신기루일 뿐이야, 다가갈수록 아무것도 없다고. 내년에 아빠가 다시 와서 탁구대를 만들어 줄게 그때 하자 재인” 재인 아빠가 재인의 손을 붙들고 이제 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러자 재인이 “아빠, 방고와 딱 한 게임만 하고 갈게요”라고 내 손을 끌고 신기루에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탁자는 다가갈수록 멀어져 갔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재인이 몸을 날려 탁구대를 잡으려고 그 원형물체에 다이빙한 순간 그만 신기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뛰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 또한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재인을 찾으러 신기루에 몸을 날렸습니다. 곧이어 “꽈당” 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에 깨어난 나는 우리 보금자리 땅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뇌리에는 재인의 영상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찾으러 곧장 땅 밖으로 기어 올라왔습니다.

   “재인, 어디 있어?” 바닥에 부딪친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도 못한 채 나는 “워 우어~”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재인도, 원형 탁자도, 재인 아빠도 모두  신기루와 함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재인, 어떻게 되었어?” 아무리 외쳐 봤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재인을 모르는 바람뿐이었습니다. 한때는 열렬히 기다리던 그 바람에 코를 대고 냄새도 맡아 보았지만 재인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년에 아빠가 만든 탁구대 갖고 꼭 돌아와 재인...”
작별인사도 못 나누고 헤어진 재인으로 인해 나는 태초의 빛이 만들어낸 걸작, 사막에 서서 의심을 기다리는 칼라하리 미어캣이 아니라 착한 동물과 악한 동물을 구별할 줄 알아 사람을 무조건 의심부터 할 필요가 없는 나를 닮은 한 인간을 기다리는 캐나다 미어캣이 되어 있었습니다. 희망을 기다리면서… (coreits14@gmail.com)      


한인 사회의 중요한 소식을 캐나다 서부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제보 이메일: news@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 투고안내
밴쿠버 조선일보에 투고는 편집부 이메일(news@vanchosun.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투고 시에는 본인 사진과 간단한 소개, 연락처를 첨부해 주십시오.
별똥의 노래 2018.08.21 (화)
어렸을 때 나는 아주 내성적이고 용기가 없어서 동네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했다. 오빠와 언니를 졸졸 따라 다니다가 놀이에 끼어줘야 놀았다. 그러나 한번 놀이에 끼어 한판하면 난 열심히 뛰고 숨고 신나게 놀았다. 엊그제 같은 옛날 이야기다. 나는 이제 무슨 놀이를 하고 살고 있지? 가끔 내가 뭘하고 노는지를 살핀다. 놀이라기보다는 자투리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처럼 아들 식구들이 모두 주말 캠핑을...
김춘희
풀밭에서 2018.08.21 (화)
나는 365일, 365편의 시를 쓰고 싶다             등 푸른 풀잎에 누워             온 몸이 싯퍼런 풀 냄새로 젖은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삶이 생을 으깨고 짓누를 때             내 영혼의 집을 헐어서라도             시 정신이 맑은 어여쁜 시를 쓰고 싶은거다         ...
김영주
오, 스칼렛(Xcaret) 2018.08.21 (화)
호텔에 짐을 풀고 옥외 풀장과 연결되는 바닷가로 한걸음에 나갔다.결 고운 하얀 모래가 아기 볼처럼 보드랍다. 모래밭에 길게 누운 비치 의자, 짚으로 엮어올린 파라솔, 설렁설렁한 바람에 키 큰 코코넛 나무가 흔들린다. 바람 한 점까지 투명하다.비행기로 7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 남미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어느새 내가 서 있다.캔쿤 남부 해안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가면 자연 생태적인 테마 공원 세 군데가 있다.엑스플로러(Xplor), 셀하(Xelha) 그리고...
박오은
부들 옆에서 2018.08.21 (화)
부들 옆에 앉아서너를 생각한다연못은 가물어 물은 마르고부들 가지 위로까마귀 몇 마리 날아가는데초록색 지붕 아래네가 이름 붙여준 꽃과 나무들너의 꿈 이루어지는 날다시 피어날 거야마차를 기다리던 길가에부들 꽃은 빨강 머리 앤너처럼 피어나는 부들 한 송이푸른 하늘 흐르는 구름 따라가면기쁨의 하얀 길저 길 끝으로빨강 머리 앤 다시 달려올 거야
신금재
문정희 시인의 <찬밥>을 읽다 어머니와 아내의 생활을 다시 생각했다. 엄마가 찬밥을 혼자 드시던 일을 떠올리면서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 찬밥을 먹는다는 시다. 밥을 꼭 알맞은 만큼만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식구들이 먹을 밥이 부족하게 지을 수도 없으니 보통 조금은 밥이 남게 된다. 그 남은 밥은 보온밥통도 없던 시절에는 찬밥이 되게 마련이다. 그 찬밥은 누가 먹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엄마, 가정주부의 차지였다. 나는 그런 '찬밥을 누가...
송무석
여름 신열 2018.08.14 (화)
먼 하늘 구름이산 너머열풍의 새김질을 바라보고 한 모금의 호흡도달아오르는 욕망의틈바구니를 빠져나가지 못해 차라리 북극의파란 바닷물이어느 지성의 사치스런 휘파람이려니 해바라기 벌판의구부러진 기차길이모든 나의 잔상을 삼켜버린여름 오후 축축한 등에 흐르는고뇌의 즙은밖으로 나갈길 모르는 방황의 신열이려니 상수리 나뭇잎 속으로 밤이오면차갑게 이는 각성의 바람속을 에이는 옹달샘 한 바가지 떠서다가오지...
김석봉
살아 있네! 2018.08.14 (화)
“살아 있네!”   한국의 죽마고우에게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더니 불쑥 나온 말이다. 그러면서초등학교(소학교국민학교) 동창들 누구누구는 벌써 떠났고 자기도 미구에 갈 것 같단다.할망구는 집안 출입을 겨우 할 형편이고 자기는 병원을 이웃집 드나들 듯 하니 늙은 몸이얼마나 부지하겠느냐고 체념하는 목소리다. ‘100세 인생 노래’는 어쩌려고 죽는시늉을하느냐고 슬쩍 비틀었더니 악담하면 죄로 간다며 허허 웃는다.   40여 년...
고(故) 이종학
하루살이 2018.08.14 (화)
굉음을 토해내는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슬러위험천만 외줄 타는외 발 자전거 같은인생살이 아슬아슬 살얼음판옴짝달싹 못 하는 외통수 길한 발짝 잘못 내디디면금이 가듯 깨어지는 인생살이 힘 빼고비우고 또 비워내먹고 살 만큼의 한 움큼 양식으로도배부른 인생살이  부단히 하루를 살아내는하루살이우리네인생살이
김혜진
소리와소음 2018.08.08 (수)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목 놓아 울어대는 새소리가 잠을 깨운다. 아직 새벽인 듯 어둠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이다. 무슨 사연이있어서 저리 울어 대는지 안쓰러우면서 짜증이 난다. 깊은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인데 잠을 깨운 녀석들이 밉기도 하다.우리는 잠에서 깨면 소리와 일상을 시작한다. 고요 속에서 창문을 열면 밀려드는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차 소리 사람들 얘기소리 새소리 등 잡다한 여러 소리가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김베로니카
이순耳順에 들다 2018.08.08 (수)
어엿이 내 나이 이순트로트보다 발라드가 좋고연인들을 보면 가슴이 벌렁거리는데거울 속 모습은 할머니 호칭이 어색하지 않다이순에 들어서니무심히 버리고 온 것들이 어른거린다하루가 멀다 붙어 다니던 친구장흥 골 어느 카페부부동반 교회 모임형제처럼 오가던 지인들뚱뚱보 우리 언니하물며아끼던 이쁜 그릇들이며내 눈물 받아주던 옛집의 능소화까지추억은 한창 젊고 어여쁘다이순을 넘어서니지난날 부끄러운 기억을 꼬집고미안하다...
임현숙
필연 2018.08.08 (수)
3년 전, 한국 '조선일보 에세이'난에 실린 내 글이 어떤 독자에게 꽂혔다. 궁금증이 인 그녀, 나에 대해 알고 싶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하다 내 카카오스토리를 발견하고 뜬금없는 친구 신청과 댓글을 남긴다.그런데, 이게 웬일. 내 친구들이 달아 놓은 댓글을 쭉 훑어보던 중, 그녀의 고향 친구가 떡 하니 있지 않은가. 소녀 시절 신나게 뛰어 놀던 그녀의 옛 친구가 내 친한 친구로 말이다. 그녀도, 그녀 친구이자 내 친구인 그녀도, 나도, 경악을 했다....
박성희
칠월 2018.08.08 (수)
하늘과 함께 자라나는 숲기린처럼 목이 길어지고퍼즐처럼 초록물감 번져간다.숲이라 해서 한곳만바라보는 것은 아니다날아다니는 새에게 손짓하고건너편 숲 친구에게 한 눈 팔면서어부렁더부렁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바람도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휘파람새도 졸음 쫓는 7월때론 바깥세상 꿈꾸며키 작은 나무가자꾸만 목이 길어지는 7월
유우영
어릴 적 엄마는 흔들리는 젖니를 실로 묶은 후 갑자기 잡아당기셨다.“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엄마가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며 주문을 외우실 때, 나는 폴짝폴짝 마당을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오늘 치과에서 작은 어금니를 뽑았다. 그동안 잇몸 통증으로 음식을 씹을 수 없어 결국 임플란트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이 흐르는 치료실 분위기와 의사 선생님이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취 주삿바늘의 날카로움은 참기 힘든...
조정
햇볕 좋은날 2018.07.30 (월)
돌아가는 세탁기가 멈췄다떠그덕떠그덕, 삐- 삐-멈춘다는 것은무엇을 끝내고 쉰다는 것젖은 빨래야 햇볕에 말린다 해도젖은 그대 가슴 어디에 걸어둘꼬바람의 날개 밑에허공의 외딴 지붕위에젖은 빨래는 제 몸을 쥐어짜며보송보송 가벼워진다가벼워지는 빨래라야멈춰보는 삶이라야그대여, 너와 나의 사랑은그렇지, 젖은 빨래 같은 것그냥 젖은 옷 휘감고젖은 가슴 말리기에햇볕 좋은날.
김시극
음악은 흐르는데 2018.07.30 (월)
아바(ABBA)가 35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란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을지 모르지만, 노래는 새로운 거다.”요즘 기분이 좋다는 근황도 전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갈래머리 여학생 때, 아바의 호주 순회공연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보았다. 그 당시 유행하던 춤인 디스코 풍에 어울리는 경쾌한 리듬과 귀에 꽂히는 가사는 스웨덴 팝 뮤지션을 세계적으로 널리 이끌었다. 교복 차림으로 도심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라이브 공연과 음악인생이...
강은소
싸리꽃 핀다 2018.07.30 (월)
유월, 싸리꽃 핀다 어머니가 핀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싸리재 언덕,어머니 오르며 산나물 뜯던 산비탈 언덕, 먼 산 중턱에서 나물 보퉁이 이고아지랑이 가물가물 어머니 싣고 온다 목숨 줄 가랑가랑 9남매 북두칠성에 맡기시고, 어머니 비바람 허리춤에 감추시고 싸리재 오르신다 싸리재 오르시다 싸리꽃 무덤이 된 어머니, 어머니 마른 정강이에 먼 산 뻐꾸기 목놓아 운다 울며 간다 나도 어머니가 아파 운다 오늘 밤 그 어머니 소식...
이영춘
유엔젤보이스를 초청을 해서 밴쿠버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다음 날 시애틀 공연까지도 멋지게 마무리한 후 시내관광을 했다. 유엔젤보이스는 남자 성악가 5명(테너3명, 바리톤2명)과 피아니스트로 구성된 클래식 아이돌 그룹이다. 5명의 단원으로 구성 한 이유를 단장에게 물어 보았더니, 곡 중에 데스칸트(descant)-따로 떨어진 노래라는 뜻의 라틴어로 선율보다 높은 솔로 파트-를 연주 할 때 필요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밴쿠버에서 우리 뮤즈...
아청 박혜정
2018.07.23 (월)
설마 했다너만 할까아차 했다모든 것에쌍벽이 있다는 걸너와꽃과.
김경래
사랑의 조각보 2018.07.23 (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산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촉망 받는 의사가 되었지만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신부의 길을 선택한 젊은 청년, 이태석!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수단의 톤즈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다. 아픈 사람들을 진료하며 한센병이나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보살폈고,...
권은영
견고한 뿌리 2018.07.23 (월)
하늘에서 수직으로 뿌려지는 빗물,일종의 씨앗이다땅 위에 닿은그 작은 물방울 씨앗들을 새가 부리로 쪼면얼마나 시원하고 가벼운지 참, 새는 날 수 있고혹은 젖어있던 안개 속스스로 햇볕에 말려 싹을 틔우면아른거리듯 날아오른다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살아있는 빗물의 뿌리들이다산과 들, 강과 바다, 땅 위아래, 심지어 허공에도 물은 꿈틀거리며 뿌리를 뻗는다의심할 바 없이 나무들은 그 물 뿌리들의 후손이자 변신자...
하태린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