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 왜야." " 유나 깼어?"
재잘거리는 유쾌한 목소리와 함께 유나가 이층에서 내려오며 부산한 아침이 시작 된다. 내가 일찍 일어나 준비해 둔 잼 바른 빵, 바나나 반개, 계란 후라이, 우유, 야채 스프 그리고 여러가지 과일이 차려져 있다. 사과, 딸기, 블루베리, 방울 토마토, 포도 등등 거의 날마다 다섯가지 정도가 약간씩 종류별로 바뀌며 접시에 담겨진다.
두살 반인 손녀는 요즘 들어 부쩍 자란 것이 눈에 띈다. 다행히 먹성이 좋아서 잡채부터 시금치 무침, 김밥, 갈빗살 구이, 미역국에 밥 말은 것, 그리고 중국식 국수 등 매운 것 빼고는 못 먹는 것이 없으니 요리하는 것도 즐겁다. 엉뚱한 짓 하는 아이를 다그치며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나는 안간힘을 쓴다. 만족할 만큼 먹은 후에는 "바바" "아이 앰 던" 하고 의자에서 내려와 두발 모아 깡충 깡충 뛰면서 온 몸을 이리 저리 비틀고 까치발로 춤을 춘다. 전신에 푸른 생명력이 넘쳐나 어쩔줄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나 아빠 차를 타고 프리스쿨에 가야하므로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다. 가장 좋아하는 곰 인형 팬더를 안고 아이는 집을 떠난다. "바이"하는 손녀딸의 손에 디저트로 포도 한 알을 쥐어주니 "땡키. 할머니."하며 포도를 입에 넣고서 서양식으로 입을 벌리지 않고 오물오물 앙증맞게 씹는다. 오후 다섯시 반에 집에 돌아와 뒷뜰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크고 작은 무지갯 빛 비누 방울을 잡으려고 뛰어 다니며 흩날리는 아이의 머릿칼을 상상하며 섭섭하지만 나도 "바이"한다.
부녀가 먼저 떠난 후 나는 바쁘게 출근 준비하는 내 딸아이의 아침을 챙긴다. 인삼과 대여섯개의 대추를 넣어 어제 공들여 달여 놓았던 인삼차에 꿀과 레몬 한 조각을 짜 넣어 수저로 휘휘 저은 다음 식을세라 "Warming"이 작동된 오븐에 넣어둔다. 추위를 잘 타고 잔 기침을 자주하는 딸아이에게 주기 위해서다. 때로는 마실 시간이 없거나 마시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을 감시하면서 끊임없이 종종 걸음으로 다니며 살핀다. 샤워실 앞이나 식탁 위, 카운터탑 등 딸의 동선을 따라 딸을 겨냥하며 뒤를 쫓는다. 식기 전에 마셔 주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도, 피곤함에 지칠 아이의 하루를 지탱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컵 속에 가득하다. 옅은 갈색의 마알간 액체는 고풍스러운 우아함으로 컵과 조화를 이루며 고요히 담겨있다. 딸은 내가 차린 간단한 아침 식사인 프렌치 토우스트, 계란 후라이, 스프를 외면하고 초등학생인 큰 손녀의 점심 튜너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딸을 위하여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녁식사를 할 때도 아기부터 먹이고 다 끝난 후 수저를 들지만 벌써 음식이 모두 식어 맛없는 것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속이 상한다. 돌이켜 보면 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먹일 욕심으로 내 배가 고픈줄도 의식하지 못했었다. 어쩌다 내가 친정에 가면 엄마는 나를 안심 시키기 위해 아이에게 밥을 먼저 먹이고 나서 마음 편하게 밥을 먹도록 후딱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가셨다. 내 어머니와 같이 딸은 만든 점심을 가방 속에 다독여 잘 넣어주며 오늘 아침에 있을 직원들과의 미팅에 쓰일 자료들을 잠시 훑어보고 드디어 식어빠진 계란을 입에 넣는다.
이러다가 세상의 종말이 오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만큼 수많은 돌발사태에 심각한 우려를 하다가도 이렇게 표현할 수 없이 절절한 엄마들의 사랑이 있는 한 그들의 따스함이 종래에는 스산한 이 세상을 녹여내리라 믿는다. 물주고 거름주며 따스한 햇볕 끌어들여 튼실한 아름드리 나무로 자녀들을 길러내신 어머니와 동일한 행동을 면면히 이어오는 딸아이가 믿음직스럽다.
토실토실한 볼과 갓 따온 머루알 같은 새까만 두 눈망울, "만세" 하면 자기 머리위로 약간 올라오는 오동통한 짧은 팔, 한 순간에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신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윽한 미소, 남을 의식하지 않는 깔깔거리는 맑은 웃음소리, 울고난 후 그렁그렁 눈에 가득 고인 투명한 눈물 방울, 더듬거리며 말하는 불명확한 발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과 밖이 일치되는 그 순수, 천진함 어느 것 하나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는 아이가 오히려 나를 깨끗하게 씻어주고 위로해주며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준다. 하물며 이 아이는 얼마나 많은 귀여움으로 엄마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줄 것인가. 올 여름을 터질듯 한 성장의 시기를 살아내는 어린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는 행운에 나는 계속 즐겁다.
벌써 열시. 이제 커피 브레이크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고 뒷뜰에서 놀고 있는 야생토끼들을 카메라에 담는 호사도 느긋하게 누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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