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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박정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2-27 13:49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크리스마스이브, 지금쯤 사람들은 즐겁게 캐럴송을 부르거나 크리스마스 선물에 한껏 마음을 빼앗길 시간이다. 하지만 난 그런 것들을 마음에 담을 여유가 없다. 항상 그렇듯 오늘도 난 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며 출근을 하고 있다. 앨버타 북쪽에 있는 시골 병원에서 간호사를 시작한지가 벌써 몇 년이 되어간다.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쌓은 다년간의 경험이 있었기에 처음엔 이런 시골병원 일은 쉬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많은 의료진들과 같이 일을 하던 도시병원과는 달리 시골은 부족한 인력 탓에 간호사가 단독으로 해야 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특히 오늘처럼 최소한의 인력으로 근무를 하는 크리스마스이브는 더욱 부담스럽기만 하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까지 있다 보니 근무 시작부터 마음이 분주하기만 하다. 최대한 환자를 편안하게 보내주고 싶고 또, 가족들도 마음 다치지 않게 해주고 싶은데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너무 많기만 하다. 임종하는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할애하려고 서둘러 다른 일들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직원이 달려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간호사를 부른다. 환자 한명이 식자 중에 질식을 했다는 거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하듯 달려가 보니, 환자는 이미 얼굴이 파랗고, 말도 못하고 반응도 없다. 장갑을 착용할 몇 초도 낭비할 수 없음을 알기에 난 그냥 맨손을 꽉 다문 환자 입속으로 집어넣어 틀니를 억지로 뽑아낸 후 입에 가득한 음식을 긁어낸다. 그리곤 바로 환자 뒤로 돌아가 가슴을 쳐 올린다. 시간이 2분,3분이 지나도 환자가 호흡이 돌아오질 않는다. 점점 환자의 심장은 멈춰 가는데, 그럴수록 내 심장은 더 빨리 뛴다. 결국은 환자가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대소변을 다 보았는지 주위가 냄새로 진동을 한다. 괄약근이 열렸다는 건 죽음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소생술을 멈출 수가 없다. 덩치 큰 환자의 가슴을 쳐 올리던 내가 땀으로 범벅이 되자 동료 간호사가 손을 바꿔 교대로 들어와 준다. 난 급히 달려 나가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지원요청을 하고 돌아와 보니, 다행히도 환자가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환자를 들어 침대로 옮기고, 오물로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힌 후 산소를 주며 안정을 시킨다. 환자가 안정이 되었는데도 방망이질 치던 내 심장은 바로 정상이 되질 않는다. 난 소리를 내서 자신에게 힘주어 말해본다. “살았어. 이제 괜찮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여유도 없이 이번엔 임종간호를 받는 환자 가족이 달려와 썩션을 해달라고 한다. 편안한 임종을 맞겠다는 환자이니 일단 다가가 얼굴을 살펴본다. 혀가 벌써 파랗다. 살짝 만져본 다리는 이미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다. 죽음이 서서히 올라와 심장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임종이 다가오면 모두 숨이 차오른다. 그 숨을 편안하게 하려고 몸속에 튜브를 넣어 가래를 빼주는 것이 썩션인데, 이게 환자에겐 상당히 고통스런 일이다. 이제 몇 걸음 안 남았다 싶은데 굳이 썩션을 해서 고통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내 판단만을 고집할 수 없기에 난 보호자의 의견을 묻는다. 대답하기 어려운지 보호자는 돌려서 다시 내 의견을 묻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는 건 청각이다. 그러니 환자가 의식이 없다고, 그 앞에서 마지막이니 뭐니 이런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난 최대한 말을 골라 조심스레 대답을 해본다. “썩션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되레 고통만 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손을 잡고, 하고 싶은 말을 들려주십시오.” 고통 없이 마지막 숨을 고르게 하고 싶다는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보호자가 쉽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4분 후, 보호자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 나온다. 청진기를 들어 환자의 심장에 대본다. 고요하다. 난 임종을 알리며 가능한 강한 척 해보지만 내 속에 든 인간은 눈물을 흘린다. 난 그저 “I am so sorry.”라는 말과 함께 보호자에게 두 손을 내민다. 보호자는 다가와 나를 껴안는다. 임종한 환자 옆에서 우린 이렇게 포옹을 하며 서로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 때 우리가 하는 말은 딱 한마디뿐이다. “Thank you for being with us.(함께 해줘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돈, 음식, 도움 등등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매번 다른 이유들로 감사를 한다. 하지만 죽는 순간,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전혀 감사할 이유가 되질 않는다. 아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결코 변하지 않을 딱 한 가지 감사 이유는'함께함'일 것이다. 난 내 환자가 외롭게 떠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해준 보호자가 고맙고, 가족들은 자신들과 그 시간을 함께 해준 내가 고마운 거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다 살아났고, 누군가는 평화에 들었고, 누군가는 가족을 보내며 영원한 이별을 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날이지만 누구도 다치거나 불행해지진 않았다. 그건 바로 환자의 침상 옆에서 우리도'함께함'이라는 소중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눴기 때문이다. 이 선물은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위로하며 죽음마저 불행이 아니도록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란 멋지게 장식된 트리, 화려한 선물, 즐거운 캐럴송으로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 크리스마스란 그저 사람들과 함께하는 날이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마스이브에 오신 그분도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오시질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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