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백야의 나라로 간다 12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1-05 11:23

기적을 꿈꾼다
매킨리 산 베이스- 탈키트나

 공원의 새벽길은 고즈넉하다. 인적 때문에 잠적했던 동물들이 새벽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그 바람이 헛되지 않아 널찍한 들판에 그리즐리 곰 가족이 보인다. 아기곰들이 서로 엉겨 장난을 치고 어미가 그 주위를 경계한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왼편 언덕 숲이 펄럭거린다. 작은 동물이 나무 그늘에서 이 편을 돌아보고 있는데 눈이 음흉한 동그라미이고 귀가 쫑긋한 게 작은 표범 같다. “링스네요. 당신들 참 행운아예요. 나도 처음 보는데.” 버스 기사가 망원경으로 내다보며 한 말에 와르르 창가로 몰려든다. 몸집 작은 내가 창가를 차지했을 땐 이미 링스가 덤불에 숨어버린 뒤. 그후 몇 번이나 덤불숲을 들락거리는 링스를 렌즈에 담기가 쉽지 않아 날렵한 몸매와 능청스러운 얼굴을 본 것만으로 만족을 하기로 한다.

구릉 위에 다리가 늘씬하고 멋스러운 뿔을 가진 동물들이 나타난다. 데날리 공원의 주인격인 캐리부. 일슨 센터에서 계곡에 매달린 산양까지 망원경으로 보고선 부지런한 새가 받은 복-매킨리 산의 해맞이와 희귀 야생동물과의 조우-을 한껏 즐기며 데날리 공원을 떠난다.





 케나이 피오르드 국립공원이 있는 씨워드(Seaward)까지 586km, 벌써 정오이니 내처 달려도 저녁에나 닿을 터. 한데도 자꾸 샛길로 빠지고 싶다. 매킨리 산 베이스 타운인 탈키트나(Talkeetna)를 지도에서 발견한 게 탈이었다. ‘ 팍스 하이웨이(Parks Hwy)에서 빠져14km 만 동쪽으로 가면 매킨리를 지척에서 볼 수 있는데.’ 귀속에서 작은 악마가 속살거린다. 그러나 운전하는 팀원에게 미안해 그 말을 못하고 꿀꺽 삼킨다. 

 “야생에서 벗어났으니 오늘 점심은 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읍시다.” 라는 내 제안에 스위스 샬레를 내비게이션에 입력을 하고 그 안내로 가는데 웬일로  140 마일 포스트에서 좌회전,하더니 동쪽으로 달린다. 어~, 이 길로 가면 탈키트나인데…. 이십여 분 후,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의 세트장 같은 구수한 타운예 이른다. ‘사적지 탈키트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 쓰인 나무 현판, 주술사의 집처럼 줄렁줄렁 색실을 늘어뜨린 카페, 골동품 자동차가 서있는 야외 시음장, 희한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 .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던가. 오색찬란한 단장을 한 레스토랑에서 손으로 빚어 화덕에 구운 피자 한 판을 먹고 한 시간 동안 타운 투어를 한다.






 지도를 들고 뒷골목을 헤매다가 국기를 단 커다란 통나무집, 레인저 스테이션 발견,  묵직한 나무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덩치 큰 레이저가 반긴다. 안내석 뒤에 검은 칠판에는 매킨리(Mt.Mckinley)와 포레이커(Mt. Foraker해발 5304m,매킨리의 남서쪽 23km에 있는 봉우리)가 적혀있고 그 곁에 숫자 한 쌍이 적혀있다.

두 산 등반 인원과 성공 인원이라는데 매킨리는 1000 명이 넘는 데 비해 포레이커는 30 명 정도. 둘다 성공률은 50%를 약간 밑돈다. 큰 응접실 대들보에 삥 두른 깃발 중 한글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한국원정대 몇 팀이 다녀간 흔적. 자랑스럽고 대견하기 짝이 없다. 매킨리 실체가 보고싶어 기록영화를 본다.영화제작 관련자 중 한국인 이름이 얼핏 스친 듯싶어 레인저에게 물었더니 말없이 작은 방으로 안내를 해준다. 그 중 한 액자 속에 사진과 함께 한영으로 나란히 적힌  그의 공적 ’이름 김기원,1994년 5월 21일 매킨리 16000피트 고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눈폭풍으로 인해 운명을 달리했다.’가슴이 찡해진다. 산이 좋아 산에서 영원히 사는 사나이, 그는 왜 동쪽 끝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왜 이 먼 북쪽, 빙하의 나라를 찾아 왔을까? 그리고 나는 왜? 매킨리와 고상돈, 매킨리와 김기원, 매킨리와 나. 그 질긴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본다. 




 한 번도 매킨리 산 등정을 탐해본 적이 없었다.단 하룻밤만 그를 품고 자면 행복할 듯 싶었다. 그랬는데 왜 솔깃이 욕심이 날까? 히얀 솜옷 입은 그의 품에 안겨 얼어붙은 그의  심장을 녹여주고 싶다. 하지만 치병 중인 현재는 몽상일 뿐. 그래, 언젠가.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너무 늦지도 않은 어느 날, 그댈 보러 오리다. 기적 같은 꿈이면 어떤가? 꿈을 꾸는 동안은 살아있는 것 같고, 하루하루가 천국에 사는 것처럼 황홀한 것을. 꿈을 가진 자는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같아 눈에 샛별이 뜨고 마음은 늘봄이다. 

 팍스 하이웨이에 든 시각이 오후 5시 30 분. 길가 너른 들판에 베리 천지이련만 시간이 급해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씨워드 가는 길에 앵커리지에 있는 한국 식품점에 들른다. 한국말 고픈 주인은 알라스카에 대한 여행정보를 주며 팀원들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 사이 쌀과 김치, 생선전과 나물 반찬 등을 사고 한껏 풍요로워진다. 북극권까지 사람이 살고, 말이 통하는 동포가 살아 짭짜롬한 우리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참 행복하다.




 
앵커리지에서 씨워드까지 쿡 만(Kook Inlet)을 끼고 달리는 시원한 바닷길(American Scenic Driveway). 휘슬러 가는 씨투스카이(Sea to Sky)와 견줄 만하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해안산맥과 섬들 그리고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에 드리운 산그림자, 금빛, 은빛, 놀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 등,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간혹 칙칙폭폭 기차와 나란히 달릴 때도 있다. 중간중간 버드 포인트,벌루가 포인트 등 뷰 포인트에 들러 쉬어가면 좋으련만 날씨가 궂어 마음이 바쁘다.




 케나이 피오르드 국립공원 구역에 들어서자 하늘이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도 질금거린다. 점점 길은 낮아지고 양옆의 산세가 높아지며 안개비 점점 굵어 녹두알만해진다. 시야 아득해지고 마음 또한 심란해진다. 오늘밤 캠핑은 어떻게 하고 내일 예정된 하이킹은 어쩌누? 혹시 케나이 반도로 빠지면 해풍이 저 산간에 걸친 먹구름을 거두어 가지 않을까? 그러나 헛된 기대. 9시 반이 다 되어 씨워드에 도착했는데 빗줄기 죽창 꽂듯, 소리는 양철북 두들기듯. 허참, 막판에… . 바닥으로 뚝 떨어지려는 마음을 얼른 주워든다. 그 동안 운이 좋았던 거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니.





오늘밤은 일단 호스텔에서 자고 내일 일은 또 내일 생각하지. 얼른 잿빛 생각을 털어내고 모비딕 호스텔로 찾아 들어간다. 다행히 네 침상이 비어있다. 비좁고 시설도 낡았지만 호스트와 투숙객의 환대가 우중충한 기분을 풀어준다. 더구나 냉동고에 마련된 공짜 음식, 캔들피쉬(Candle Fish,양미리 비슷한 생선)는 나머지 일정 중 가장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매킨리 산 등정:북위 63도에 위치한 매킨리는 알라스카 만과 베링 해협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인해 날씨 변화가 급격하다. 또한 같은 고도의 다른 산들에 비해 기압이 낮아  극심한 추위와 심한 고산증에 충분한 훈련을 한 산악인만이 도전 가능. 등반 시기는 5월~7월. 30여 개의 등반 루트 중 웨스트 버트리스(WestButress)를 선호. 60일 이전 탈키트나 레인저 스테이션에 등록 (dena_talkeena_office@nps.gov 1-907-733-2231) 필수.탈키트나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헬기로 베이스캠프까지 이동, 이후 기상상태를 살펴 등반. 일주일까지 베이스 캠프에서 대기 가능.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나무들 침묵하다 2023.03.06 (월)
나무 하늘의 교신 뻗은 가지로 한다나무 내민 손 새들을 훔친다나무 저 미친 나무들 제 그늘로 주리를 튼다나무 우듬지에 새 둥지를 흔든다나무 나이에 걸맞은 높이와 넓이로 자라 생성하는 둥근 것 들을 맺는다나무 제 그늘 사람이 즐겨 찾게 한다나무 해와 달과 그림자 놀이한다나무 바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나무들 이 많은 사단을 벌여놓고도누가 물으면 그저 침묵침묵이다.
김회자
미나리와 파김치 2023.03.06 (월)
상반된 이미지의 미나리와 파김치는 둘 다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집에 있을 땐 파김치가 되어 축 늘어져 있다가 문밖을 나서기만 하면 바로 즉시 생기가 돌며 파릇파릇한 미나리가 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런데 이 별명을 지어준 사람이 친구가 아닌 울 엄마이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딸의 신체적, 정신적 특징을 정확히 간파하신 훌륭한 어머니로 꽤 인기 있는 우리들의 엄마로 통했다. 감기와 몸살로 이틀 앓고 있으면 울 엄마는 삼 일째...
예함 줄리아헤븐 김
기적 같은 인연들 2023.03.06 (월)
   50살 생일 선물로 줄 멋진 센터피스 꽃 장식을 골라 들고 득의 만만한 얼굴로 계산대로 오던 손님이 갑자기 발길을 멈춰 섰다.근래에 나온 활짝 핀 하얀 서양난 세 그루가 예쁘게 심겨진 화분에 멈춘 시선을 떼지 못하고 환성을 질렀다. 들고 있던 센터피스를 제 자리로 가져다 돌려 놓고, 그 서양난을 들고 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조 서양난이고 값은 두 배나 비싼데 괜찮겠냐고 하니 왜 이렇게 예쁜 꽃을 가짜라 하냐며 장난치지 말라고...
이은세
선운사에서 2023.03.06 (월)
억겁의 세월을 담고침묵하고 있는 검은 초록 연못천 년의 혼으로 켜켜이 쌓은 겸손한 토담 숨쉬기도 바쁜 속세의 삶풍경 소리 잠시 놓아두고 가라 하네포근히 안아주는 어머니 품 같은 선운사근사한 詩語 하나 건져갈 것 없나 하는 이기심에탁한 머리 식히고 가라는 자애로운 부처의 미소도 외면한 채동백꽃과 꽃 무릇 때 맞춰 오지 못한 것이 못 내 아쉬워경내를 건성으로 돌며 고색 찬란한 사찰 분위기를 두 눈에 넣기만 바쁘다설 자란...
김만영
나는 클래식 문외한이다. 평생 즐겨 들은 클래식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과 비발디의 사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따로 들려주고 어느 계절이냐고 묻는다면 ? ….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과 합창 교향곡은 구분하지만, 베토벤의 곡과 모차르트의 곡은 가르지 못하는 귀를 가졌다. 이렇게 듣는 귀가 없는 사람을 “막귀”라고 한다. “클알못”은 ‘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클래식 듣기에 입문한...
김보배아이
어젯밤엔 싸늘한 별 속을 장님처럼 더듬거렸고 오늘 밤은 텅 빈 굴 속에 석순처럼 서 있습니다 내일 밤은 모릅니다 쫀득한 세상이불 속두 다리 뻗고 코나 골고 있을지 딱딱한 궤짝 속 팔다리 꽁꽁 묶인 채 솜뭉치 악물고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백철현
   거대한 돈의 위력을 등에 업고 세상의 부조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우리 삶의 고유한 영역까지 파고들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런데도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과 사회 속에는 돈으로 가치를 측정하고 거래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옳은 말이지만 사랑도 우정도 돈이 있어야 표현할 수...
권은경
세상에 내린 눈물 2023.02.27 (월)
눈물은 슬픔이요 사랑이라눈물은 감사요 용서라눈물은 빛이요 생명이라눈물은 가슴이요 바다라세상 욕심 하늘을 찔러거짓 속임 빗발쳐울분과 분노의 고열로불신과 절망이 목을 죄검은 세력 헤집는 세상어둠은 슬픔에 얼룩져눈물의 강가를 출렁이더라이제 금저 만치용서의 바다에 내려사랑의 바람 타고감사의 노를 저어생명의 눈물로 헹궈시든 세상을 건져 내가슴의 바다에 눈부셔 가리라
백혜순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