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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나라로 간다6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9-24 13:36

천국에 오르는 지옥 계단

-골든 스테어를 넘어 칠쿳 패스로

 하이킹 3일째. 한여름에도 바람과 안개, 심지어는 눈보라까지 뿌려댄다는 패스에 도전하는 날, 너무 늦게 잠든 탓인지 새벽 3시에 출발하자는 약속이 무색하게 4 시 기상. 늦어도 끼니는 거를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팀원 때문에 누룽지를 끓여먹고 4시  45분에 출발(이후 팀명을 ‘노스 익스플로러’ 에서 ‘누룽지’로 바꿈.) 벌써 몇몇 하이커들이 떠난 빈 캠프 패드가 드문드문 있다.

 시작은 상큼한 오솔길, 송글송글 이슬 맺힌 보랏빛 루핀을 보면서 날듯이, 다음은 덤불숲을 꿰가며 촉촉하게 젖고, 이어서  바위 틈새에 흙을 부어 걷기 편하게 다져둔  너덜지대를 간다. 곧 마지막 눈사태 났던 지역(1898년 4월3일,성지 주일에 덮친 눈사태 때문에 이십여 명이 희생됨)을 지나 오른편에 장한 바위산, 왼편 계곡에 앉음뱅이 폭포수 쏟아지는 장관을 굽어보며 마지막 덤불숲을 빠져나가면 트레일이 벙벙한 눈밭으로 뚝 떨어진다. 앞사람의 발자국보다는 주황색 나무막대를 따르는 게 안전하다. 산중에 늦게 찾아든 여름이 눈밭 속살을 간질여 슬슬 녹아내리고 있기에.

 이미 산정은 안개에 잠겨 컴컴하다. 온 세상이 회색빛 운무에 싸여있고 나홀로다. 이럴 때 외로움은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백척간두에 서있을 적엔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저 검은 입 벌리고 있는 두려움 앞에 발발 떨거나 혹은 마음의 동앗줄을 당기며 전의를 불태우거나 할 뿐.



 얼마나 왔을까. 문득 고개를 드니 코 앞에 골리앗 같은 검은 바위산이 턱 버티고 있다.   가시거리가 2m도 안 되어 경사도와 그 높이를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30분 전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아가씨 궁둥이가 내 머리맡에 아른거리니 바위산이 발딱 서있다고 보면 옳겠다. 칠쿳 트레일행을 결심하고도 계속 괴롭혔던 공포의 리포트(추가 고도 1000m와 45 도 경사의 바위지대, 13km 거리를 12 시간~16시간만에 통과)가 허풍이 아닌 듯.

 시작이구나! 하이킹 스틱을 접어 꽂고 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 장갑을 꺼내 낀다.   키가 두 길은 되어 보이고 울퉁불퉁 근육질의 거인 같은 바위와 맞장을 뜬다. 천 년 세월 묵은 바위라 할지라도 누군가 지나갔다면 그 흔적이 남기 마련. 안개처럼 몰려오는 두려움만 걷어낸다면 발자취를 찾아낼 수 있지. 수직의 암벽도 틈이 있는데 하물며 포크 레인이 밀쳐둔 것 같은 바위첩첩 산이야. 다행히 바위들은 오랜 세월 서로 기대고 있어 탄탄한 발받침이 되어준다.





1/3이나 올랐을까. 지름 2cm정도 되는 녹슨 케이블이 바위틈에 끼어있다. 옳거니. 로프 삼아 매달리면 되는 것을. 길 잃을 염려도 없고 오렌지색 막대를 찾아 지그재그로 오를 필요도 없으니 최단 거리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몰아치는 바람은 피할 길이 없다. 거대한 바위를 바람막이로 삼아 숨 고르고 있는 청년 곁을 지나쳐 거의 정상에 이를 즈음 부서진 나무집과 거대한 쇳덩어리가 눈에 띈다. 아마도 케이블을 끌어 당기던 도구인 양. 그리고 5분이 안 되어 첫 고갯마루에 선다.  

 골든 스테언가? 천만에. 여전히 긴 전초전이다. 까만 어둠 속에 서있는 막대를 따르다 보니 트레일이 사라진다.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바위들만 겹겹. 다시 살피니 왼쪽 골리에 나즈막한 능선이 보인다. 역시. 뒷팀을 위해 오렌지색 막대를 골리 입구에 세워두고 쉼표없이 오른다. 그 옛날의 스템피더들처럼. 그러나 목표가 다르다. 그들은 일확천금의 노다지를 향해 몸을 던지고, 난 에고의 허물을 벗고 정갈한 영혼의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스스로를 태운다.

 드디어 스케일. 골든 스테어를 앞두고 망설였을 옛사람들의 불안과 갈등이 안개로 폴폴 피어나고 있다. 지금껏 온 길도 충분히 힘겨웠는데… . 미스터 보드빌더(Mr. Bodybuilder)처럼 팔짱 끼고 앞을 가로막은 깔크막에  잠시 흔들린다. 아, 이 험한 길을 정말 가야 하나? 무얼 위해? 모른다. 그러나 고통스러웠던 일도 세월 지나 아련한 추억이 되듯이, 남은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더 진한 감동으로 남겠지. 거침없이  살아왔듯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웃으며 넘으리라.  




 이후 패스까지의 1km 구간이 골든 스테어. 여기서부터 서밋까지는 다행히 눈에 덮여있다. 바위보다는 눈밭이 낫다. 경사도 밋밋해지고 넘어져도 큰 부상이 없어서. 마치 하늘에 걸어둔 빨랫줄을 타고 오르는 것 같다. 제 속의 불안이 커져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풍선처럼 하늘로 하늘로 솟구친다. 두려움은 심호흡과 망각으로 떨칠 수 있는데 등을 후려 갈기는 바람이 몰고오는 강추위는 통제가 안 된다.

겨울 장갑 속의 손가락이 저릿저릿하고 바람 회초리를 맞은 볼이 따끔거린다. 등줄기를 후려치는 매바람에 떠밀려 오른 언덕에 낮은 굴뚝 같은 게 서있다. 뭐지? 작은 동판 하나 새겨있어 읽어보니 오호, 알라스카 주 경계석이다. 바람 치는 정면을 피해서 아늑한 뒤쪽에 배낭을 벗어두고 사진을 찍는다. 10 분 후 녹슨 톱날 앞에 누워있는 서밋 게시판. 새벽 4시 45분에 출발하여 4 시간만에 도착한 서밋인데 큰 감흥이 없다. 서밋이 응당 내놓아야 할 파노라마 뷰가 없어서일까?  예고편(알라스카 경계석)을 미리 보아버려서일까? 아무튼 신비감이 떨어진 서밋에 오래 서있질 못하고 뛰어 내려온다.

 그러나 캐나다 비씨 주 표지는 큰 감동이다. 고향집에 들어선 것처럼 포근하다. 바위도 너그러워 보이고, 능선도 편안하고, 심지어는 나동그라져 있는 널빤지와 쇠붙이들도 정겹다. 눈밭 패스를 넘으면 바로 캐나다 와든 캐빈(Warden Cabin)이 있다. 눈보라 치는 패스를 낑낑거리며 넘자마자 캐나다 RCMP가 기다렸다가 관세를 매겼다니 얼마나 얄미웠을까. 폐쇄된 와든 캐빈 아래 아웃하우스와 쉘터가 있다. 곱은 손을 호호 불며 들어서니 파이오니아들이 틈을 좁혀 자리를 내어준다. 그 옛날처럼.




 역사는 파이오니아들이 쓰는 소설 같은 사실이다. “~ 고 싶다.”고 되뇌지 말고, 지금  떨쳐 일어나라. 꿈 꾸는 몽상가와 도전하는 파이오니아만이 불가능의 빗장을 풀 수 있다. 칠쿳 패스는 그리도 건장한 수문장을 세워놓더니, 상상도 못한 신천지를 펼쳐놓고 기다린다. 몽상을 현실의 문 밖으로 끌어내는 탐험가들을….

*스케일(The Scales): 25.7km 지점.캐나다 정부가 골드필드로 향하는 스템피더들에게 일년치 식량과 의류, 광업 도구 등의 리스트를 제시, 무게를 1톤(1000lbs)/인으로 제한하고 이곳에서 무게를 쟀다.

*골든 스테어(Golden Stairs): 얼음 계단을 깎고 계단마다 비용을 지불. 많은 스템피더들이 이곳에서 발길을 돌렸다.짐꾼들이 줄지어 오르는 광경을 보고 “마치 거대한 개미산에 개미들이 오르는 것 같다.”고 묘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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