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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수필] 어느 군인의 사랑 이야기

김유훈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2-21 16:49

우리가 살고 있는 밴쿠버 아랫 쪽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이 있다. 내가 트럭을 몰고 미국으로 가려면 언제나 이 도시를 통과해서 다른 지역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노라면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 생긴다.  왜냐하면  “라디오 한국”이 24시간  우리말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 방송은 고국 소식은 물론 노래, 교민 소식, 각종행사 등등을 들려주고 있어 가끔은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방송이다.  트럭을 운전하며 먼길을 다니다 시애틀에 돌아오면 고국 소식에  굶주려 있는 나에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해 가을 나는 이 방송을 들으면서 가슴 뭉클한 사연을 들었다. 사연인 즉 시애틀에 살던 25살 청년 “샘”이 미군에 입대하여 아프칸니스탄에서 근무하던 중 큰 부상을 당하였다. 지난 해4월, 당시 지뢰제거 작업에 투입되어 지뢰를 제거하던 중 지뢰가 폭팔하여 두 다리가 절단되고 손가락 까지 짤려나가는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후방으로 후송되었고 더 이상 군인으로 근무가 불가능하여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이 소식을 들은 “샘”의  약혼녀 “애멀리”는 그녀가 다니던 대학을 중단하고 홀로 생활 할 수 없는 “샘”을 돕기위해 결혼을 결심하였고 금년에 결혼 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들의 결혼을 돕기위해 시애틀 지역의 신문과 방송에서  모금을 하고 있었다.  

특히 한인 방송인 “라디오 한국”에서 시간 시간 마다 이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우리 교민들에게 모금에 동참 할 것을  호소하였다. 우리 민족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 방송은 교민들의 많은 호응을 힘입어 그들의 새 삶에 희망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나는 운전 중 이 짧고 감동적인 사연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 하였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좋은 조건 과 환경을 가진 짝을 찿아 헤메고 있는 세대에 이런 순애보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는 데 감동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약속을 헌신짝 처럼 버리는 일이 많은 데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를 위해 그 약속을 지킬 분 만 아니라  자신의  남자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그녀가 무척 예뻐보였다.

한국에서는 군에 입대한 남친의 제대를 기다리는 여자친구를  “곰신”이라 불리며 그들의 이야기가 수 없이 많지만 이렇게 부상당한 군인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겠다는“곰신”이야기는 잘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만약  전쟁에 나간 약혼자가 죽음으로 돌아왔다면 그녀는 더 큰 충격에 빠져 헤어날 수 없겠지만 그나마 다행히 부상으로 살아왔다는 것 만으로 큰 다행으로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그를 위해 함께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갈 것을 결심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 내가 겪은 비슷한 경우가 있다. 나와 어려서 부터 함께 자란 형이 있었다. 우리 형은 나보다 군대를 더 늦게 입대하였다. 내가 먼저 제대 후 형은 다음 해에 제대를 앞두고 휴가 중 고대 산악부원들을 데리고 설악산에 있는 울산암 암벽등반을 갔다  불의의 사고로 자일에 몸이 감긴 채 주검을 당하였다. 당시 형이 살아 있었을 때 형과 장래를 약속한 여자가 있었다.  4년 넘게 대학 교정과 산에서 정을 나누며 형이 제대하면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형의 제대를 기다리는 동안 대학원을 다녔다.

형은 군에서 휴가왔을 때 그녀가 보내준 편지를 내게 보여주며 “야, 유훈아, 이 여자가 나 제대 할 때까지 기다리겠데, 그리고 ‘우리 인생은 기다리는  보람과 기쁨이 있다’고 여기에 썼어” 하며 “야호!”를 외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형은  3년간 군생활을 마치기 전  싸늘한 주검으로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집에 있는 형의 영전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후,  교회에서 같은 대학 다니는 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는 교수가 되었지만 10년 넘게 결혼을 안하였다고 하였다. 사랑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말에 “개똥밭에 뒹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 라는 말이 있다. 그 때 나는  우리 형이  부상당하였어도 좋다 살아만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가슴 아픈  소식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소식이 있다. 마치 진흙 벌밭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 듯   한 그 군인의 사랑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이웃 시애틀에서 일어난 일이다. 분명 그들의  사랑은  꽃보다도 아름답고 듣고 또 들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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