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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노트] “울적할 땐 노래, 잡념일 땐 청소... 이게 공양”

정목 스님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1-07 13:13

[2013 신년기획 행복노트] [4] 정목 스님 - 청소하며 노래 부르기


엄한 어른 스님께 꾸지람 듣고 얼음물에 걸레 빨며 노래했지
그게 나를 달래준 보살이었어…
음악감상실 몰래 간 것 들킬까 쿵쿵 뛰던 심장은 행복이었다


어린 시절 어느 날 친구들 간의 싸움의 불똥이 내게로 튄 적이 있다. 친구가 나의 이마를 손톱으로 할퀴었고, 지금도 내 이마엔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때 나는 학교 운동장 한쪽에 혼자 남아 '나뭇잎배' '꽃밭에서' '반달' 같은 동요를 부르며 속상한 마음을 달랬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이 나만의 기분 전환법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때로는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고 선생님께 자로 손바닥을 맞기도 했다. 어떤 선생님은 손바닥이 아닌 손등을 때렸는데, 시험 못 본 것도 속상한데 매까지 맞아야 하니 지금 생각해도 참 속상한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은 대답 없는 나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하소연도 하고 선생님이 야속하다며 서운한 마음도 털어놓는 것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나무에게 말을 잘 건다. 사람이 하는 말을 나무는 다 알아듣는다는 믿음이 내겐 있다. 나무들을 향해 불렀던 노래들은 지금도 내가 애창하는 곡들이다. 음악 선생님이 좋아하던 '은발'부터 '꿈길에서' '스와니 강' '노래의 날개 위에'…. 그렇게 나무를 관객으로 대여섯 곡 부르고 나면 울퉁불퉁하던 감정은 평평하게 사그라지고 원망이나 서운함도 사라진다. 마음은 어느새 행복함으로 따뜻해진다.

노래를 부르며 행복감에 잠기는 나만의 기분전환법은 학창 시절뿐 아니라 출가(出家)해서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나의 생활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불문(佛門)에 출가했을 때가 70년대 후반이니, 그때는 속가(俗家)나 절집이나 다 살림살이가 어려웠다. 그래서였는지 어른 스님들은 정신적으로 강해져야 정진도 잘 한다며 엄하고 무섭게 교육하셨다. 매일 꾸중 듣고 불호령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견디지 못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던 시절에도 나는 뼛속까지 시린 얼음물에 걸레를 빨아 법당 청소를 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목소리가 법당 밖으로 새어나가면 야단을 맞을까 봐 불단 위의 부처님만 들으시도록 나지막이 목소리를 낮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그때 마음을 달래주는 보살이었다.

정목 스님은“어린 시절 속상하거나 출가 뒤 어른 스님들에게 불호령을 맞았을 때도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노래는 내 마음을 달래주는 보살이었다”고 했다. /허영한 기자

30년은 훌쩍 넘긴 옛날이야기지만, 한번은 은사 스님의 심부름으로 초와 향을 사러 조계사 앞에 갔다가 종로2가에 있던 '르네쌍스'라는 음악 감상실에 승복 차림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은사 스님께 들키는 날이면 거의 초죽음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심부름 나온 그 짧은 틈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도둑질하듯 듣고 부리나케 돌아오면 절 문 앞에서부터 심장이 뛰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그 심장 소리가 행복의 소리였던 것 같다.

노 래 외에 나만의 사소한 행복 비결을 손꼽자면 청소하기다. 그것 또한 힘든 사미니(여성 예비 승려) 시절부터 길들어진 버릇. 그 시절 절집에서는 유일하게 청소하는 시간이 나만의 자유 시간이었다. 법당과 요사채와 공양소, 화장실, 마당 뒤뜰 등 청소를 할 곳은 많기도 했다.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쓸고 닦다 보면 망상은 사라지고 마음은 단정해지며 행복해졌다. 청소하면서 슬금슬금 혼자 노래까지 부를 수 있어 행복을 위한 비결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이뤘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혼자서 부르는 노래는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잘 불러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구에게 검열받아야 할 이유도 없는 위치에 있는 지금 여전히 노래와 청소는 법회니 강의니 하며 전국을 쫓아다녀야 하는 내게 작은 공양이며 기쁨이다. 요즘은 한 번씩 들르는 유나방송의 작은 홀에서 피아노로 동요를 치며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며칠 전엔 휴대폰에 노래 가사 몇 개를 담아 놓았다. 쉬고 싶을 때 혼자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는 꽃씨같이 조그만 행복이며, 마음을 편하게 바꿔주는 부처님 손길 같다.

☞정목 스님

16 만 독자와 만난 베스트셀러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저자, 라디오 DJ로도 유명한 비구니 스님. 동국대 선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나왔고, 전화 상담기관 '자비의 전화'를 세우는 데 큰 몫을 했다. 2007년부터 인터넷 '유나방송'(una.or.kr)을 열어 세계 42개국의 청취자들과 마음 공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 서울 성북구 삼선동 정각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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