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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나라로 간다4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9-10 09:32

모기와의 전쟁
-트레일 헤드에서 캐년 시티 캠프장까지

여름산에서 모기와 블랙플라이, 덩치 큰 호스플라이까지 가세를 한 모기 군단을 만나면 당해낼 장사가 없다. 오죽하면 화이트 패스를 넘던 말들이 모기에게 물려 수 천 마리 떼죽음을 당한 후 칠쿳 트레일로 경로를 바꾸었을까? 오늘 아침 클론다이크 하이웨이를 올 때 들여다 본 데드호스 밸리(Dead Horse Valley)가 떠오른다. 그러나 칠쿳 트레일 모기도 만만치 않다. 트레일 입구서부터 달라붙은 모기군단은 타이야 강물만큼 끈질기게 하이커들을 쫓아온다.

정수리를 쪼는 듯한 뙤약볕이 나뭇가지에 걸려 시원해질 즈음, 당일 하이커 등록 게시판이 나타난다. 기다린 듯 나타나는 나무뿌리와 돌멩이 엉킨 오르막길에 하이커들이 겁 먹고 돌아간다.

30분쯤 걷다 벤치에 앉아 팀원을 기다리는 사이 매복 중이던 적병의 기습공격. 주먹밥 하나 입에 넣을 틈 없이 쏴댄다. 전시여도 식사시간만큼은 휴전하는 게 국제 간 협정이고 휴머니즘이련만. 하기야 모기에게 휴머니즘을 기대하는 것도 우습고 남의 땅 침략한 주제에 국제협정 운운하는 것도 염치 없는 일일지도.

캐나다에서는 자연 보호, 생태 보존을 위해 사람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하이킹 도중 곰에게 상해를 입으면 “왜 곰 테리토리에 침범해 곰을 자극했느냐?”며 다친 사람을 나무란다. 인간보다 자연과 야생동물이 우대를 받는 캐나다에서 16년을 살아 어지간히 자연친화적이 되었다고 자부하는데도 모기와는 도대체 친해지지 않는다. 모기를 쫓는 방법을 갖가지 연구, 실험해 보았지만 다 실패. 가장 효과적인 게 한국산 모기향인데 걸으면서 피울 수 없으니 고스란히 당할밖에. 철벽 방어를 했는데도 배낭끈 사이, 허리춤 틈틈이 물어 제끼는 놈들을 막을 길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자켓을 다시 주워입고 땀을 줄줄 흘리며 걷는다.

하지만 모기 때문에 모처럼 나선 탐험길을 망칠 수는 없다. 그래서 모기를 이해하기로 한다. 여름 석 달 살다 가는 암컷이 산중에서 알 낳고 종족을 보존하려면 어쩌다 만나는 먹잇감을 놓치면 안 되겠지. 하니 그 모성애를 갸륵히 여겨 보시 좀 하자. 너그러이 마음먹고 부처가 된다. 얼마 안 가 용광로처럼 끓던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이후 끊어졌던 강물소리도 다시 들리고 길섶에 핀 들꽃도 눈에 들어온다. 기라줌한 초록 잎새 아래 빨간 열매를 숨기고 있는 건? 워터멜론 베리란다. 물이 많고 달콤해 정말 수박 맛이다. 간간이 열리는 하늘과 숲을 흔드는 바람에 잠시 현실을 망각한다. 그럼 모기와의 배틀은 끝이 났는가? 아니다.

득도한 지 30분이 채 안 되어 난 다시 중생으로 돌아가고  만다. 모기떼는 정말 적응 안되는 말종이다.

한 시간 후에 큰 삼거리가 나온다.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 숲길에 들자마자 늪지대. 직선, 또는 지그재그의 긴 보드왁이 있다. 널을 뛰듯 출렁거린다. 묵은 나무가 자빠지고 넘어진 원시의 숲에 황톳물 남실거리는 늪을 건너자니 아마존 정글을 팔랑거리며 누비는 나비 같다. 아득하고 몽롱한 기분으로 한 시간 남짓 물의 나라를 건너 고슬한 산길에 들면 무너진 나무집 한 채와 굴러다니는 쇠붙이를 본다. 옛 골드러시의 흔적이다.




두 시간 반 걸어 제법 솔솔 바람 부는 피네간 포인트(Finnegan’s Point)에 닿는다. 강쪽에 나무숲이 헐렁한 걸로 보아 다리가 있었던 지점인가 보다. 우측에 쉘터(Warm Hut)가 있고, 캠프장은 숲으로 올라가야 있다. 빙하를 건너다 보는 지점에 캠프장이 있다고 하나 트레일 헤드 지척에서 첫 날밤을 지내고 싶지는 않다. 해 떨어지기 전에 더 가 두어야 내일 일정이 순조로우니까.

모기는 이제 적이 아니라 동반자다. 대가 없는 헌혈, 이유 없는 보속을 하면서도 마음이 느긋한 건 수 만 년  동안 펄펄 끓는 인간의 욕망을 지켜보았을 강과 청산의 무심(無心)을 닮아서이리라.

두 개의 산을 넘어 모처럼 팀원 넷이 한데 모였다. 물 한 모금, 에너지 바 하나씩을 먹고 캠프장까지의 거리를 헤아린다. GPS를 가진 팀원의 “1km 가량.” 이라는 말에  힘을 내어 일어선다. 배낭이 종잇장처럼 가볍다. 희망은 가끔 기적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1km전방에 있어야 할 캠프장이 연처럼 날아가 버렸는지 가도가도 나타나질 않는다. 하기야 캐년 시티 캠프장에 이르려면 200~300m 높이의 언덕을 넘었어야 하는데 계속 평지만 걸었으니… .

사람은 가끔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해서는 항상 남탓을 한다. 그 빤한 거짓말에 동조했으면서도… .

 가장 작은 생명체의 공격에 사무치게 괴로워 하다가 그 고통에서 해탈할 즈음 언덕이 나타난다. 이제 정말로 1km 이내에 캠프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뒤처진 팀원들을 기다린다. 오랜만에 다 모여 흐북하게 쉰다. 모기는 아마 이 순간 “ 잔치 잔치 벌였네.”하고 쾌재를 불렀으리라. 언덕을 내려서자마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야, 캠프장이다!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여 6시 다 되어 도착한 캐년 시티 캠프장(Canyon City Campsite).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있던 하이커 20여 명이 환호로 맞아준다. 오래 된 나무집 한 채와 캔버스 쉘터(Warm hut)가 있다. 쉘터 안에는 나무 때는 난로와 벽 한 편에 식사 준비를 하는 알루미늄대가 설치되어 있다.

6시가 되었는데도 캐년은 아직 환하다. 백야의 나라에서는 햇발이 남반구보다 더 긴 걸까? 그래서 모기도 더 강한 생명력을 보이고? 벌레까지도 치열해지는 야생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질긴 생명의 삼줄을 삼아야겠다. 모기 전사들이 텐트를 포위하고 있는 진지 안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참 어렵지만 울룩불룩한 땅바닥에 몸을 뉘며 긴 하루에 마침표를 찍는다.

피네간 포인트: 7.7km 지점에 있는 첫 캠프장. 피네간 삼 부자가 강에 다리를 놓고 통행료를 받았다. 75 개의 텐트촌이 형성되었던 곳

캐년 시티 캠프장: 12.1km 지점에 있는 캠프장, 캐년이 시작되는 곳. 첫 케이블이 설치된 곳이며, 예전 전화국이었던 나무집이 있고, 쉘터, 푸드 캐치와 아웃하우스가 있으나 캠프사이트는 야생. 강물에 세탁, 머리 감기, 그릇 씻기 금지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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