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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수필] 가족

심현숙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1-20 14:50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그리 있어도 든든합니다.
당신의 74회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얼마 전 남편에게 쓴 생일카드 서문이다.

남편이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산 지 10년에 들어섰다. 세월이 빠르다고 하나 그 동안 남편과 겪어야했던 힘 든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제 남편에 대해서 많은 의학상식을 갖게 되었고 위기에 봉착 할 때도  침착해지긴 했지만 그 하나하나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남편을 도울 때마다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얻어진 노하우라고 할까. 모두 임상경험에서 온 것들이다.    

많은 분들이 남편을 요양원(Nursing home)에 넣으라고 권한다. 본인도 이제 가족들 고생 그만 시키고 들어가고 싶다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의 담당 매니저만은 “지금 당신의 생활이 최상이다”며 그 이유를 남편에게 일일이 설명해줬다. 남편은 가족에게 미안하여 우리 몰래 캐어기버를 시켜 매니저를 불러서 상담을 했다.

요즘에 와서 딸과 나도 요양원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너무 지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 모녀는 마주 앉아 궁리를 해보지만  어느 쪽도 결정을 내리지 못 한다.

 “10년을 사시게 되면 그 때 생각 해 보자”로  결론을 맺고 만다.
 손 하나만 움직여도 보내겠는데, 도움이 필요 할 때마다 누가 그 이의 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이 간지러울 때, 눈물이 날 때, 요즘처럼 침이 나올 때 빨리 도와주지 못 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가족이란 남이 보지 못하는 세심한 것 까지도 볼 수 있어  때로는 더 힘든지 모른다.  
 
 가족, 가족이란 게 무엇이기에 이리도 끊어 낼 수 없는지 난 가끔 생각에 잠긴다.

 행여 밤사이에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베이비 모니터를 켜 놓고 잠자리에 든다. 혹시나 등창이라도 날까 하루면 몇 차례씩 스트레칭을 시키고 등을 두드리며 어루만지기를 수 없이 한다. 남편의 기억력이 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뇌에 문제가 없어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누며 산다. 특히 자정이 넘어 누워있는 남편의 자세를 바꿔주기 위해 딸과 둘이서 도와줄 때가 우리 가족의 오붓한 시간이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한다. 때로는 언짢은 말이 오가기도 하고  다투며 누군가 울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참회의 기도를 하며 서로를 이해와 용서로 위로하곤 했다.

우리 가족은 모든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 지금  남편은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지만 우리 가족은 그이의 말을 존중한다. 남편에게 가장 큰 걱정은 아내와 딸의 건강이다. 그래서 “먹어, 운동해, 걸어, 빨리 자”를 입에 달고 산다. 남편의 그런 말이 피곤할 때는 짜증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 이가 없다면 누가 우리를 염려해줄까’하는 생각에 “예, 그럴게요” 라고 대답한다.

남편을 돕느라 생긴 스트레스와 피로가 축척 되어 내 생명이 단축된다 해도 억울해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과 상황이 반대로 바뀌었다 해도 남편 또한 내게 최선을 다 했을 테니까.

나는 오늘도 남편의 식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기름기만 들어갔다 하면 배탈이 나는 그이에게 가장 좋은 음식은 시래기나 참나물을 넣어 만든  된장국 또는 황태포국이다. 황태포는 사철 구할 수 있지만 참나물이나 시래기는 시기를 놓치면 구하기 힘들다. 마켓에서 초록색 무청이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집어온다. 남편에게 맞는 음식을 맛있게 먹여주고 싶은 마음, 그 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가족이 있는 가정은 우리 인간에게 부여 된 가장 축복된 보금자리이다. 넘치는 사랑과 희생이 있고  또한 이해와 용서가 있으며 인격의 바탕이 되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 가족은 내게 이탈할 수 없는 철로이며 울타리이고 삶의 원동력이다. 이런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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