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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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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3-03-19 10:49

욕망과 광기 서린 시기리야
(Sigiriya)
 
길은 작은 시골 마을들과 벼가 가득한 논과 열대림이 울창한 평원을 지났다. 바닷가 어촌 네곰보를 출발한 우리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추월하고 피해가면서 늦은 오후 내륙 깊숙히 위치한 시기리야에 도착했다.

사자바위라는 뜻의 시기리야는 평원에 우뚝 솟은 화강암 덩어리 위에 남겨진 유적지로, 스리랑카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필수 코스다. 수직 철제 사다리를 타고 한참을 오르면 상부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만난다. 이 유적지에는 ‘전설따라 3천리’ 같은 스토리가 전해 오는데…  

5세기, 아버지를 산채로 땅에 묻고 왕위를 찬탈한 아들 카사파 1세는 이복 동생의 복수와 후환이 두려워 200미터 수직 암산 요새 위에 궁전을 짓고 칩거한다. 십수 년 후 카사파 1세는 복수를 하기 위해 쳐들어 온 동생과의 일전에서 패해 결국 욕망과 광기에 사로잡힌 생을 자살로 마감한다. 요새 위의 궁전은 그 후 불교 수도원으로 한동안 사용되어 오다가 폐허가 되었는데, 19세기 한 영국인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요새 상부에는 옛 궁터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벽화 일부가 남아 있다. (사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시기리야(Sigiria). )

이날 밤 숙소에 들기 전 운전수 조셉은 우리에게 한가지 주의를 주었다. 이 일대에는 야생 코끼리들이 출몰하니 “밤길 조심하라…” 고. 농지 개발로 숲을 잃어버린 코끼리들이 민가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농가마다 야생 코끼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높은 나무 위에 원두막을 짓고 밤마다 감시하고 있다.


▲부처의 치아가 봉납되어 있는 불치사 내부.
 

마지막 왕조의 수도 캔디
 (Kandy)
 
스리랑카 제 2의 도시 캔디(Kandy)는 대도시를 싫어하는 우리에게 이름만큼 달콤한 곳은 아니었다. 섬 중심부에 위치한 캔디는 내륙의 곳곳을 잇는 교통의 요지여서 활기찼지만 매우 번잡스럽고 복잡했다. 게다가 도시의 중심에 이 나라에서 가장 신성시 여기는 불교사원 불치사가 있고, 인근에 식물원과 코끼리 고아원이 있어 불교신자들과 관광객들을 이 도시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치사는 부처의 치아가 봉납되어 있다고 해서 내국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 불교신자들이 순례를 오는 불교의 주요 성지이기도 하다.

캔디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코끼리 고아원은 야생에서 다치거나 어미를 잃은 코끼리들을 사육하고 보호하는 곳이다. 사육사들은 물을 좋아하는 코끼리를 하루에 두 차례  강가에 몰고 나와 두 시간씩 목욕을 시킨다. 이날에도 83마리 중 집채만한 덩치의 코끼리와 아장아장 걷는 새끼까지 51마리가 조련사들을 따라 외출을 했는데, 동네 골목을 지나 강으로 행진하는 일사불란한 그 광경이 매우 이색적이고 장관이었다. 이 덕에 골목 양옆으로 늘어선 상점과 식당들은 코끼리 목욕 특수를 단단히 누리고 있다. (사진: 코끼리들이 마을을 통과해 강으로 행진하고 있다.)

샌들을 신은 내 발등이 땡볕에 따갑게 익어가는 동안, 시원한 물놀이를 마친 코끼리들은 골목 길바닥에 배설물을 한가득 질러놓고 질서정연하게 사육장으로 돌아갔다. 코끼리들이 골목을 빠져나가자 구경꾼들도 제각기 흩어졌고 상점들도 철시했다.  


▲코끼리들이 한낮의 열기를 피해 강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다.


▲하푸탈레(Haputale)의 아침 차밭 풍경
 
다원으로 이동
 
과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해안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부분적 점령한데 반해 인도에 진출해 있던 영국은 당시 캔디를 수도로 했던 싱할리 왕조를 굴복시켜 결국 섬 전체를 식민지화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일대의 산악고원지대에 인도의 다질링처럼 차 밭을 일구어 부를 축적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인 립톤티(Lipton Tea)가 이곳에서 영국의 실론티 산업을 주도했다.



우리는 캔디에서 몇일 묵은 뒤 다원으로 유명한 남쪽 산악지대로 향했다. 캔디를 벗어나자 점차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풍선같은 앞바퀴가 펑크날까 염려도 되었지만, 운전수 조셉은 구곡양장 산길을 능숙한 솜씨로 봉고차를 몰고 나아갔다. 조셉은 조금 전 캔디를 빠져나올 때, 추월위반으로 벌금 500루피(5달러)를 부과 받았는데, 내가 대납해 주었더니 지금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다. 교통신호등도 없는 난장같은 도로에 그래도 교통경관이 기능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기만 하다.    

손목시계의 고도계가 어느새 해발 2000미터를 가르켰다. 그러는 사이에 산은 잡목에서 온통 차밭으로 변해 있었다. 차밭은 가지런히 옆줄을 맞춰 횡으로 횡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오후가 되자 짙은 안개가 피어올라 차밭은 안개 속으로 숨어 버렸다.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의 여름 휴양지였다는 누와라 엘리야를 지나, 해질 무렵 오늘의 목적지 하푸탈레(Haputale)에 도착했다. 산 능선 위에 조성된 작은 마을 하푸탈레는 토마스 립톤이 차밭 경작을 시작한 곳이다. 고도 1700미터의 고원에서 폭우까지 쏟아지니 나무침상만 덩그런 게스트하우스의 방이 더욱 썰렁하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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