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행복노트] “일 중독도 행복이더군요”

김아타·사진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1-03 15:10

[2013 신년기획 행복노트] [2] 사진가 김아타 ― 지독하게 '작업'하기

세계 곳곳에 캔버스 세우고 변화 담아내는 '자연의 그림'
예술이 전하는 감동과 반성 내겐 희망을 심는다는 믿음
과정 힘들어 울 때도 있지만 이건 진심으로 '행복한 눈물'


"당신이 나를 울린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가을, 우리는 13년 만에 그렇게 해후했다. 그녀는 휴스턴포토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이며, 내 은인이기도 한 웬디 와트리스이다. 웬디는 13년 전, 부산에서 작업에만 몰두하던 나를 세상 밖으로 불러낸 사람이다.

웬디가 운 것은 '자연이 그린 그림' 때문이었다. 내가 4년째 진행 중인 '자연의 그림'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다양한 공간에 하얀 캔버스를 2년 동안 세워두는 것이다. 비가 오고, 해가 뜨고, 먼지가 끼는 자연의 물리적인 변화를 캔버스가 스스로 수용하는 프로젝트. 세계 곳곳에 캔버스가 설치됐고, 상당수의 캔버스가 회수됐다. "이 작업이 분명히 내가 한 짓이 맞나?" 회수된 캔버스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동한다. 뉴멕시코 인디언보호구역에 2년 동안 설치되었던 것도 있다. 인디언이란 누구인가? 문명인을 자처하는 이방인에게 살던 땅을 내주었지만, 땅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우쳐준 그들이 아닌가.

인디언보호구역에 섰던 캔버스를 보는 나의 마음도 그대로 맑아진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아름다운 공간에서 인간의 간섭 없이 오직 바람과 구름과 새들의 소리와 2년을 함께한 하얀 캔버스는 산양의 뿔에 받혀 찢어진 두 개의 작은 흔적 외에는 거짓말처럼 맑고 깨끗하다.

인도 부다가야에 설치했던 캔버스는 보기에 섬뜩할 정도로 거칠어져 있다. 왜 이곳에서 29살의 싯다르타는 '붓다'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전 세계의 곳곳에서 돌아온 캔버스는 그곳 정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인제 숲 속에서 두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에 몇 번의 장마와 태풍을 오롯이 견뎌낸 캔버스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를 담고 있다. 이것이 웬디가 눈물을 흘린 이유다.

강원도 홍천 수타사 계곡에 2011년‘자연이 그린 그림’의 36번째 캔버스를 설치할 때의 김아타. /이태경 기자
이렇게 나는 날마다 감동하고, 그 감동은 '내가 왜 아티스트로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유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비로소 '아티스트'란 말을 거두었다. 자연을 넘어선 아티스트는 없다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술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오직 자연의 위대한 법을 찾아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행복한가요?"

"행복합니다."

"다른 작가들은 작업이 고통스럽다고 하던데."

작 가는 고통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감동을 보고 만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물질로 다 채우지 못하는 인간의 조건을 깨닫게 해준다. 아직도 예술이 고통스럽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보다 더한 감동과 지혜를 주는 일이 있다면 나는 내일 당장 그 짓을 할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웬디는 내 작업을 세상에 알리기에 바쁘다. 휴스턴의 부호는 실크로드를 따라 베이징에서 파리를 달리는 한 달간의 자동차 랠리에서 1920년대 전설적인 올드카에 캔버스를 부착하자는 제안을 해 왔고, 선박회사 오너는 오대양을 운항하는 배에 캔버스를 설치하자고 제안해 왔다. 당연히 캔버스는 오대양을 누빌 것이며 실크로드를 따라 21세기의 유목민, 마르코 폴로가 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개념이 확장되는 것이다.

내 캔버스는 인류 '카르마(업보)'의 현장인 아우슈비츠에 설치될 것이며 히말라야와 안데스와 인간의 도시에도 설치될 것이다. 우주 셔틀에도 캔버스를 설치해 우주의 에너지를 채집하기 위한 방법도 찾고 있다. 나는 예술이 인류의 역사를 반성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 상의 행복'에 대해 글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내게는 예술행위와 일상의 경계가 없다. 작업은 호흡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거기서 일상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밤낮 구분도 없는 지독한 워커홀릭이다. 때로 힘든 과정이 나를 울게 하지만, 그는 '행복한 눈물'이다. 그래서 작업의 과정 속에서 보고, 듣고, 사색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의 사소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지구에서 우주 간의 황당한 랠리를 상상하는 나는 오늘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이 하나의 캔버스를 세운다.

☞김아타

1956년생. 본명은 김석중. ‘아타(我他)’란 ‘나와 네가 동등하다’는 뜻으로 지은 예명이다. 1990년대, 나체의 사람들이 들판 등에서 무리 지어 포즈를 취해 자연과 하나 되는 장면을 찍은 ‘해체’작업으로 주목받았다.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아시아 작가 최초로 개인전, 200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초청 특별전을 가졌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아트 컬렉션, 휴스턴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두고온 고향집 2022.10.24 (월)
꿈과 함께 묻어둔내 고향 그 빈 옛집초가지붕 추녀 끝에참새가족 세를 들고대문간버티고 선 왕거미행랑채의 주인인 듯속살 들난 먹감나무앉은 채 해를 맞고앞마당의 돌담은눈 설게 헐었어도어머니손때 묻은 장독간봉숭아만 피고 졌다꿈길에서 언뜻 본고향집의 저녁녘오 남매 밥상머리이야기꽃 피어나고아버지밥상 물리는헛기침도 들렸다.
문현주
 의자에 앉아 조금 전의 내 모습을 되새겨봤다.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하고 고단한 몸이며, 어쩌다 거울 안의 또 다른 나와 마주치면 기억하는 내 모습에 조금씩 느껴지던 변화가 하루하루 다르게 더 빨리 진행하고 있다. 하나둘씩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은 이마 주변으로 제법 허옇다. 볼록 나온 배를 억지로 쑤셔서 넣은 청바지 입은 태 역시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니다. 눈가의 주름이야 자연의 현상이라 여겨도 웃는 근육마저 굳어버린 듯 웃는 모습...
김줄리아헤븐
고양이 2022.10.17 (월)
외롭다 생각하고 있는데 한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작은 고양이 약간은 나이가 있어 보인다으레 그렇지만 눈이 예쁜 고양이다쫓아가 한번 안아 볼까 하는데고양이가 멀어지기 시작한다어 어쩌지 하다가 놓치겠단 생각에 따라붙었다고양이는 야옹야옹 대며 계속 걸어간다난 쫓아가지만 사이가 좁혀지지 않는다좁혀지지 않는다지쳐가는 나 고양아 기다려고양인 쓱 한번 쳐다보다가 계속 갈 길을 가네좁혀지지 않는 거리 난 어떡하지 뭐 하고...
박락준
 나무는 혼자 섰을 때 아름답다. 나무는 둘이 섰을 때는 더욱 아름답다. 둘과 둘이 어우러져서 피어났을 때 비로서 숲을 이룬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를 포용하는 특성 때문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한 덩어리의 밀집성, 그 따뜻함이다. 건축예술이 잘 발달하여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쳐도 거기 도시와 숲의 조화 없이는 생명이 없는 도시다.기차나 버스로 여행을 하다 보면 유독 마음을 끄는 도시를 만난다. 초록빛 분지를 깔고 앉은 조그마한...
반숙자
밤의 나라 2022.10.17 (월)
나 어릴 적 커튼이 쳐진 어둠의 공간엄마는 자거라 소리에별빛 같은 눈은 더 별이 되어어둠 속 파란 풀숲에 나타난토끼가 나타나고 사슴이 뛰어놀았지나도 그들을 따라 마구 뛰어가면달은 나를 자꾸 따라왔어오지 말아 달라 말하지만달은 모를 미소만 남기고 날 밝게 비췄어하얀 토끼와 숨바꼭질하는 사이달은 내 등 뒤에서 더욱 환했어비밀스럽게 만난 토끼도 사슴도 다 달아나면난 진달래가 가득한 곳에서 진달래를따먹으며 달을 노려봤어달은 자꾸...
강애나
외국 나와 사는 이민자가 근래처럼 한국 드라마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을까? 그런데도 한국 땅을 밟고 서 있지 않은 이상,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래는 유일무이한 낙이라고 할 만하다. 드라마를 보다가 가끔 이런 장면을 마주한다. 극 중 어머니가 외출하시기 전 밥상을 차려 놓고 나가시는 장면이다. 끼니를 거를지도 모르는 식구를 위해 엄마가(때론 아버지가) 차려놓은 밥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김진아
낙엽 2022.10.12 (수)
우울해진 적이 있나요우리가 왜 바닥에 떨어져 있을까요..모든 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우리 생명의 가는 모습인가요. 가을 바람을 느껴보세요..생명 빛이 흐르는 줄기 뿌리까지 미세한 움직임을 전달해 보세요.저녁 노을이 바닥에 누운 내 몸을 비추면 내 모습이 훨씬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느껴보세요내게 삶의 선택은 없었습니다. 그저 흙과 물을 섞어 찬연히 빛나기만 하다어느 바람 부는 날 오후에 색이 고르는 순리대로...
송요상
빈 듯 찬 듯 2022.10.12 (수)
   5년 넘게 땅속에서 묵었을 매미 소리를 모카커피에 타서 마신다. 오늘 아침 내 특제 메뉴다. 매미 소리는 먹기 좋게, 적당히 분절되어 커피 잔에 녹아 든다. 어떤 소리는 튜브에서 쥐어짜듯 찔끔찔끔 흘러나오고 어떤 소리는 톰방톰방 방울져 떨어진다. 짝에게 닿아야 할 노랫가락을 내 잔 속에 빠뜨렸으니 녀석들은 끝내 짝짓기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선율이 흘러나온다. 파가니니인지 텔레만인지, 얼른 기억이 나지...
최민자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