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스리랑카 <3>

밴쿠버 조선일보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3-22 17:24

Lipton’ Seat
 
오늘 계획은 Lipton’s Seat까지 차로 올라갔다가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타밀족을 사진 취재하는 게 주목적이다. 소형차 한대가 겨우 운행할 정도로 좁은 산길을 힘겹게 올라 2000미터 정상에 도달했다.

Lipton’s Seat는 토마스 립톤이 이곳에 앉아 홍차 사업을 구상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360도 파노라마 경관이 장관이다. (지난 12월, 국제협력단 단원 한국 젊은이 2명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던 중 벼락에 감전되어 숨진 곳이기도 하다.)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은 모두 녹색이었고 그 녹색은 모두 차밭이었다. 어제 밤에는 비가 쏟아졌지만 오늘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다. 횡대로 늘어서서 차잎을 따고 있는 타밀족 여인들이 먼 시야에 들어왔다.


<▲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타밀족 차잎 Picker들. 이들의 하루 소득은 5달러 정도다.>


나는 처음부터 이 여행이 차잎 채집장면을 사진취재하는데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이 순간을 고대해 왔다. 그래서 촬영 시간도 빛이 좋은 석양에 맞추었고, 역광일 경우를 대비해 플래시를 사용하기로 나름대로 촬영 계획을 세워 놨었다. 평소에는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지 않던 커다란 ‘장농’ 플래시까지 배낭에 챙겨 온 터였다.

이제 고대하던 순간을 위해 차잎 따는 현장에 다가가야 했다. 현장 부근까지는 차로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걷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군사작전을 전개하는 지휘관처럼 운전병 조셉에게 작전계획을 설명했다.
“조셉은 여기서 낮잠 한숨 자고 있다가 두 시간 후에 천천히 차를 몰고 내려오세요. 그동안 우리는 사진 찍으며 걸어 내려가다가 길 어디선가에 만나게 될 겁니다.”
차밭을 관통하는 차잎 운반도로는 외길이어서 아무래도 어긋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62세의 노병은 이 단순한 작전의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지휘관은 아내의 하이킹 스틱으로 흙바닥에 선을 그어가면서 다시 작전개요를 설명했다.
“지금 이 지점에 조셉이 서 있습니다. 현재 시각이 3시니까 두 시간 후 5시경에는 내 아내는 A지점쯤 걸어가고 있을테고, 나는 좀 더 멀리 이 B지점 정도에 있겠지요…”
조셉의 표정은 작전에 처음 참가하는 신병처럼 아직도 미덥지 못했지만 더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흙바닥에 그려진 작전개념도를 보며 머리를 갸우뚱하고 있는 그를 뒤에 남겨놓고 아내와 나는 먼저 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나의 용의주도했던 작전은 부실한 정보 탓에 실패를 하고 만다. 해질 무렵까지 작업할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타밀족 Picker들은 오후 4시 정각에 일손을 마감한 것이었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일렬횡대로 차잎을 따던 여인들은 일제히 우향우 방향을 바꾸더니 일렬종대로 차밭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낭패였다. 차를 타고 내려오지 않은 게 후회막급했다. 모처럼 빛을 내서 빛을 보려던 내 플래시는 발광도 해보지 못하고 다시 배낭 속으로 쳐 박혔다.


<▲차밭 일꾼들이 차잎 집하장에서 차잎포대를 정리하고 있다. >


<▲안개가 자욱한 차밭. >


 
타밀족과 실론 티
 
차잎을 한 포대 가득 머리에 인 십여 명의 타밀족 여인들이 이날 채집한 차잎의 무게를 달기 위해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창고로 모여들었다. 싱할리족 남자 현장감독들이 차잎 포대를 계량해 작은 수첩에 이름과 무게를 꼼꼼이 기입했다.

비록 차잎 따는 장면은 촬영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마무리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나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씩 찍어 주었다. 뒤늦게 도착한 아내도 집에서 모아 온 쇼핑백과 비닐지갑(화장품 샘플용) 등 수십 장을 나누어 주었다. 선물을 담아 간 배낭은 홀죽해 졌고 이들의 검은 얼굴에선 하얀 미소가 피었다.

이렇게 모아진 차잎은 소형 트럭에 실려 Tea Factory로 운반돼 가공에 들어간다. 다음날 우리가 방문한 차 공장은 오래전 토마스 립톤이 설립해 운영하던 곳인데, 지금은 스리랑카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견학료($2.5)를 지불하면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가공 전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이 회사에 속한 차잎 픽커들은 1800명이고 하루 수확량은 25,000kg이라고 한다. 이와 유사한 차공장이 산골마다 들어서 있으니 이 나라의 홍차산업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첫 날 사진 취재에 실패한 나는 다음 날에도 다시 이곳을 찾았지만 때마침 폭우로 인해 픽커들을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 Tea Factory >


<▲ 타밀족 Picker와 차밭. >



<▲ 차잎 채집 현장 감독들.>


▶다음주에 계속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1.23세. 대학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강북구 미아동 소재 S여중이었다. 첫 출근 날 아직 군대도 미필인 시절, 솜털이 뽀얀 홍안의 청년이 여중생의 수업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세워 다짐을 하신다.“민 선생, 오늘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민 선생은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빠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학생들이 딸 이름을 혹시 묻거든 ‘들레’라고 하세요.”라며...
민완기
삼겹살 2024.04.08 (월)
아들이 군대 간다고 둥지를 떠나고문 선생은 중첩된 설움을 곰 삭이며외롭다는 말 대신삼겹살 한 절음 불판에 그슬렸다사방에 튀는 기름 파편을 손등이 접수하며그렇게, 모르는 듯 타들어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사이 낑긴 고기가숨이 붙어 더 살아갈 날을 깨우고 있다참기름장에 발라 입에 넣고떠난 가족을 씹어 그렇게 삼켜 버렸다외로움은 콧날에 상큼하다는 말겨자 한입 넣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혼미한 푸념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고앉았던...
김경래
팔자를 생각하다 2024.04.08 (월)
 가져가야 할 짐들을 거실 가득히 늘어놓은 채, 남편은 가방에짐을 챙겨 넣고 있다. 그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다시 떠난다는 게 실감 난다.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는지 닫히지 않는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를 붙잡고 싶은 내 마음이 염력을부린 듯하다.남편은 파도 치는 바다로 고생하러 가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뭘 사다 주면 좋겠느냐고 자꾸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데 눈물이 또 주책을 부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정성화
봄밤 2024.04.08 (월)
부활절 날 밤겸손히 무릎을 꿇고사람의 발보다개미의 발을 씻긴다연탄재가 버려진달빛 아래저 골목길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정호승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