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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삶의 초록빛 배경

조정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0-21 17:09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유럽의 문화유산 답사라는 기대 속에 나는 지난봄 남편과 23일 동안의 첫 유럽 여행길에 나섰다.
"아는 만큼 보인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유럽 여행은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의 구슬처럼 쓸모없어질 것이다." 는 말을 염두에 둔 준비 작업은 시작부터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각 도시의 숙소와 항공권, 바티칸 박물관과 우피치 미술관 그리고 파리 패스 예약, 많은 유적지의 위치와 역사 공부, 지하철 노선 익히기 등의 준비 작업은 개별 여행에 대해 자주 회의를 하게도 했다.
돌아보면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점이 개별 여행의 장점이었지만 고물가의 유럽에서 숙식과 교통편을 우리 스스로 해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매력적인 유럽의 도시들을 상상하며 설레임으로 보낸 날들은 우리가 여행지에서보다도 심리적인 만족감을 공유한 시간이었다.

 “여행은 그 어떤 일보다 행복을 찾는 일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유럽 여행지에서 담은 사진들을 보며 그 날들이 눈부신 날들이었음을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사진에 담겨있는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새로운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낯선 도시에서 상상 속에 그리던 장소를 찾아 어렵게 도착한 곳은 언젠가 와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곳에 대해 깊은 이해와 기억을 돕기 위한 사진 찍기는 핵심적인 일과가 되기도 했다.
빛나는 역사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도시에서 인간 삶의 경이로움을 확인하고, 나 또한 그들이 이루어 낸 문화 유산의 수혜자라는 자각이 들 때엔 심리적인 풍요로움을 가져 보기도 했다.
23일 동안 걷고 또 걷는 극기훈련 속에 본 유적지와 성당, 궁전, 박물관, 미술관, 건축물, 오페라 극장을 내 좁은 식견의 언어 능력으로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했으며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일상적인 감탄사는 무례를 범하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의 예술가들이 영혼의 울림을 표현한 위대한 예술품들은 전쟁과 혁명의 역사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웅장한 루브르 박물관에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밀레, 마네, 피사로, 드가, 시슬리, 르누아르 그림이 전시된 오르세미술관, 유럽 현대 미술관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퐁피두 미술관, 800년 파리의 역사를 지켜온 노틀담 성당, 중세의 도시 모습을 간직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던 몽파르나스 타워와 샤갈이 그린 천장화가 있는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 루이 14세의 권력으로 지어진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바르셀로나의 건축의 천재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사 바틸로, 라 람블라 거리의 피카소 미술관, 서양 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기독교의 본거지로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을 꽃피운 로마의 콜로세움, 600년에 걸쳐 세계의 명작을 수집해 온 바티칸 박물관,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의 중심지였던 로만 포럼, 고대 로마의 영광을 대변하는 판테온 신전, 르네상스의 발생지인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의 붉은 돔, 단테가 세례를 받은 산 조반니 세례당, 흰색과 녹색 대리석으로 고딕과 르네상스 형식이 조화를 이룬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5세기에 걸친 메디치 가문의 소장품들이 전시된 우피치 미술관, 베네치아 공화국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 곤돌라와 조화를 이루는 리알토 다리, 르네 마그리트와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의 작품이 전시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바포레토를 타고 간 유리공예의 무라노 섬---.

 그러나 유럽을 이해하는 과정은 유럽이 내가 사는 곳에서 생각했던 것과 같지 않다는 것과 유럽에 대한 내 모호하게 이상화된 이미지를 현실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거 영광의 높이만큼 오만한 바티칸 박물관 직원들과 로마 테르미니 역 주변의 소매치기들, 파리 지하철의 고약한 냄새, 특히 베니스 식당의 무리한 바가지요금 청구는 물정 모르는 관광객은 부당함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 속에서의 상상과는 다른 불편한 현실을 충분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은 일상을 돌아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파리 몽마르트르 아베쎄 역 주변 카페에서 게리 무어의 파리지엔 워크웨이를 듣던 일,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에서 몇 블록을 걸어 우리 숙소를 찾아주던 동네 아저씨, 삶의 서글픔이 느껴지던 훌라맹고 공연 관람, 로마 테르미니 역 주변 숙소의 친절한 주인 쌤, 피렌체의 뒷골목에서 론리 플래닛에 오른 식당에서 먹던 점심, 비앤비 주인 스테파노와의 담소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담장을 덮은 자스민이 매혹적인 향기를 날리던 저택 마당에서 이태리의 현 정치, 경제 그리고 바티칸에 대한 그의 진보적인 견해를 듣던 일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된 피렌체에서 아르노 강의 베키오 다리를 건너던 일, 시오노 나나미의 <주홍빛 베네치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산마르코 종탑에서 광장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 보티의<베니스>를 듣던 일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정신적 습관과 편안함에서 벗어나 보길 시인은 권유하고 있다.
바람따라 움직이는 불길 같은 반 고흐의 그림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풍경과 오렌지빛 지붕이 머리를 맞댄 작은 마을 그리고 빨간 양귀비꽃들이 촘촘히 박힌 초원에 펼쳐지는 해바라기밭의 아를과 프로방스를 상상하며 시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
삶의 무거움과 진지함에서 벗어나 기쁨과 휴식을 갖는 여행이 우리가 살아 가는 길에 초록빛 배경으로 무한히 펼쳐지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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