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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장학금이 제 인생의 전환점을 찍었습니다”

박승민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8-31 15:22

UBC 약대 2학년에 재학중인 박승민군은 지난 29일 밴쿠버 한인 장학재단 ‘기부자의 밤’ 행사에서 아래 원고를 낭독했다. 솔직한 경험담과 장학금이 미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밝힌 글로, 한인 사회의 선행과 참여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본보는 박군에게 원고를 받아 게재하기로 했다.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여러분,

시작하기에 앞서 이 뜻깊은 이벤트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박승민 이구요, 캐나다에 이민 온지는 정확히 10년이 되었습니다.

밴쿠버 장학재단 동문회에서는 이그젝 멤버로써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UBC 약대 2학년 재학중이구요, 약국에서 약국 어시스턴트로도 일하면서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밴쿠버 한인 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은 경험이 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 해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장학금을 받지 못했더라면,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많은 혜택을 경험 할 수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장학금은 그정도로 저의 발전에 중요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제가 한국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을 하자면,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을 보는 저의 시각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그리고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도, 한국 아이들에게만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괴롭힘 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의 외모, 옷차림 등등을 지적하였고 캐나다에 갓 이민 왔을때는 제가 영어를 못한다는 점을 핑계 삼으며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였습니다.

이러니 그때는 한국사람들이 좋게 보일리가 없었지요. 저는 한국인들 모두가 이렇다라는 착각을 하기 시작하였고, 한국 사람들과는 점점 어울리고 싶지 않아 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러 저는 약대 입학을 꿈꾸는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 날 밴쿠버 한인 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서류를 작성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2010년의 장학생 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이 장학금은 저에게 여러모로 큰 힘이 되었습니다.

1) 첫번째로, 장학금을 받은 시기에 저희 가족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장학금 1000 달러를 받은 것은 저희 가족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2) 두번째로, 저는 장학금을 받은 후 장학재단 동문회의 이그젝 멤버가 되었고, 밴쿠버 한인 장학재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제 꿈을 이룰 수 있게 진심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처럼 한국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테고, UBC 약대 입학도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만난 사람들은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성적만 높으면 봉사활동이나 일 경험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의 생각이 너무나도 틀렸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성적이 높으면 장학금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거나 다음 학년을 위한 수강신청을 좀 더 빨리 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직장에서 일하면서 얻는 지혜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법을 강의실에서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성적에만 힘을 쏟는 것은 자아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장학금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VKCSF 동문회 멤버들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고 저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장학재단 동문회 멤버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고, 물어보면 성심껏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약대에 지원할때 지원서 쓰는것도 도와주었고 약대 인터뷰 준비하는 것도 도와줬습니다. 약대 인터뷰가 많이 어렵기로 유명한데, 멤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 인터뷰에서 합격 점수를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이렇게나 도와주고도 바라는 대가는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성공을 하고 나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학생을 – 그들이 저를 도와준 것처럼 - 도와주는것이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밴쿠버 한인 장학재단 동문회에서 일하며 '한국 사람들 모두는 나쁜 사람이다' 라는 편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한국 사람들의 이미지와 정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자상했고, 남을 배려할줄 알고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을 보며 저는 용기를 얻었고 다른 한국 사람들도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좋은 한국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장학금을 받은 것은 제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저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준 장학재단에 너무 감사하고, 다른 학생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는 학생들이,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한국 사회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donor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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