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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수필] 쑥캐기와 풀베기

손박래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6-04 14:02

이 두 동작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 많은 차이가 있다.우선 사용하는 도구가 다르다. 쑥캐기는 칼과 바구니가, 풀 베기는 낫과 망태가 필요하다.

또 동작도 확연히 표가 난다.전자는 엉덩이를 땅에 거의 붙이면서 한 곳에 오래 머물고, 후자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앞으로 혹은 옆으로 잿빠르게 움직인다. 그런 탓에 쑥캐기는 주로 여자가 담당하고 풀베기는 남자 몫으로 여긴다.

 좀 오래된 기억 하나. 고향을 떠나 해외에 살면 희안하게 이런게 먼저 떠오른다. 4월쯤이면 시골 들녘에는 봄나물이 올라오고 이걸 뜯어 입맛을 돋우곤 한다. 특히 나는 쌀가루를 쑥과 버무려 쪄내는 경상도식 털털이를 무척 좋아했다 해마다 어머니가 해주셨다. 다만 주재료인 쑥은 누군가가 캐와야 한다.이게 문제다. 먹고 싶은 사람이 캐오는게 당연하지만 행여 쑥캐다가 친구들한테 들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바로위 누나가 이 역할을 많이 해 줬지만 6학년이 되면서 짬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중학교 입학시험 때문에 학교에서 오랫동안 붙잡아 둘때이다. 같이 나가면 누나는 쑥을, 나는 풀을 베면 두가지 일을 동시에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때는 어쩔수 없는 형편이 됐다. 혼자 풀망태에 낫과 칼을 담아서 들에 나갔다. 앞들에는 주로 풀을 , 뒷들에서는 쑥을 캤다. 이게 반드시 지켜야할 동네 규칙은 아니지만 풀과 쑥의 서식지 차이다. 앞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뒤쪽은 들킬 확률은 낮다. 다만 누군가의 눈에 띄면 쑥캔다는 사실을 얼버무리기가 어려워진다.

 난 뒤쪽을 택했다. 우선 풀을 좀 베서 망태에 담은 다음 엉덩이를 들고 칼로 쑥을 캤다.풀베는 자세로 쑥을 캔다는 것이다.엉덩이를 들고 작은 쑥을 캐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작은 잎을 왼손으로 잡고 칼로 밀어야 하는데 몸과 쑥의 거리가 멀면 제대로 칼질이 안된다.쑥뿌리를 자르는게 아니고 몸통을 건드려 산산조각 낼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의 시선이다.가급적 몸을 낮춰서 숨기기는 하지만 쑥 군락을 따라 나도 모르게 노출 될 때가 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참 쑥캐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하냐”“토끼 풀벤다”이소릴 들은 친구가 가던길을 멈추고 내게 왔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우선 망태의 풀로 쑥을 감췄다. 그러나 망태 틈새로 쑥 몇가닥이 보였다. “너 숙 캤구나”“아이다” “ 그럼 저건 뭐꼬”“풀하고 같이 휩쓸려 온거 겠지.

 이럴때는 정확한 검정을 위해 망태를 뒤집어 보면 알수 있다. 그냥 풀과 같이 베인 쑥은 헝컬어져 있고 정확히 쑥을 캔건 하나하나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다. 친구가 망태를 뒤집었다. 쑥과 풀이 쏟아져 나왔다. 더이상의 변명은 날 초라하게 만든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그리고 그들은 갔다.

다음날 등굣길이 걱정이 됐다.내 예상대로였다. 동네끼리 마을 어귀에서 모여서 학교로 가는데 분위기가 심상 찮았다.6학년 형님이 깃발을 들고 남학생이 먼저 서고 그뒤 여학생이 줄을 맞춰 동요 한두곡 부르면서 가는게 보통이다.그러나 이날 나는 남학생 줄에 들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여학생과는 보조를 맞출수는 더더욱 없었다. 할수없이 맨뒤에서 약간 처친채로 따라갔다. 이죄목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것이어서 한달 정도 시달렸다. 남자애가 쑥캔 댓가로 한달간 왕따처분을 받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합리적인 것 같다. 남자는 풀베기 같은 남자의 일을 해야하고 여자는 쑥캐기같은 그나름의 제 역할을해야 한다는 어린시절의 강제 규범이었다.이게 한남자로 성장하게 들어주고 여성화되는 걸 사전에 방지해준, 우리끼리 통했던 헌법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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