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시간이 모이면 세월이고 세월을 쪼개면 시간이다. 과거를 뒤돌아 볼 때도 있고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미래보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세월을 가늠해본다. 특히 가을이 짙어지고 첫 추위가 올 때쯤이면 문득 문득 머릿속에 인이 박힌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중에 어린 시절 할아버지 방 귀퉁이에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 다뤄졌었던 상자가 맨 먼저다.
할아버지 방은 굉장히 단조롭다. 우선 방문을 열면 일 년 열두 달 항상 깔려 있는 하얀 풀 먹인 광목담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벽에는 옷걸이용 대나무가 가로질러 있고 그 위에는 외출용 한복 한 벌이 걸려있다. 천장 가까이 있는 선반에는 망건과 같은 가벼운 물건들이 얹혀있다. 담뱃대와 놋쇠 재떨이도 중요한 구성인자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면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 두어 포대도 숨을 쉬고 있다. 첫눈에 볼 수는 없지만 찬찬히 보면 또 하나의 물건이 있다. 구석진 곳에 뭔가에 덮여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게 의문의 그 상자. 우린 그걸 보물 상자라 부른다.
오랜 세월 동안, 어른이 되면 한동네에 분가해 살았던 집성촌이라서 4촌, 6촌들이 많았다. 학교가 파하면 누구 할 것 없이 할아버지댁에 모였다. 우선 집이 넓고 먹을게 많았다. 봄엔 딸기를, 여름엔 참외도 먹을 수 있었다. 좀 더 지나면 옥수수랑 고구마도 맛 볼 수 있었다. 큰어머니의 인심도 후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곳에 간 이유는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연세가 들어 농사일에서 손 떼고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게셨다. 그 당시 시골에서 노인이 집에서 할 일이란 게 한정 돼 있었다. 닭 모이주기, 소 여물 준비하기, 마당 쓸기, 간혹 텃밭에 거름 얹기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손자들이 모여들면 무척 반겼다.
우리가 궁금해 하던 그 상자를 열 때도 있다. 종이를 물에 풀어 만든 그 상자는 꼬맹이가 앉아도 될 정도로 튼튼하다. 내용물은 더 견고하리라 모두 생각한다. 우선 들깨를 섞은 조청을 한 숟갈씩 주신다.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게 조청인데 그 귀한 걸 먹는다는게 보통 호사가 아니다.
그다음 코스는 제리다. 이빨 약한 할아버지를 위해 항상 말랑한 과자류가 준비 돼 있었다. 이것도 우리 몫이다. 사실 할아버지는 단걸 별로 안 좋아하신다. 누군가 주면 그냥 그 상자에 채곡채곡 쌓아 두신다.
계절상품인 홍시도 간혹 있다. 이건 시간을 놓치면 식초가 되기 때문에 퍼뜩 소화시켜야 된다는 걸 당신도 잘 알고 계신다. 이걸 우리에게 주시면서 정작 할아버지는 마냥 쳐다만 보신다. 그리고 놀다 지쳐서 쓰러져 할아버지방에 길게 뻗어 잔다. 북풍한파가 몰아쳐도 할아버지방은 쩔쩔 끓는다. 문풍지가 바람 타는 소리가 들려도 방바닥은 맨발로 서 있기 힘들 정도다.
소죽솥이 할아버지 방 아궁이에 걸쳐 있고, 군불용으로 또 짚단 너댓 개를 불길 저 안쪽으로 집어 넣는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윗목을 찾아 뱅글뱅글 돌다가 그 중요한 상자를 차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한번도 할아버지 허락 없이는 그 상자를 열어 본적이 없다. 새벽녘에는 모두 할아버지 담요 밑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든다.
어느듯 불기가 그리워지는 초겨울이 왔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모두 자기만이 간직한 따뜻한 기억이 있으리라 본다. 나는 할아버지방의 그 상자를 생각하면 좀 덜 추운 것 같기도 하다. 정작 받은 걸 돌려 드려야 하는데 당사자는 먼 길을 떠나 버렸다. 훗날 손주가 생기면 할아버지 역할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끝>
할아버지 방은 굉장히 단조롭다. 우선 방문을 열면 일 년 열두 달 항상 깔려 있는 하얀 풀 먹인 광목담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벽에는 옷걸이용 대나무가 가로질러 있고 그 위에는 외출용 한복 한 벌이 걸려있다. 천장 가까이 있는 선반에는 망건과 같은 가벼운 물건들이 얹혀있다. 담뱃대와 놋쇠 재떨이도 중요한 구성인자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면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 두어 포대도 숨을 쉬고 있다. 첫눈에 볼 수는 없지만 찬찬히 보면 또 하나의 물건이 있다. 구석진 곳에 뭔가에 덮여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게 의문의 그 상자. 우린 그걸 보물 상자라 부른다.
오랜 세월 동안, 어른이 되면 한동네에 분가해 살았던 집성촌이라서 4촌, 6촌들이 많았다. 학교가 파하면 누구 할 것 없이 할아버지댁에 모였다. 우선 집이 넓고 먹을게 많았다. 봄엔 딸기를, 여름엔 참외도 먹을 수 있었다. 좀 더 지나면 옥수수랑 고구마도 맛 볼 수 있었다. 큰어머니의 인심도 후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곳에 간 이유는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연세가 들어 농사일에서 손 떼고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게셨다. 그 당시 시골에서 노인이 집에서 할 일이란 게 한정 돼 있었다. 닭 모이주기, 소 여물 준비하기, 마당 쓸기, 간혹 텃밭에 거름 얹기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손자들이 모여들면 무척 반겼다.
우리가 궁금해 하던 그 상자를 열 때도 있다. 종이를 물에 풀어 만든 그 상자는 꼬맹이가 앉아도 될 정도로 튼튼하다. 내용물은 더 견고하리라 모두 생각한다. 우선 들깨를 섞은 조청을 한 숟갈씩 주신다.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게 조청인데 그 귀한 걸 먹는다는게 보통 호사가 아니다.
그다음 코스는 제리다. 이빨 약한 할아버지를 위해 항상 말랑한 과자류가 준비 돼 있었다. 이것도 우리 몫이다. 사실 할아버지는 단걸 별로 안 좋아하신다. 누군가 주면 그냥 그 상자에 채곡채곡 쌓아 두신다.
계절상품인 홍시도 간혹 있다. 이건 시간을 놓치면 식초가 되기 때문에 퍼뜩 소화시켜야 된다는 걸 당신도 잘 알고 계신다. 이걸 우리에게 주시면서 정작 할아버지는 마냥 쳐다만 보신다. 그리고 놀다 지쳐서 쓰러져 할아버지방에 길게 뻗어 잔다. 북풍한파가 몰아쳐도 할아버지방은 쩔쩔 끓는다. 문풍지가 바람 타는 소리가 들려도 방바닥은 맨발로 서 있기 힘들 정도다.
소죽솥이 할아버지 방 아궁이에 걸쳐 있고, 군불용으로 또 짚단 너댓 개를 불길 저 안쪽으로 집어 넣는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윗목을 찾아 뱅글뱅글 돌다가 그 중요한 상자를 차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한번도 할아버지 허락 없이는 그 상자를 열어 본적이 없다. 새벽녘에는 모두 할아버지 담요 밑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든다.
어느듯 불기가 그리워지는 초겨울이 왔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모두 자기만이 간직한 따뜻한 기억이 있으리라 본다. 나는 할아버지방의 그 상자를 생각하면 좀 덜 추운 것 같기도 하다. 정작 받은 걸 돌려 드려야 하는데 당사자는 먼 길을 떠나 버렸다. 훗날 손주가 생기면 할아버지 역할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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