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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나라로 간다 11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0-29 09:39

하룻밤의 풋사랑 맥킨리산
 데날리 국립공원 못 미처 데날리 주립공원이 윙크를 하지만, 11시 캠퍼 버스 예약 때문에 한눈을 팔 수 없다. 나는 듯이 달려 10시 데날리 국립공원 입구 도착. 꼬불쳤던 몸을 쭉 늘리며 쳐다본 하늘에 흰 구름이 요트처럼 떠간다. 하늘과 바다가 바라보다 닮아버린 듯.

 공원 허가증을 받으러 윌드니스 센터로 간다. 한참을 기다려 허가증을 받고 났는데 주차는 비지터 센터, 승차는 사이언스 러닝 센터 앞이란다. 갑자기 바빠진다. 왔다갔다 하느라 한 시간을 허비하고 간신히 11시 15분에 녹색 버스 승차. 하이커들만 타는 캠퍼 버스는 절반이 짐칸이다. 





 흰 구름과 파아란 하늘, 거대한 초록 구릉들, 그 사이로 동맥처럼 벋은 신작로. 눈앞 가득 파랑과 하양, 초록과 게으른 노랑뿐이다.  세비지 강, 생추리 강,테클라니카 강, 이글루 크릭 캠프장과 폴리크롬 전망대,토클렛 강에 버스가 잠깐씩 멈춘다. 물이 말라 자갈바닥이 다 드러난 강과 큰나무 없이 초록 융단을 깔아둔 것 같은 언덕이 전형적인 툰드라지대의 풍광이다. 광막하여 조금은 쓸쓸한 듯싶은 풍경화에 파이어위드 붉게 피어 여름을 묻힌다.

 잦은 공원 버스 운행과 길가에 세워진 포크레인 탓인지 야생동물 보기가 힘들다. 동물이 생존할 수 있는 마지노 선인 북위 63도까지 몰려와 놀이터로 만들어서인지. 인간의 패악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인간이 자연을 침범해 야생동식물이 하루에 삼십여 종씩 멸종되어 가고 있단다. 혹자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약한 존재는 절로 사라지는 거라고 우길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탐심 때문에 내 후손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에서 갈증과 호흡 곤란을 겪으며 살아도 되는 건지. 기름진 옥토였던 아프리카가 사막이 되어버렸다. 그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고, 조금만 불편을 견디면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으련만…. 





일슨 비지터 센터(EiIson Visitor Centre,66마일)에 이르러서야 턱을 치켜들고 흰 눈썹 휘날리며 내닫는 알래스카 산맥을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 준엄하게 솟은 매킨리 산(Mt. Mckinley). 이리의 이빨처럼 솟은 남봉과 북봉이 흰 명주목도리를 목에 감고 있다. 명치께가 뻐근해 온다. 저 봉우리를 보러 5000여 km를 달려왔는데 그는 말이 없다, 반갑다는 눈인사도 애썼다는 말도. 나도 침묵한다. 그저 구름만 둘 사이를 오락가락할 뿐. 





 여기서부터 우리가 묵을 원더 레이크 캠프장까지 줄곧 매킨리 산을 바라보며 가게 된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며  여러 각도의 매킨리를 감상한다. 어느 때는 두어 잎 핀 장미꽃 봉오리로, 어느 때는 날캄한 삼각뿔로… . 그러나 매킨리는 홀로그램처럼 구름두건 속에서 아른거린다.

 4시 45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원더 레이크 캠프사이트(Wonder Lake Campsite. 85 마일 지점. 매킨리 산 전망이 최고)엔 풀숲더미만 울창하다. 호수는 어디 있는지. 하루밤을 지내고도 호수는 커녕 물소리도 못 듣는다. 텐트 치고 저녁 해먹고 나니 7시. 7시 30분에 있을 레인저 프로그램과 호숫가 산책,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여자 둘은 공부, 남자 둘은 산책을 택했다. 레인저가 탈을 쓰고 토끼와 스노우슈 헤어즈 (Snowshoe  Hares, 발이 넙적해 눈 속에 빠지지 않고, 귀끝에 검은 점이 있는, 토끼와 비슷한 동물)의 차이점을 재미나게 설명하고 아이들은 대자연 속에서 깔깔 웃으며 공부를 한다. 학습의 그늘 속에서 시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안쓰럽다.




 산은 늦게 잔다. 어젯밤까지 두건을 벗지 않은 봉우리를 보려고 일어난 새벽 두 시에 일어났으나 아직 그는 깨어있다. 아직도 진운 가득한 속세에서 번뇌하는 그에게 알몸 보여 달라 보채는 내가 부끄러워 다시 텐트로 든다. 그래도 수그러들지 않는 염치와 눈치없는 열망. 

 참다 못해 새벽 산책이라도 가려고 5시에 일어난다.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 보니 동녘하늘이 발그레 볼을 붉히고 있다. 그럼 매킨리는? 북쪽 봉우리가 밤내 벗지 못한 고뇌의 두건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각이 살아있는 정수리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저 훤한 이마를 보려고 그 먼 길을 달려왔던 거야.





33 년 전 한국 최고의 산악인 고상돈 씨를 빙원에 품고 있는 매킨리 산그늘 아래 단 하룻밤을 지내러 그 고단한 길을 달려왔다. 그 정성이 눈물겨워 정상을 볼 수 있도록 잠시 두건을 벗어준 걸까? 짝사랑하는 님 보듯 살자쿵 훔쳐보고, 하늘 팔레트에 번지는 아침놀을 돌아보곤 한다. 혼자서 실컷 사랑땜을 한 뒤 팀원을 깨운다. 와, 드디어! 팀원들 환호성이 조용한 캠프사이트를 뒤흔든다.





 도저히 베일 벗은 산을 등지고 화장실을 갈 수도, 밥을 지을 수도 없다. 서둘러 텐트를 걷고 짐을 꾸려 언덕 위로 옮겨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저 혼자 끓어 저 혼자 뜸 들인 밥을 건성으로 떠먹으며 매킨리만 바라본다. 영락없는 매킨리앓이다. 동쪽 하늘이 점점 붉어짐에 따라 봉우리도 점점 고운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마부터 콧날, 입술까지 황금빛 태양을 받은 매킨리는 성장을 한 황제 같다. 산군을 거느리고 개선하는 황제 앞에 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신하, 아니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다.

 실컷 사랑땜을 하고 나서 급히 6시 30분 캠퍼 버스를 타러 내려 간다. 어제 5시간 반, 오늘 또다시 5시간, 10시간 반 걸려 들어왔다가 잠만 자고 나가지만 손톱만큼도 이쉬움이  없다. 비록 풋사랑이지만 냉혹하기 만한 매킨리와 뜨거운 하룻밤을 지냈기에.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 6백만 에어커에 달하는, 광대한 공원으로 툰드라 지대 특유의 지형과 특이한 야생동물 관찰이 가능, 공원 내 15마일까지만 자동차가 들어가고 이후 구간은 셔틀버스나 관광버스를 이용. 캠프장 및 캠퍼 버스예약 필수(www.reserveddenali.com 1-907-272-7275),백컨추리 캠프도 가능.

* 고상돈(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 성공, 1979년 5월 19일 매킨리 최고봉을 정복하고 하산하다가 이일규 대원과 함께 사망. “산은 정복되는것이 아니라 올라가도록 허락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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