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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수필] 잠시 행복했던 스팸메일

박헤정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5-01 13:37

전화벨이 울려 받으면 대뜸 “축하합니다(Congratulations!)” 또는 “중요한 메시지(very important message)입니다” 라고 하면 처음에는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았지만, 이젠 바로 수화기를 놓아 버린다. 또 전화를 받을 때 “헬로우?” 라고 하면 전화기에서는 숨도 안 쉬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젠 한국어로 “여보세요?” 라고 하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조용해진다. 그래도 혹시나 중요한 전화 일까봐 다시 ‘헬로우’ 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을 하다 지치면 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영어를 잘하면서도 “노 잉글리쉬” 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고도 한다. 이런 것들이 이곳에서 익힌 스팸전화를 받는 방법이 되어 버렸다.

이메일의 경우에는 전화보다 더 간단하게 스팸 메일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똑똑한 컴퓨터가 미리 골라주기 때문에 오히려 처음 받는 사람의 메일을 스팸메일에서 찾을 정도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온 메일이었다. 작년 박싱데이 때에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한 작은 사이즈의 랲탑을 산 것과 관련된 메일이었다.

집에서 글을 쓰려고 하면 먼저 밀린 집안일들이 눈에 들어와 그것부터 하게 되면서 차일피일 자꾸 미루게 된다. 머릿속은 점점 글 쓸 내용으로 가득 차게 되고, 마음은 시험공부를 미루고 있듯 무겁기만 하다. 그래서 짬이 나면 여기 저기 들고 다니면서 글을 쓰기위해 작은 랲탑이 필요했다. 여러 곳을 다니며 가격을 비교해 보았다. 박싱데이라고 싼 것도 아니었는데 매진이 되어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 픽업은 매장에서 하는 곳이 있어 그렇게 구입을 했었다.


그런데 이메일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온 것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어카운트'에 대한 메일도 왔었고 해서 그 메일을 의심하지 않았다. 내용인 즉 “2014 AWARD NOTICE.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입하신 분 중 무작위로 뽑아서 2등에 당첨이 되셔서 상금을 ₤850,000,00GBP 받게 되셨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첨부파일에 쓰여 있는 주소를 구글 맵으로 찾아보니 영국 에든버러(Edinburgh)에 위치 한 상가 건물이었고 박물관 근처였다. 내용은 의심이 갔지만 주소도 그럴 듯하고 보내달라는 내용은 크게 의심이 가는 것이 아니고 단지 주소와 이름만 써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복권을 사도 500원이 가장 크게 당첨된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의 진위를 알아봐야하지만 며칠이라도 행복 하고 싶었고, '이 상황이 진짜라면 어떻게 할까?' 꿈도 꾸어보고 싶어서 바로 알아보지는 않았다.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많은 당첨금을 받은 사람은 먼저 재정상담가와 상담을 해서 돈을 어떻게 쓸지 연구하고, 보디가드도 고용하고, 직장도 그만두고, 지금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산다. 또 당첨자의 85%가 돈을 다 쓰고 오히려 빚도 지고 이혼 등 좋지 않게 끝난다.”

'하지만 꼭 나의 경우는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고, 먼저 캐나다 달러로 환전을 하면 얼마가 되는지 계산을 해 보았다. 어마어마해서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 해 보았다. 하고 싶은 것이 꽤 많았다. 나의 모든 꿈을 한순간에 다 이루어 주는 것 같았다. 일단 당첨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해 놓고, 은행에 있는 후배를 찾아가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이것이 사실이면 당첨금을 다 이 은행에 맡길게." 후배는 차분히 구글에 쳐 보더니 “이런 메일을 받아 질문 한 사람들이 몇 년 전부터 있었네요.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은 없지만 돈을 받았다는 것도 없네요. 아마 스팸 메일인가 봐요.” 아쉬웠지만 나도 금액이 터무니없이 많아서 스팸 메일 같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은 하지 않았다.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것을 가지고 순진하게 은행원까지 찾아가고….'

'혹시나?' 가 '역시나!' 가 되었지만 그래도 며칠 나에게 많은 돈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고, 나의 구체적인 꿈도 설계해 볼 수 있어 행복하기도 했었다. 물론 복권이 당첨 되면 좋지만, 모든 꿈들이 한꺼번에 다 이루어지는 정도의 엄청난 돈은 미래에 대한 보장과 편안함이 일에 대한 열정을 식게 하고 안일함으로 채워지게 되니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한 통의 스팸 메일로 부족한 듯해도 꿈을 꾸며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욱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캐나다 뮤즈 청소년 교향악단장
 밴쿠버 한인문인협회 회장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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