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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하는 한 가지

김재학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3-07 09:55

만일 누군가가 나의 인생을 살피면서 ‘당신이 평생을 살면서 잘 한 게 뭐요, 한 가지라도 잘 한 게 있으면 한 번 이야기해 봐요.’ 하고 묻는다면 딱 하나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13여 년 전 Providence 신학교의 기혼자 기숙사에 거할 때의 일이다. 기숙사 옆에는 시내라고 불러야 더 적당할 작은 강 Rat River가 흐르고 있는데, 강을 따라 산책을 하다 보면 덤불 속의 오솔길도 걷게 된다. 그 날도 길을 따라 걷다가 안타까운 어떤 날갯짓을 듣고 무슨 소린가 하고 가만히 가보니 새 한 마리가 가시덤불 속에 갇혀 빠져나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조심스럽게 가시덤불을 헤치고 아무런 저항 없이 내 손에 안기는 그 새를 꺼내어 보내 준 적이 있었다. 꽤 세월이 지난 후에 우연히 미국의 여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의 한 구절을 읽었다.  “내가 만일 기진맥진 지쳐있는 한 마리의 물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만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If I can…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

  “그래 맞아, 내가 그런 적이 있지. 그때 산책을 하다가 새를 구해 주었잖아.” 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하였다.
또 있다. 가라지세일 구경 하다가 ‘저거 참 쓸모가 있겠다.’ 싶어 동전 한두 개 주고  산 삼겹살 전기구이 판이다. 지금이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한동안 딸과 함께, 또는 지인들과 함께 기름이 쭉 쭉 잘 빠지는 이것으로 노랗게 구운 고기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어린이들, 유학생들은 물론 제법 많은 숫자의 지인들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며 먹을 때 ‘저거 정말 잘 샀네’ 하고 흐뭇해 했다.

살다보면 이처럼 내가 나에게 ‘너 참 잘 했어. 퍽 잘 한 일이야’라고 기특해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한 가지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내가 던진 한마디 말을 통하여 알게 되었 다. 인터넷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한 후 답장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홈페이지의 글을 읽는데, 외출 준비를 한 아내가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돼요?”하고 물었다. “아, 기도하고 성경 읽고, 또 인터뷰 …”하는 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 무슨 기도를 한다고 그래요” 한다. 나는 “아, 지금은 국어 공부 하는 중이야.” “아침부터 무슨 국어 공부, 이불이 헝클어 졌으니 정리 좀 하소” 하였다.

  아내는 내가 국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즐겁게 하는지 모른다. 어제는 ‘성탄이 일 년도 안 남았어요’라는 시를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사용하였는데 듣는 이는 나처럼 감동하며 웃었다. 내가 청년들이나 학생들에게 종종 사용했던 ‘파이팅’이라는 말 대신 ‘아자, 아자’라는 순 우리말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모른다. 오늘 아침엔 ‘고샅길’의 의미를 알기 위해 몇 년 동안 손댄 적 없는 한영사전을 찾아 ‘골목길, 골짜기’라는 뜻을 안 후 ‘이런 우리말이 있었네!’ 하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어느 문인이 운영하는 몽당연필 홈페이지에 올려 진 글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하여튼 내 말을 별로 신용하지 않는 아내 말을 들으면서 ‘나도 잘하는 한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번득 알게 된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이불을 정리하는 일이다. ‘아니, 이불 정리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불 정리를 잘 한다고 아내에게 인정(?)을 받게 된 데는 캐나다 사람들은 물론 신세대 한인들도 모르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군 복무 대신 근무하는 회사에서 ‘아더매치유’(*아니꼽고 더럽고 매시 꼽고 치사하고 유치하다) 해서 못하겠다며 자원하여 입대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군을 다녀와야 사회에서 할 말이 있다.’는 거창한 이유를 억지로 갖다 붙이며 군대에 들어가 딱 하루도 감하지 않은 3년을 복무하였다. 그리하여 오 대 장성(준장, 소장, 중장, 대장, 병장) 중의 하나라는 그 이름 당당한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였다.   그 유명한 논산 훈련소에서부터 대한민국 육군의 신조를 암송하였고, 그림자에 옷깃만 스쳐도 아직도 생생한 군번 ’1339XXXX 이병 000.’을 외쳤으며, 땡볕에 태권도를 배우며, 논두렁의 물을 마시며, 졸면서 행군을 하며, 낫도 없이 싸리 빗자루를 만들며, 쫄쫄 비를 맞으며 천막 속에서 잠을 자며, 없는 애인의 이름을 소리소리 질러 부르며 유격훈련을 받았다. 또한, 군번을 잘 못 받아 제대하는 두 달 전까지 열 차례, 머리 박아, 쪼그려 뛰기, 피티체조를 하며 선임자를 섬겼다.  나처럼 병장으로 제대한 사람들은 다 짐작하겠지만, 자동으로 몸에 익혀진 생활신조 중의 하나가 ‘군인은 죽어서도 오와 열을 맞춘다.’였다. 군화, 군복 바지, 상의, 내복, 모자는 물론 식기, 모포, 침낭, 침대부터 열병과 사열, 전투 능력 측정 등의 모든 훈련과 상황에서 칼날같이 각을 잡고 오와 열을 맞추는 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몇 달 전 이불을 정리하였다. 내가 반듯하게 정리한 이불을 보고 아내가 신기해하였다. 그때 이후 이불 정리는 당연히 나의 몫이 되고 말았다. 오늘 아침, 아내는 내가 국어 공부를 이처럼 즐겁게 하는 줄을 모르고 ‘이불 정리 좀 하소’하고는 나간다. ‘그래, 나만큼 이불 정리 잘하는 사람 우리 집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아니 우리 타운하우스에라도 있으면 나와 봐.’ 이런 생각을 하며 이불을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문득 현역 육군 후배들이 생각났다.

  비록 2년 혹은 20개월로 복무 기간이 줄었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불편한 점을 넘어 힘든 일이 오죽 많을까? “이만큼 나라가 부강해졌고 살기 좋아졌기에 너희 편한 줄 알아”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그러나 경험으로 해주고 싶은 한 두 마디가 있다. ‘버릴 것 하나도 없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군에서 태권도 배울 때 요령 피우지 마시라. 나중에 캐나다라도 오게 되면 인구 천명인 시골에도 태권도 교실 있다. 그때 검은 띠만 되어도 존경받고 4~5단만 되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개업도 할 수 있다. 군에 있을 때 각 잡는 것도 억지로 하지 마시라’ 지금은 없다고 들었지만. 나중에 아내에게 점수 딸 수 있는 비결도 된다. 아 참, 하나 더 있다.

  지금 가까이하는 청년은 군에서 맺은 선임자와의 인연으로 지금도 서로 호형호제하는데 며칠 전에도 미국 LA에서 여기 Kelowna까지 그 선임자가 방문하여 ‘맛있는 것 사 주고 돌아갔다.’고 기뻐하였다.”

  “따라 한다. 실시”  “ 군인은 – 군인은 “ “ 죽어서도 – 죽어서도 “ “ 오와 열을 - 오와 열을” “ 맞춘다 -맞춘다” “알았나. 알았나.”  “이 자식들 봐라. 군기가 빠졌어. 알았나.”  “예.” “목소리 봐라.” 악을 쓰면서  “예.”

  남자들에게 군(軍 )이란 넘어야 할 태산이지만 그 태산은 남자를 남자답게 만들어주는가 하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누구나 군인이라면 병역의 의무를 떠나서 험산준령을 넘어 산 아래 당도할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많은 걸 습득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가장 잘 한 일’도 군대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아닌가. 내가 아내에게 ’이불정리‘라도 인정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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