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실존주의 철학용어 가운데 한계상황 이란 것이 있다. 이는 삶의 정황이 너무나 힘든 상태로, 마치 죽음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상황 앞에서 인간은 대체적으로 도피하려 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자기 존재가 상실되는 길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노라면 하나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삶을 돌아보면 나에게도 한 때 정신과 육체가 마치 소금물에 저린 배춧잎처럼 너무도 지치고 피곤하여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의 가장 깊은 바닥을 헤매던 때가 있었다. 참으로 숨이 막히고, 앞이 안 보여서 하루하루 견디어 가기에 벅차던 날들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동안 품어 본 때였다.
고등학교 졸업반시절이었다. 내가 그렇게도 의지하던 아버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체육시간에 기계체조를 하는 중에 실수를 하여 오른쪽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고 늑막염이 심화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대학 진학을 앞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밤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와중에 시력까지 악화 되어 그야 말로 내 인생의 어려운 길을 들어서게 되었다.
한쪽 눈의 시력이 거의 회복 할 수 없는 절망에 처해 있던 그 무렵 지체의 다른 한 쪽에서는 참출성 늑막염과 결핵으로 몸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집에서 버티기가 어려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병원으로 떠나면서 나의 남은 삶을 담보로 하나님께 도전장을 던진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입원하여 거의 6개월이 되어가던 어느 날 외롭게 뜬눈으로 밤을 지세는 중 새벽녘에
”이젠 내 인생도 거의 끝을 보게 되는구나.” 하고 아픈 눈을 감고 병원 천정을 바라보는 바로 그 때 어둠을 가르며 내 동공 속으로 떠오르는 빛 하나가 보였다.
“네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니라.”는 음성과 함께 ...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한 참 후에야 그것은 내가 어려서 주일학교 시절에 배운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 나는 떠나올 때 내 인생을 걸고 따져 보겠다던 도전장을 힘없이 내려놓고 말았다.
나는 일기장의 한 여백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분의 손이 짧아 바꾸실 수 없는 상황이 있을까?”
“하나님은 평소에는 속삭이지만, 고통 중에는 소리쳐 주신다.” 는 C. S. 루이스의 고통의 순간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인간은 오히려 신체적인 힘이 약한 존재요, 본능이 미약하게 발달한 존재요, 의존성이 큰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강해질 수 있음은 천부적인 강함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역설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강하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강한 자가 아니라 자신을 약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강해질 수 있는 그 역설 말이다.
세계 최대 전자회사인 일본의 마쓰시타 그룹의 회장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말한 성공 비결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많은 세상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몸이 약했기에 항상 운동에 힘써 늙어서도 건강할 수 있었으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다."
마쓰시타의 강함은 그의 약함을 자각하는 순간에서 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약하다고 느껴질 때 자기보다 더 강한 절대자를 찾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절대자를 향하여 자신을 맡길 때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크고 비밀한 것을 보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새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의 강함을 믿고 그것을 의지할 때는 결코 다른 힘의 원천을 바라볼 수가 없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그 앙망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때로는 지치고 연약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 때가 바로 우리 삶이 가장 강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일 때인 것이다. 또한 그 때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는 자리임을 기억할 때이다.
세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한계상황은 어쩔 수없는 숙명적인 사실로 받아드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노라면 하나 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약함과 강함의 함수관계”를 마침내 알아 가기에 ...
이와 같은 상황 앞에서 인간은 대체적으로 도피하려 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자기 존재가 상실되는 길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노라면 하나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삶을 돌아보면 나에게도 한 때 정신과 육체가 마치 소금물에 저린 배춧잎처럼 너무도 지치고 피곤하여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의 가장 깊은 바닥을 헤매던 때가 있었다. 참으로 숨이 막히고, 앞이 안 보여서 하루하루 견디어 가기에 벅차던 날들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동안 품어 본 때였다.
고등학교 졸업반시절이었다. 내가 그렇게도 의지하던 아버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체육시간에 기계체조를 하는 중에 실수를 하여 오른쪽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고 늑막염이 심화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대학 진학을 앞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밤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와중에 시력까지 악화 되어 그야 말로 내 인생의 어려운 길을 들어서게 되었다.
한쪽 눈의 시력이 거의 회복 할 수 없는 절망에 처해 있던 그 무렵 지체의 다른 한 쪽에서는 참출성 늑막염과 결핵으로 몸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집에서 버티기가 어려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병원으로 떠나면서 나의 남은 삶을 담보로 하나님께 도전장을 던진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입원하여 거의 6개월이 되어가던 어느 날 외롭게 뜬눈으로 밤을 지세는 중 새벽녘에
”이젠 내 인생도 거의 끝을 보게 되는구나.” 하고 아픈 눈을 감고 병원 천정을 바라보는 바로 그 때 어둠을 가르며 내 동공 속으로 떠오르는 빛 하나가 보였다.
“네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니라.”는 음성과 함께 ...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한 참 후에야 그것은 내가 어려서 주일학교 시절에 배운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 나는 떠나올 때 내 인생을 걸고 따져 보겠다던 도전장을 힘없이 내려놓고 말았다.
나는 일기장의 한 여백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분의 손이 짧아 바꾸실 수 없는 상황이 있을까?”
“하나님은 평소에는 속삭이지만, 고통 중에는 소리쳐 주신다.” 는 C. S. 루이스의 고통의 순간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인간은 오히려 신체적인 힘이 약한 존재요, 본능이 미약하게 발달한 존재요, 의존성이 큰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강해질 수 있음은 천부적인 강함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역설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강하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강한 자가 아니라 자신을 약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강해질 수 있는 그 역설 말이다.
세계 최대 전자회사인 일본의 마쓰시타 그룹의 회장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말한 성공 비결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많은 세상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몸이 약했기에 항상 운동에 힘써 늙어서도 건강할 수 있었으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다."
마쓰시타의 강함은 그의 약함을 자각하는 순간에서 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약하다고 느껴질 때 자기보다 더 강한 절대자를 찾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절대자를 향하여 자신을 맡길 때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크고 비밀한 것을 보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새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의 강함을 믿고 그것을 의지할 때는 결코 다른 힘의 원천을 바라볼 수가 없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그 앙망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때로는 지치고 연약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 때가 바로 우리 삶이 가장 강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일 때인 것이다. 또한 그 때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는 자리임을 기억할 때이다.
세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한계상황은 어쩔 수없는 숙명적인 사실로 받아드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노라면 하나 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약함과 강함의 함수관계”를 마침내 알아 가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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