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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수필] 옛날이야기

김재학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6-13 13:07

근래에 캐나다에 오셔서 밴쿠버와 같은 대 도시에서 주로 사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이야기가 될 줄 모르겠다. 온갖 새소리의 합창과 함께 새벽 기도회 인도로 하루를 시작하며 나지막한 산으로 연결된 뒷마당에 각종 꽃과 채소들이 심어진 시골 교회들을 주로 섬긴다. 한 십여 년 전에 캐나다에 유학 와서 이제까지 시골 교회들만 섬긴 가까운 친구 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약간은 흥미로워 여기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 친구가 처음 캐나다에 와서 학교와 가까운 지역의 한인교회를 출석할 때 그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는 “목사가 아무리 공부를 하기 위해 왔어도 교회를 그냥 출석만 하면 안 됩니다.” 하시며 교회의 교육부 지도를 부탁하셨다. 목사님의 과분한 부탁을 받은 친구가 교회의 청소년들 지도를 막 시작할 때 교회 청소년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그 교회 장로님들 중의 한 분이 자신이 3-40여 년 전쯤 이민을 오자마자 도저히 형편이 안됨에도 집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단다.

 아이들 세 명을 데리고 태평양을 건너 와 산 설고 물 설은 캐나다, 그중에서도 겨울에는 가장 춥고 여름에는 모기가 많기로 소문 난 주의 수도, 한인들이 거의 없는 도시에 이민을 와서 방을 구하는데 주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겨우 만나 이야기를 하면 이리저리 살핀 후 하나같이 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거절당한 이유를 나름대로 곰곰히 생각하여 낸 나름의 잠정적 결론이 다음과 같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기도 힘든 영어를 하는, 자신들과 피부색까지도 전혀 다른 부부가 아이들을 세 명이나 데리고 와서 방을 달라고 하는데 호기심을 가지고 인내하며 들어는 주었지만, 방을 내주어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건이 곤란하다고 여겨 그럴듯한 이유를 대어 거절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부터 약 4~50년 전이니 캐나다의 가장 내륙 지방에 사는 어찌 보면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캐나다인들이 한국에 대하여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6.25 전쟁이나 저 먼 아시아의 가장 못사는 나라, 거지의 나라로 알고 있었을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해도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장로님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무리하여 단칸방을 겨우 얻어 짐을 푼 후에, 독한 결심을 하고 자녀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 제일 큰 애는 하루에 무조건 영어 단어 서른 개, 둘째는 스무 개, 막내는 어리니까 열 개를 외우게 했단다. 그 당시에 이민 오신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하루를 힘들게 마치고 돌아온 밤이면 아무리 늦어도 단어를 외었는지를 확인하는데, 만일 외우지 못하면 외우지 못한 그 수만큼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셨단다. 그러면 어린 막내는 왜 맞는지도 모르고 서럽게 울며 밤을 새우기도 하였는데 아버지의 회초리가 무서워 아이들은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익히며 학업을 따라갔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공부를 시키는 부모님이 계실까 봐 의문이지만 하여튼 매일 같이 회초리를 맞으며 공부한 아이들이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며 그중에 한 아이는 대학원까지 졸업하여 자녀들이 다 전문직에 들어가 나름의 인정을 받으며  조금씩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그 때쯤, 환갑을 맞으신 장로님의 잔치 날에 이 자녀들이 이구동성으로 부모님께 특히 아버지께 다음과 같은 말로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 저희를 이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밤마다 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는 아버님이 들어오시는 그 밤이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그 단호한 가르침 때문에 저희가 부족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 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캐나다에 초창기에 이민 오신 분 중의 한 분인 장로님의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큰 감동을 하였는지 이 친구 목사는 지금까지도 간혹 친구들 모였을 때 혹은 유학 온 청년들이나 학생들에게 이 장로님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더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다. 역시 이 친구가 인구가 한 오 천명 정도 되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에 있는 한인 교회를 섬길 때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한인 분들이 그래도 꽤 많이 살고 계시는 가장 가까운 큰 도시까지 차로 네 시간 거리인데 이 친구는 그 도시까지 가는 거리의 절반인 차로 두 시간 이내에 사시는 한인 분들은 마치 자신이 섬겨야 할 교인이라도 되는 듯이 차에다 책을 싫고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빌려드리기도 하며 힘든 심신을 위로도 해드리고, 또 때로는 그들의 사연도 들어주기도 하였단다. 이때 아주 작은 마을에서 가스 공급 펌프가 하나뿐인 주유소를 겸한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이 가게는 단골손님으로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 주변의 광산에서 일하는 도시에서 온 사람들과 관광지로 오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수입은 그런대로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게를 드나드는 마을 사람 중에 자신을 무지하게 무시하는 듯한 한 사람이 있었단다. 보통의 결단으로는 오기 힘든 이 외진 곳까지 와서 비즈니스 하는 분이니 웬만하면 참고, 어떻게든 사이 좋은 이웃으로 지내다가 여유만 되면 떠나리라 생각하고 꾹꾹 눌러 참으며 한두 해를 지냈단다. 이렇게 참으면서 기회만 주어지면 다른 손님들보다 더 친절하고 더 살갑게 대했음에도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터줏대감같이 이 사람이 더 기고만장하는 듯이 자신을 대할 때, 이 분의 마음속에 내가 유색인종이라 그런가, 내가 너무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한다고 얕잡아 보고 하는가, 혹은 영어가 서툴러서 업신여기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나 같은 동양 사람은 나가라고 그러는가 온갖 생각을 하며 힘들어했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 못 한 것은 없는데, 그렇다고 지금 나갈 형편은 안 되고 이런 고민 저런 고민으로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밤, 술에 취했단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안 깬 술에다 한 잔 더하여, 얼굴이 발그스레하게 상기된 채로 그 사람 집을 찾아갔단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안에서 술 취한 모습을 보았는지 열어 주지를 않는데 이 분이 문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야, 이 XX야, 너 뭐야, 네가 뭐길래 나를 이렇게 업신여기는 거야. 내가 이래 보여도 이런 시골구석에서 사는 너보다 못한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이런 코 딱지만 한 가게 운영한다고 비웃는 거야. 내가 너처럼 희지 않다고 놀리는 거야 뭐야 이 xx야, 내가 이래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다. 너 대학 근처에라도 가봤어. 너 장교가 뭔지 알아. 내가 ROTC 장교 출신이란 말이야. 이 XX야, 나도 한때 이보다 큰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다. 내가 XX 아, 사업에 실패만 안 했어도 이런 시골구석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 이 XX야, 너 뭐야 너 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나는 대학에 다니는 자식들이 둘이나 있단말이야.”

 듣는지 안 듣는지 반응도 없는 집 앞에서 –시골집이라 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 정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왔단다.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대로 당연히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집에 돌아와 술이 깬 후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데 오후쯤에 가게에 온 그 기고만장한 남자의 태도가 100% 달라졌단다.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랫동안 사귄 친구를 대하는 것 같이 살갑게 대하는 게 느껴지더란다.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안 하는 짓을 하지' 하는 생각에 방어하는 자세로 대하였는데도 한두 번이 아니고 하루 이틀이 아니고 계속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대하니 자기의 마음에 '그래, 이런 시골에 사는 사람이 나빠도 얼마나 나쁘겠냐.'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열리더란다.  

 “아유 목사님 말도 마세요. 저희 처음에 와서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직원한테 가게를 맡게 놓으면 보고 있는 데서도 0을 주머니에 넣어요. 그래서 어떤 때 참다 참다 '너, 왜 그래' 하면 보는 앞에서 주머니에 넣다가 떨어뜨리고는 '나 아무 일도 안했다'라고 해요. 그래도 나를 괴롭히는 그 녀석이 더는 괴롭히지 않으니 지금은 충분히 할 만합니다. “

 최근에 만난 이 친구 목사는 모국에서 들려온 나쁜 소식에도 전혀 다른 톤으로 기회만 되면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청년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여기 나라나 이웃 나라인 미국도 다 그런 일들 경험했다. 뭐 우리만 못나서 그런 일 당한 것 아니다.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일을 당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는 정말 사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만 여기 외국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면 조금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너희가 백 년 이 백 년 걸려 이룬 것 우리가 몇십 년 만에 이루다 보니 너희가 이전에 경험했던 일들 이제 겪는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에도 학생들을 먼저 보살핀 교사들 심지어는 임시 교사들, 자신의 본분을 끝까지 수행한 승무원들, 그리고 욕을 먹으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는 공무원들, 국민들 앞에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 물론 어떤 분들은 정치적인 눈물이라고 해석을 하지만 그렇더라도- 더더욱, 이제까지 그런 것처럼 이런 재난을 승화시켜 나갈 우리 모국이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 타이타닉, 너희가 몰라서 그래. 그것 다 영화야 영화.”     

 어떤 때는 이 친구가 너무 모국 정부에 대하여 호의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저 허물없이 대하는 친구 이야기를 소개해 드린 것이니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넓은 마음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아 참, 두 번째 이야기의 한인 분이 약주 드시고 이른 새벽 남의 집 문 앞에서 한 일은 옛날 외진 시골이어서 그냥 좋게 넘어갔지 밴쿠버 같은 대 도시에서 그랬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실 줄 안다.   

켈로나에서 KLO (Korean Loving Okanagan) House 오카나간을 즐기는 한인 House 운영   jhkim69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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