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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야생의 5 종 철인 경기장 NCT (6)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홍메이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9-23 17:00

5.야생의 철인 5 종 경기장

얼멍얼멍한 하늘을 보고 잠에서 깨어난다. 팀원들은 어젯밤 하늘의 비의(秘儀, 신비한 의식)에 초대받은 감동에 취해 꿀떡잠에 빠져있다. 레인저의 야트(천막집)가 있다 해서 주변 정찰을 나선다. 비치 중간쯤 푸드 캐치와 레인저 야트, 그리고 햇볕 채광판이 있다. 게시판에 붙은 타이드 스케 줄을 살핀 후 돌아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하늘이 며칠 참았던 가랑비를 뿌린다. 물의 날(水요일)이다. 트랙으로 돌아온 야생마들이 쨍쨍한 햇볕 아래 모랫벌을 달리는 게 안쓰러웠을까.

 오늘 가야 할 스키나 크릭까지 7.5km. 해변길과 쪽비치 넘나들기, 200 개의 계단이 있다는 롱 레그 힐(Long Leg Hill)과 두 번째 케이블 카가 있는, 가장 힘든 구간(Extremely Difficult Section)이다. 드디어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는 환상을 가질 수 없다. 너무나 선명하고 확정적인 현실 앞에서 꿈을 꿀 수 없듯이. 그래서 안개에 잠긴 흐릿함이 훨씬 더 운치가 있다.  하늘과 바다, 녹색 숲과 백사장의 경계가 없는 해변이 농무에 젖어 물기 자욱이 번진 수묵화 한 폭을 그려내고 있다. 잠시 눈앞의 고초를 잊고 아련한 환상에 빠진다.

 해변에서 숲으로, 숲에서 해변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어김없이 굵은 동앗줄이 늘어져 있다. 전 트레일에 드리운 로프를 헤아리면 30 개는 넉넉히 될 듯. 90도 직벽에 늘어진 로프는 배낭 따로 사람 따로 올리는 게 안전하다. 역도 선수가 아닌 이상 배낭+체중=70~100kg을 팔힘으로만 들어 올릴 수가 없다. 게다가 직벽은  진흙 칠갑을 하고 있어 발을 받쳐주지 못 한다. 그럼 밧줄 구간을 제외하면 수월한가. 천만의 말씀. 굽이굽이 진흙 구덩이, 드러누운 나무등걸, 왕뿌리,잔뿌리 엉클어진 나무와 가지들이 하이커들을 잡아 먹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 통나무다리>



 숲길(롱 레그 힐)에 들면서  200 개 계단을 염려한다. 그러나 의외로 쉽다. 위험한 구간에 계단을 설치해 위험요소를 극소화했다는 얘기니까. 참 불친절한 사람들이 막되어 먹은 마음으로 만들어둔(만들었다기보다는 야생 그대로 방치하고선 트레일이라고 이름만 붙인 것) NCT다.

 어드벤처 경험하러 왔다가 욕 배워가는 트레일이다. 진흙창에 악령의 갈퀴손 같은 나무뿌리, 가지 우거진 숲에 험상궂은 바위 널브러진 해변을 윌드네스 어드벤처장이라고 순진한 사람을 꼬여 들이나? NCT오르가나이저(트레일 만든 단체)는 악당들일 게 뻔하다. 트레일 오픈 후 1100 명이 다녀갔다는데 생사람들을 이 지옥으로 보내놓고 그들은 커텐 뒤에 숨어 음흉한 웃음을 지었겠지. 파우스트의 영혼을 산 메피스토처럼. 군시렁거리며 뒤늦게 트레킹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초보 하이커들을 데려고 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 내린다.

 불평을 품으면 자연은 반드시 앙갚음을 한다. 햇살 넉넉히 들어 숨 돌릴 만한 숲에서 사방 2m 의 큰 진흙구덩이를 만난다. 아침에 만난 하이커들이 진흙탕 깊이가  허리춤을 넘는다던 말이 생각나 둘러갈 량으로 진흙 모서리를 딛는 순간, 발이 주욱  미끄러진다. 애써 균형을 잡으려고 해도 등 뒤의 배낭 때문에 휘청거림을 멈출 수가 없다. 아차차, 진흙구덩이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야말로 진흙탕에 키스를 한 셈. 배낭 무게 때문에 접힌 왼쪽 팔을 펼 수 없으니 딛고 일어설 수도 없다.“배낭, 배낭 좀.”다급하게 외치자 뒤따르던 메이가 배낭을 잡아 끌어준다. 팀원들이 놀래 괜찮냐고 묻는데, 아픈 건  관두고 얼굴 반쪽에 진흙이 묻어 배트 맨의 악당 투 페이스처럼 된 모습이 창피하기만 하다. 팀원들을  돌려 세워두고 상의만 갈아입은 채 다시 진흙탕 Go Go.

 한 번 진흙탕에 빠지고 나면 그것을 피해 갈 이유가 없다. 진흙 묻은 데 진흙 더께  앉은들 대순가. 점벙점벙 구덩이를 건너가는 나와 달리 팀원들의 걸음은 훨씬 더뎌진다. 질퍽질퍽한 늪이 모기의 서식처인 듯 숲은 그대로 헌혈차가 된다.

 수직의 밧줄 타기, 미끄러운 통나무다리 건너기, 진흙탕 넘기, 해안 절벽 오르기, 케이블 카 등을 다 경험하는 NCT는 야생의 철인 5 종 경기장인가? 아님 윌드네스 서바이벌장인가?  한 발도 편히  뗄 수 없고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그나마 가장 쉬운 게 케이블 카 타기. 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잠시 배낭 벗고 팔과 다리 쉬면서 호습게 강물 위를 날아간다. 그러나 그것도 공으로 즐기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지 한참이 되어도 나히티 강은 요정처럼 숲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한 삼십여 분 흘렀을까. 숲이 끝나고 벙벙한 강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일부는 등산화를 벗고 신발창 탈착 중인 난 등산화를 신은 채 텀벙. 작은 모래 언덕에 앉아 잠시 휴식. 들풀 팔랑거리는 건너에 난 숲길을 의혹의 눈으로 지켜본다.


<▲ 길 없는 길>


저 숲은 또 얼마나 고약한 구덩이를 품고 있을까. 나히티 강에 설치된 두 번째 케이블 카는 첫 번째에 비해 훨씬 여유롭게 탄다. 아주 세련된 포즈의 사진이 그걸 증명한다. 그리고 이후 나히티 캠프장까지 숲길. 얼마나 고슬고슬하고 평탄한지. 모진 고생 겪고 난 후 걷는 이 길은 타고르 자연학교에 난 명상의 길처럼 그윽하다. 이 길 다 끝나면 감동적인 철학시 한 편 토해질까나.

 나히티 캠프장을 지나면 해변길. 그 곳이 스키나 캠프장인 줄 알고 환호성 지르는 팀원에게 한 구비 너머 또 한 구비 남아 있다고 차마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나히티 스트레치를 가볍게 통과하고, 노랑 빨강 텐트쳐 진 해변을 살짝 엿보면서 갈등이 시작된다.하이 타이드 때 절대로 건너지 말라는 해변-곡괭이로 파놓은 듯 안쪽이 움푹 패인 100도 경사 진 흙벽에 10m 의 로프(로프 구간 중 가장 험하고 가장 긴 위험 구간)가 늘어져 있다.-을 비에 젖어1~2kg 더 무거워진 배낭을 지고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 하나, 안전하게 숲길 200~300m를 더 걸을까. 팀원들은 얼른 해변으로 내려가 고운 모래를 찰박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다 와서 위험을 초래할 순 없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 남았는데….

 해변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고 안전을 택한다. 그 바람에 700m의 숲길은 십자가의 길이 되어 버린다. 해묵은 고목숲을 각자의 고뇌를 지고 침묵 속에 고행하는. 마지막은 아주 잘 지은 문명의 계단과 사다리가 놓여있지만 지친 팀원 중 어느 누구도 감사해 하지 않는다.


<▲ 스키나 크릭의 선셋 >


 물길을 건너 굵은 통나무다리에 올라 곡예하듯 건너가 다시 나무둥치 아래를 통과하고서야 스키나 캠프장은 모습을 보인다. 크릭 건너편에 화장실과 게시판, 텐트가 있는 타운(?)이 있으나 건너가 볼 기운이 없어 물가에 주저 앉는다. 모처럼 해 떨어지기 전에 집을 짓고, 집에서 말려온 무청시래기된장국을 끓여 수고한 팀원에게 대접한다. 고향맛과 모닥불 덕분에 훈훈해진 몸으로 내일을 축원한다.
 부디 NCT 드라마의 대단원이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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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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