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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야생의 5 종 철인 경기장 NCT (8)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0-07 09:23

에필로그 – 일기장 갈피에 꽂히는 NCT의 야생화들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산새소리에 일어나니 캠프 패드가 촉촉하다. 간밤에 비가 밀사처럼 다녀갔나 보다. 우리를 문명세계로 실어내갈 보트 닿는 선착장(Wharf)이 아침 안개에 싸여있다. 입 떡 벌린, 게다가 젖기까지 한 등산화를 다시 발에 꿰고 싶지 않아 샌들 신고 내려갈 만한지 하산길을 들여다본다.

 시작부터 가파르다. 45도 경사진 기슭에 도끼질 몇 군데 해놓은 나무가 비스듬히 드러누워 있고, 바위와 나무뿌리가 엉클어진 구덩이가 있다. 끝까지 버라이어티 서바이벌 훈련장이다. 10여 분 고생하면 갈 것 같아 안심하고 돌아온다.

 굵은 나무둥치 넘어진 아래 제법 큰 구멍이 뚫려있다. 그 앞에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있고. 트레킹 마지막 날 곰을 만나 ‘곰과 함께 춤을’추어도 괜찮겠다 싶어 두리번거려도 곰은 기척이 없다. 텐트로 돌아오는 중 타닥타닥 나무 튀는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 모닥불을 지폈구나. 마음이 느긋하고 훈훈해진다.

야영의 꽃은 역시 캠프 파이어다. 캠프 파이어 앞에서 한 사람씩 인생 역정을 얘기하는 6일야화(‘천일야화’의 패러디.) 시간을 가지려 했는데… . 늘 밤 늦게 캠프장에 도착해서 허겁지겁 밥해먹기 바빠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매일 저녁 모닥불 피워놓고 인생 역정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매우 힘든 구간을 지나며 한 말이었을 게다. 그러자 “아이고, 지금이 역경이네요.” 헐떡이는 숨소리에 섞여 돌아온 대답에“맞다, 맞아. 지금이 역경이다.”하며 팀원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 역경의 지옥훈련이 한 시간 뒤면 끝난다.

문명사회로 돌아가자마자 하고 싶은 것? 첫째, 뜨거운 물 샤워. 둘째, 포트 하디 산 피쉬 앤 칩에 시원한 맥주 한 잔.


<▲ 필자 >


윗채 신혼부부의 압맞춤 사진을 한 장 찍어주고 훌륭하게 임무를 마친 등산화 두 짝을 끈으로 묶어 캠프장 근처 나뭇가지에 건다. 또 하나의 행잉 슈즈 트리(Hanging Shoes Tree)다.  하이커들이 트레일 초입에서 저 귀기 어린 등산화를 보고 얼마나 놀랄까? 칙칙한 숲속에 혼자 남을 등산화를 보러 또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데, “해영 씨는 언젠가 또 오겠지? 근데 난 다신 안 올 거야.” 몸서리치며 던지는 청산 님 말에 터지는 폭소. 동의의 웃음일까 절대 부정의 웃음일까.

여전히 중장비 차림으로 간밤 비에 미끄러워진 하산길을 더듬거리며 내려간다.  풀풀풀 엔진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낸 워터 택시. 베이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고 배 댈 생각을 안 한다. ‘우리 배 아닌가?’ 배가 멀어진다. “우리 안 태우고 그냥 가나 봐.”무인도에 버려진 표류객처럼 당황한 팀원의 목소리에 모두들 긴장. 한 5 분 새 느끼는 패닉. 그러나 후진하여 10명의 하이커들을 토해놓는다. 깔끔하고 멋스러운 선남선녀들을 향하여 목청껏 환영인사를 한다. “웰컴 투 헬.”

선장 조지가 간밤 비로 몸 춥고 배 고팠을 우리를 위해  따뜻한 트레일 버거와 물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한 시간 바다사자 섬 유람도 시켜주겠단다. 고마운 사람이다. 밴쿠버 섬과 대륙 사이의 걸프를 누비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쐰다. 저 멀리 우리가 헤매었던 헤드랜드와 블러프들이 보인다. ‘아듀스 아듀스, 아미고(안녕 안녕 친구여). 다음 번엔 요트를 몰고 와 우릴 곤혹스럽게 했던 쪽비치를 점프업다운하며 유람하리라.’

거대한 바다사자들이 바위에 거드름을 피우며 누워있는 바위섬에 닿는다. 아기 바다사자들이 해초 넌출거리는 바다로 뛰어들어 포물선을 그리며 유영을 한다. 아기들은 호기심이 많아 신기한 소리를 내는 보트를 좋아 따라 다닌단다. 바다 유람하느라 예정보다 1 시간 반 늦게 포트 하디에 도착. 오후 7 시 30 분 페리를 타려면 샤워와 근사한 점심 중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 온 몸에 머드팩을 한 채로 문명사회를 활보할 수는 없는 일. 뜨거운 물로 야생의 흔적을 지우고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운전대를 잡고 깜빡 졸았는지 드그륵 갓길의 자갈돌 긁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깬다.

아일랜드 하이웨이는 화사한 여름 햇살을 뿜어내고 있다. 해안절벽을 넘고 밧줄에 매달려 미끄러지고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있었던가? 세상에 정말 그런 지옥이 존재하긴 한 거야? 샤워해서 말끔해진 차도남, 차도녀(차가운 도시 남자, 여자)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하지만 뻘겋게 진흙 둘러쓴 등산화와 배낭이 그것은 환상이 아닌 사실이며, 우리가 그런 지옥을 건너온 야생의 생존자라고 악을 악을 쓰며 증언한다.

야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연약한 인간이 자만을 버리고 귀의해야 할 본향인가. 아니면 살아오면서 덧입힌 체면과 허식의 허물을 벗고 참자아로 돌아가는 도량인가? 나에게 NCT는 엉클어진 인간관계, 복병처럼 숨어있는 재앙, 무른 자의식의 창촉이  배후를 노리고 있는 치열한 현실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없이 먹물통에 빠진 듯한 카오스에서 빛이 되어준 건 묵묵히 함께 걸어준 길벗들의 발길, 깊이를 알 수 없는 진흙 수렁에서 몸을 일으키게 해준 것 역시 길벗들의 따스한 손길, 블러프에 막혀 헤맬 때에 밤길을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길벗들의 믿음 어린 눈길 덕택이었다. 어려운 고비마다 응원하던 침묵의 함성이 없었다면, 결코 완주하지 못했으리라.

경개가 수려하여도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황무지에 불과하고, 자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아름다움을 함께 속삭일 벗이 없다면 화투짝에 그려진 엉성한 도화(圖畵)일 뿐이다. 황무지 같은 거친 대자연에 같이 깃들 벗이 있고, 자연이 펼쳐내는 진기한 마술을 보며 함께 감탄할 동무들이 있는 나, 참으로 행운아 아닌가?

생의 여정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길벗들을 만났던가? 잠시 또는 오래, 말을 섞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기도 하며, 곁을 스쳐갔던 인연이 남긴 흔적들이 일기장에 눌러둔 꽃잎처럼 남아있다.

‘2011년 여름, NCT’의 일기장 갈피에서는 늦여름까지 당당히 피어 산야를 메우는 파이어 우드(청산), 하얀 설원에서 소롯이 피어나는 글래셔 릴리(메이),  든든히 곁을 지며주며 그윽히 미소 짓는 야로우(일손), 영롱한 아침 이슬 머금고 찰랑이는 파인 드롭스(영주), 바닷바람 맞으며 대양을 향해 물결치는 와일드 로즈(성현), 꿈의 씨방을 익히며 하늘로 하늘로 치솟는 팍스 글로브(아들애), 바위틈에서 빼초롬이 고개 내미는 제비꽃(나)의 향내가 은은히 풍기겠지.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향내나는 손을 잡고 인생의 거친 파도를 타겠지, NCT의 진흙내 가시는 어느 날엔가… .**



<▲ 성현씨>


<▲ 필자의 아들 >


<▲ 청산님 >


<▲ 일손님>


<▲ 메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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