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한 72km 24시간 행진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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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3-06-28 21:03

“정전 60주년, 캐나다 사회와 함께 한 6·25 행사”
72km, 24시간의 행진. 언뜻 고행처럼 보이지만 60여 년 전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밤낮 가리지 않는 행군을 생각하면, ‘동네 산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느껴진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권익을 위해 애써온 가이 블랙(Black)으로부터 행진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당황했다.


“철야의 행군이라니…. 이 친구,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블랙의 얘기를 듣고 황당한 마음은 이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미스터 손, 올해가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에요. 참전용사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블랙의 진심을 알고 부끄러웠다, 한참 부끄러웠다. 흔히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한다. 고백하면 나 역시 그 전쟁을 잊었다. 60년 전 나는 여섯 살이었다. 참 배고팠던 시절, 나일론 양말이 나오기도 전이라 겨울에는 버선을 신어야 했던 그 시절, 그때의 기억들 혹은 흔적들을 떠올리며 이번 행진을 함께 했다.



“항아리에 돌을 담아 한국으로 보내려는 이유”

6월 20일 오후 6시, 행진의 출발지인 밴팅중학교를 향했다. 블랙과 이 학교의 애비 소우(Soh) 교장 선생님이 거기에 있었다. 행진 시작 전 자그마한 기념식이 열리게 되는데 그 준비를 위해서였다. 나는 그들에게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걱정만 할 뿐이었다. 궂은 날씨에 산행이 어렵지 않을까, 한인들이 얼마나 호응해 줄까…. 집에 와서도 걱정은 끊이지 않고 밤새 뒤척였다. 그러다 맞이한 아침. 나는 다시 밴팅중학교에 서 있다.


21일 오전 9시 20분. ‘가평스톤 기념식’이 시작됐다. 학생들이 만든 작은 항아리에 돌멩이를 담는다. 이 항아리는 학생들과 소우 교장 선생님, 그리고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손을 거쳐 행군 주자인 가이 블랙에게 전달됐다. ‘가평스톤 기념식’은 한국을 위해 청춘, 그리고 목숨을 헌납한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겠다는 하나의 다짐이자 의식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항아리는 한국으로 보내질 것이다. 한국전 당시 목숨을 잃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21명의 캐나다인에게 보내는 고국의 돌이다. 어린 중학생들이 그 의식을 도왔다.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너희들이 전쟁의 비참한 같은 것을 이해하긴 어렵겠지. 하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의식이 끝나고 행진이 시작됐다. 가이 블랙이 맨 앞에 섰고, 이정주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회장이 태극기와 캐나다기가 꽂혀져 있는 베낭을 메고 그 뒤를 따른다. 행렬 중에는 20여 명의 학생과, 선생님, 정치인들도 보인다. 한인들의 호응도 감동적이다. 김세환씨, 신두호씨, 서정길씨, 박주은씨, 김성환씨 등이 우리의 시작을 함께 했다.


나는 이들과 잠시 떨어져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두 아들을 픽업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그들은 제임스와 케빈이라고 불린다. 두 아이는 하루 직장을 쉬고 함께 걷자는 내 뜻을 기꺼이 따라주었다. 77년, 78년생인 두 녀석들에겐 자신들의 뿌리인 한국을 생각하는 작은 계기가 될 지 모른다.



“그 시절 어른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각 12시. 행진 무리들은 SFU 웨스트몰센터 계단에 모였다. 이곳에서 또 한 차례 ‘가평 스톤 기념식’을 한 뒤 마운틴 시모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우리는 세컨드내로우브릿지를 만났다. 다리 위에서 수십 년 전의 피난 행렬이 떠올랐다. 다리가 무너졌을 때의 허망함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분다. 눈앞에는 이정주 회장 배낭에 꽂혀 있는 태극기가 펄럭거린다. 그 풍경을 보면서 무너진 한강다리, 그로 인한 슬픔 같은 것은 잠시 잊었다. 지나가는 바람이 땀을 닦아주니, 그것 역시 좋았다.



세컨드내로우브릿지를 건너면 금새 목적지가 눈앞에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르막길은 지루하게 계속되고, 일행들은 말없이 걸음만 재촉했다.


그러다 오후 3시 32분.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두 사람이 멀리서 손을 흔든다. 가이 블랙의 직장 동료들이다. 행진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공원 입구를 향해 걷는 도중 또 한번 고마운 얼굴들을 만났다. 조선일보 김동기 발행인을 비롯한 해병전우회 회원들이 그들이다. 해병 전우들은 철야 산행을 함께 해 줄 거라고 말했다. 너무 고마웠다. 산행을 하려면 더 큰 응원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이제껏 걸어온 길들보다 훨씬 가파를테니.


트레일 입구에 도착했을 때, 노스쇼어구조팀(North Shore Rescue)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마련해 준 도넛과 커피를 맛보며, 문화는 다르지만 캐나다 사회 나름의 정을 확인했다.


구조팀이 산행을 앞둔 우리들에게 안전수칙을 일러준다. 짧은 강의가 끝나고 가이 블랙과 그의 직장 동료, 그리고 해병전우회 회원인 황근붕, 신용환, 서준영, 예병익씨 등이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해병들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일까. 예상보다 빠른 세 시간만의 완주. 오후 9시 30분, 우리는 구조팀 사무실에 앉아 있다. 바깥 세상은 안개 뿐이고, 날은 꽤 쌀쌀했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모양인지 해병들은 구보를 한다. 잠시 후 ‘군수 물자’가 도착했다. 조선일보 발행인의 아내가 마련한 김밥과 커피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런 야식, 다시 경험하기 힘들 것 같았다.


잠시 후 밤 10시. 마지막 ‘가평스톤 기념식’을 마치고 일행은 산 아래로 향했다. 새벽 3시 30분에는 가이 블랙, 이정주씨, 황근붕씨 이렇게 셋이 남았다. 오전 9시경, 한인들의 호응은 또 다시 시작됐다. 무궁화여성회 회원들과 민흥기 재향군인회 부회장, 정진태씨, 강신정씨, 서정길씨가 대열에 합류해, 6·25참전 기념식이 열리는 버나비센트럴파크까지 걸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손병헌(코퀴틀람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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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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