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내가 살던 낙동강 상류에는 유달리 풀꽃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그 풀꽃을 따서 강물에 띄워 보내며 놀곤 했습니다. 그 중에도 들찔레 새순을 꺽어 먹던 달콤 쌉쌀하고 풋내음이 입 안에 풍겨나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집 이웃에 초등학교 선생 한 분이 계셨습니다. 어린 내 눈에는 그분이 늘 우러러 보였습니다. 나는 강마을, 농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범한 재주도 없고 책가방 끈도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 소년 적 꿈이래야 고향 초등학고 훈장이 돼서 풀꽃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해방과 더불어 6.25 한국전쟁등 퍽이나 힘들었던 세월이었고, 규제가 심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쓰라린 과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그 시절 그런 힘들었던 경험이 내 인생을 견뎌내게 한 큰 힘이 되기도 했고 또 힘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서 역으로 자유를 추구해 왔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 때는 별로 읽을 책도 없었지만 읽었다 해도 모든 것을 제대로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책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석처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영역 밖의 일로 생각되었고 특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러러 보였습니다. 그런 상반되는 요소를 내 나름대로 하나의 품격으로 아우르려고 무척이나 힘들어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나에게도 드디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내 나이 칠순을 바라보던 날 남은 세월을 좀 더 보람을 가지고 살고픈 마음에서 Evergreen Academy를 섬기면서 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의 마음을 셀(공동체) 게시판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기회가 되어 주위 사람들의 추천으로 문인의 길을 들어서면서 마침내 내 인생의 큰 나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또 수필가인 늘샘 반병섭 목사님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동안 내가 습작한 글을 가지고 목사님을 찾아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댁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 음식점에서 피쉬버거와 커피를 시켜 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글을 쓰는데 자신이 없어하는 나에게 목사님은 “수필은 나이 먹음의 문학” 이라시며 지금이야 말로 내가 수필을 쓸 때라고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약 일 년을 목사님과 함께 한 세월 속에서 다듬고 애 쓴 가운데 나의 수필이 “순수문학” 월간지를 통해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보고 듣고 익혀서 지적인 요소를 내 속에 충분히 축적한 다음에 매사를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칠순의 어귀에 이르러 때늦게 초심을 찾아 들풀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가는 계절 따라 꽃이야 피겠지만 어찌 그윽한 향기까지 기대 할 수야 있었겠습니까만……
시골 강마을 논두렁길에서 시작된 나의 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고도 짧았습니다. 어느덧 내 나이 인생의 오후가 왔음을 의식합니다. 약간은 아쉽고 초조해집다. 지나 온 세월보다 남은 삶이 다욱 짧아 보이는데도 풀리지 않고 알쏭달쏭하기만 한 것들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개구쟁이 시절 초연했던 그 때 처럼 흘러가는 물 섶에 피어나던 들플의 아름다운 풀꽃들을 생각하면서 더욱 자유롭게 더 조용히 또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에게 있어 수필은 시로 쓴 소설이요, 소설로 쓴 철학이요, 언어로 그린 명화요, 뜻으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또한 수필이야 말로 나에게 있어 거짓 없는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미래 문학의 주류는 수필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스스로 갖게 되기도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나의 생활 곁에, 삶 속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는 문학이 수필인 것 같습니다. 또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의 삶과 내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한숨이 나오거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나, 외로움이 깊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그냥 낙서일 수도 있고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글일 수도 있습니다.
수필이 마음의 산책, 독백의 문학 이라는 것은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내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문학임을 강조하시던 나의 스승이신 늘샘 반병섭 목사님이 오늘 따라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그 시절, 들풀의 언덕에서 찔레를 꺾으며 초등학교 선생을 꿈꾸던 어린 소년이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Evergreen Academy를 섬기는 리더의 한사람으로써 글을 쓰며 살아가는 요즘이 더욱 그렇습니다.
내 집 이웃에 초등학교 선생 한 분이 계셨습니다. 어린 내 눈에는 그분이 늘 우러러 보였습니다. 나는 강마을, 농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범한 재주도 없고 책가방 끈도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 소년 적 꿈이래야 고향 초등학고 훈장이 돼서 풀꽃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해방과 더불어 6.25 한국전쟁등 퍽이나 힘들었던 세월이었고, 규제가 심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쓰라린 과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그 시절 그런 힘들었던 경험이 내 인생을 견뎌내게 한 큰 힘이 되기도 했고 또 힘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서 역으로 자유를 추구해 왔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 때는 별로 읽을 책도 없었지만 읽었다 해도 모든 것을 제대로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책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석처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영역 밖의 일로 생각되었고 특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러러 보였습니다. 그런 상반되는 요소를 내 나름대로 하나의 품격으로 아우르려고 무척이나 힘들어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나에게도 드디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내 나이 칠순을 바라보던 날 남은 세월을 좀 더 보람을 가지고 살고픈 마음에서 Evergreen Academy를 섬기면서 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의 마음을 셀(공동체) 게시판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기회가 되어 주위 사람들의 추천으로 문인의 길을 들어서면서 마침내 내 인생의 큰 나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또 수필가인 늘샘 반병섭 목사님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동안 내가 습작한 글을 가지고 목사님을 찾아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댁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 음식점에서 피쉬버거와 커피를 시켜 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글을 쓰는데 자신이 없어하는 나에게 목사님은 “수필은 나이 먹음의 문학” 이라시며 지금이야 말로 내가 수필을 쓸 때라고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약 일 년을 목사님과 함께 한 세월 속에서 다듬고 애 쓴 가운데 나의 수필이 “순수문학” 월간지를 통해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보고 듣고 익혀서 지적인 요소를 내 속에 충분히 축적한 다음에 매사를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칠순의 어귀에 이르러 때늦게 초심을 찾아 들풀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가는 계절 따라 꽃이야 피겠지만 어찌 그윽한 향기까지 기대 할 수야 있었겠습니까만……
시골 강마을 논두렁길에서 시작된 나의 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고도 짧았습니다. 어느덧 내 나이 인생의 오후가 왔음을 의식합니다. 약간은 아쉽고 초조해집다. 지나 온 세월보다 남은 삶이 다욱 짧아 보이는데도 풀리지 않고 알쏭달쏭하기만 한 것들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개구쟁이 시절 초연했던 그 때 처럼 흘러가는 물 섶에 피어나던 들플의 아름다운 풀꽃들을 생각하면서 더욱 자유롭게 더 조용히 또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에게 있어 수필은 시로 쓴 소설이요, 소설로 쓴 철학이요, 언어로 그린 명화요, 뜻으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또한 수필이야 말로 나에게 있어 거짓 없는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미래 문학의 주류는 수필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스스로 갖게 되기도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나의 생활 곁에, 삶 속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는 문학이 수필인 것 같습니다. 또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의 삶과 내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한숨이 나오거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나, 외로움이 깊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그냥 낙서일 수도 있고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글일 수도 있습니다.
수필이 마음의 산책, 독백의 문학 이라는 것은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내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문학임을 강조하시던 나의 스승이신 늘샘 반병섭 목사님이 오늘 따라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그 시절, 들풀의 언덕에서 찔레를 꺾으며 초등학교 선생을 꿈꾸던 어린 소년이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Evergreen Academy를 섬기는 리더의 한사람으로써 글을 쓰며 살아가는 요즘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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