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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07-26 09:29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스마트폰의 세계로 입문을 한 후, 이 세상은 정확하게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카톡질을 하는 쪽과 안하는 쪽으로... 좀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카톡을 하는 쪽도 나와 친구가 된 부류와 친구대기 중인 부류로 나눌 수 있으니, 엄밀하게는 세 개의 진영이 되는 셈이다. 카톡이 내 교우, 인간 관계를 여실히 나타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상황속에서 오늘도 나는 열심히 카톡질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1:1로 시작했던 채팅이 한사람씩 늘어나더니 그룹 채팅방이 만들어지고 지금은 30여명의 친구들이 한국과 캐나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베트남에서까지 들낙날락거리며  하루온종일 신호음을 울려대고 있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친구들의 생생한 소식과 근황을 들을 수 있으니 이처럼 좋은 것이 또 있겠나 싶었다. 좋은 글과
좋은 음악이 경쟁하듯 계속 업데이트되고 한사람의 제안에 금방 여러 의견들이 덧붙여져서 계획이 수정되고 정리되어 확정안이 정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참으로 신선하고 스피디한 이 문명의 利器가 신통방통하게만 느껴졌다. 또한 굳이 길게 내 감정을 써내려갈 필요도 없이 이모티콘 하나면 내 의사 표시가 다 전해지니 이야말로 언어의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완벽한 대
체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일들이 그런 것처럼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은 법이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신호음은 진동 모드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때로 대화에 참가 안하고 친구들의 글을 읽기만 하고 있으면 어느새 '눈팅'금지 경고가 사방에서 날라오고, 방에 안 들어온 척하고 싶어도 'oo님이 방에서 퇴장하셨습니다.'라는 친절한 사인 덕분에 뭐라 딱히 변명도 못 할 때가 많
다. 더욱이 한국의  친구들끼리 산행을 하거나 모임을 갖게 되면 그 후기와 더불어 반드시 그 날 애프터로 먹은 음식들을 친절하게도 사진과 함께 소개 하는 통에 때론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하루걸러 장어니, 민물 매운탕이니 오삼불고기니 하면서 사진을 도배하는 통에 정중히 자제요청을 올려 보았지만 해외파 친구들을 위한 배려라는 메시지에 그만 할 말을 잃고만다.

  때론 좀 느린 것이, 그리고 묵묵히 있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휴대폰은커녕 호출기도 없고 이메일도 없던 시절, 그 간절하고 애틋한 기다림이 새삼 그립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바보 같은 생각일까?

  대학에 들어가 1학년이 끝날 무렵 종로 2가 양지다방에서 같은 과 친구들과 Meeting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활짝 웃는 선한 웃음이 인상적인 여학생과 짝이 되었고 나는 그날 애프터를 신청하였다. 아, 그때 그 시절, 휴대폰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삐삐라도 있었다면 밤마다 나의 간절함은 얼마나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밤 10시가 넘은 시간, 목소리라도 한번 듣고 싶은 마음에 여고생인 동생에게 전화 좀 걸어달라고 부탁을 하면 동생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오빠, 이번이 마지막이야”하며 전화를 걸곤 했다.  

  “ 저 늦은 시간에 죄송한데요, 저는 같은 과 은성이라고 합니다. 윤희랑 통화 할 수 있을까요?”

  그 금쪽같은 통화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는 나와, 지금은 시누이 올케 사이로 정다운 두 사람, 합해서 우리 셋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스마트폰 덕택에 카톡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비련의 여 주인공 '애수(哀愁)'의 비비안 리는 나오지 않겠지만, 그 간절한 기다림의 설레임마저 빼앗아가버린 文明의 혜택이 때로는 한없이 유감스럽기만하다.
 

필자소개:  한국 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2004 한국 '순수문학' 등단· 현 프레이저밸리 한국어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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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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