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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름날의 사모>를 읽고

수필가 심현숙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1-14 16:37

 얼마 전 장성순장로님께서 근간에 출간한 이민자의 에세이집 <잃어버린 여름날의 思慕>를 주시며 평을 부탁하셨다. 나는 평론가도 아닐뿐더러 이민이나 인생에서 대선배님이신 분의 수필집을 평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 여겨져 조심스레 소감만을 적어보려고 한다.

  이 책은 한 권의 평범한 수필집이 아니다. 한 개인의 숨겨진 이민사이며 솔직한 삶의 고백이다.
  어릴적 복순이의 추억부터 일본인 담임선생님과의 이별, 해방의 기쁨, 6.25전쟁의 상흔, 아내와의 만남, 참혹했던 월남전, 이민으로 인한 가족들과의 이별, 이민지에서 겪어야만 했던 설움과 아픔, 좌절 그리고 고생, 딸 다섯을 키우면서 겪었던 애환, 어머님의 별세, 최초 이민 교회 설립자 반병섭목사님의 이야기, 여행기, 다섯 딸과 사위의 부모님에 대한 글들이 한 편 한 편 모아져 소중한 산문집이 되었다.

  총5부로 제1부 시간은 바람인가, 제2부 세월 속에 쌓인 정, 제3부 잃어버린 여름날의 사모, 제4부 봄날은 떠나갑니다, 제5부 Five Sisters Stories로 꾸며졌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보여주는 삶의 지침서이다. 어느 페이지를 넘겨봐도 반듯한 장로님이 보인다. 겉보기는 대쪽같이 뻣뻣해 보이는데 책 속에서 만난 장로님은 세심하고 예리하면서도 얼마나 정이 많고 한도 많으신 분인지, 문학을 할 수 있는 천성을 타고나신 분인 것 같다.

  문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연세 드신 분들 특유의 수식어 같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글이 따뜻하고 힘이 있다.

  장로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닿은 말이 회한이라는 단어이다. 글의 여기저기에 이 단어가 눈에 많이 뛴다. 그 만큼 장로님에게 이민의 생은 회한의 삶이었다. 40대초반 모든 열정과 가능성을 접고 태평양 건너 광활한 땅 캐나다에 행복한 삶과 비전을 찾아왔던 장로님에게 그만 이민은 찬란한 꿈이 아니라 어둡고 괴로운 속박이었다. 자기의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남의 땅, 이곳은 장로님과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낯선 문화와 언어의 장벽 그리고 훈련되지 않은 노동, 이런 충격으로 웃음을 잃고 향수병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웠지만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헤쳐 나왔다. 부모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다섯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좌절이나 절망에 멈출 수 없어 캄캄한 굴을 뛰며 지나왔노라고 피력하셨다. 끈기 있는 인내와 근면 그리고 경제의식을 갖고 전진한다면 이국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신념 그리고 희망이 있었기에 힘든 이민생활이 가능했다고 하셨다.

  열두 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데도 비행기 푯값에 매달려 영원히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한 불효자식의 회한은 세월이 흐른다 해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라고 고백 하셨다.

  장로님은 가족사랑이 유별나신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란 곧 책임이 아니겠는가. 넷째 딸의 글에 보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가르치셨고 딸들이 커가면서는 직업목표까지 세워주시며 "부지런히 일해야한다”고 교육시키셨다. 교육관이 확고하고 자식에 대한 포부가 크셨던 부모님덕에 딸 다섯명이 모두 백인 주류사회에서 전문직(약사, 교사, 의사, 방송인, 물리치료사)에 종사하며 활약하고 있다. 가문의 자랑이요 한인의 자랑이다. 특히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지아비의 애틋함이 책 구석구석에 배어있다. 아내가 수술하던 날 혼자 병원에 두고 일하러 간 심정이 오직 했겠는가.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아내의 창백한 얼굴위에 흐르던 눈물방울은 사죄의 의미였으리라.

  "6월이 오면 심연에 묻었던 까마득한 기억들이 부스스 깨어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현충일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부상당한 전우들, 지금 불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그 들, 예상치 못한 고엽제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을 내 전우들은 조국 땅 어느 곳에서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지내는지."  장로님이 얼마나 부하들을 사랑하고 아꼈는지 알 수 있는 구절이다.

  이제 장로님은 이민의 꿈을 이루셨고 은퇴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글쓰기와 운동, 여행, 그리고 봉사활동을 하신다. 지금은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이 어르신께서 온 가족이 모여서 하는 패일리디너(딸들이 자기 집에서 돌아가며 준비함)에 오래오래 참석하실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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