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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야생의 5 종 철인 경기장 NCT (5)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9-16 16:44

4. 저 달을 보자고 밤을 도와 숲을 누빈 게지

 빨간 우의, 파란 우의를 걸친 성현 씨 내외가 나란히 걸어온다. 등이 불룩한 한 쌍의 거북이다. 안개 속에 신혼의 기억들이 아련히 피어난다. 매쉬멜론처럼 살캉거리고 달콤하던 시절, 자줏빛 행복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

 추억의 백사장이 끝나고 몇 개의 쪽비치 골목을 들락거리면 바다 쪽으로 고개 내민 톰볼로(Tombolo)에 이른다. 어려운 구간이라 명기되어 있으니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한다. 작은 바위섬을 바라보며 걷는다. 또 백사장, 그리고 진짜 진짜 힘든 쪽비치가 연달아 있다.

넘어갈 방법이 없는 쪽비치에서 주저앉아 젖은 텐트와 침낭을 널고, 홍합 끓여 먹겠다며 부엌살림까지 차린 팀을 바라보며 헐렁한 나무숲을 곁눈질한다.

 성현 씨 내외와 길을 찾아 나선다. 리본 달린 숲을 헤치니 너구리나 드나듬 직한 옛 길의 흔적이 있다. 분명 쪽비치로 가는 남루한 길이다. 나뭇가지를 처내며 쪽비치에 이르러 다음 블러프 너머를 살핀다. 물이 찰랑거리고 들어 금방 물에 잠길 판이다. 구르고 넘어지며 팀이 쉬고 있는 비치로 돌아와 서둘러 짐을 꾸려 출발. 키 큰 배낭이 엉크러진 가지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 허나 문제는 다음 블러프.

 허연 모래 보이던 바닥에 물이 들어와 찰랑거린다. 바위는 발 디딜 틈을 주지 않고. 아차, 싶었지만 예까지 와서 물러설 순 없다. 로프를 꺼내 산턱 나무둥치에 묶어서 늘어뜨린다. 그리고 누군가 물로 들어가 건넌 후 손 잡을 데 없는 바위 건너에서 배낭과 팀을 건네주기로 한다.

땀에 절은 아들애가 샤워도 할 겸 바닷물에 들어가겠다 자원한다. 등산화를 벗고 물에 풍덩 들어간 아들이 배낭을 받아 건너편 바위턱에 얹어둔다. 그리고 한 사람씩 로프를 잡고 암벽을 넘는다. 그 조심스러움이 마치 가랑잎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형국이다.


<▲ 물목에 드는 아들 >



 바닷물이 들어치는 데에도 일정한 리듬이 있다. 한 번에 쏴아 밀려왔다가 차르륵 모래를 물고 밀려갔다 재채기하듯 다시 왔다가 뒷걸음친다. 심호흡을 하고 그 때를 틈타 건넌다. 팀이 안전하게 다 건너온 것을 본 아들애가 후둘후둘 떨기 시작한다. 얼음장 같은 바닷물이 달구어진 아들몸의 열기를 다 앗아간 모양이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아들애 몸을 닦아주고 자켓을 걸쳐준다.

서둘러 배낭을 메고 길을 재촉하는 아들애 등에 어미의 눈길이 꽂힌다. 재롱 부리던 내 아기가 저만치 자라 다른 사람의 든든한 방벽이 되어주는구나.

 새로운 모험을 치르고 나면 두려움도 한 꺼풀 벗는다. 이젠 쪽비치도 블러프도 우리 앞을 가로막지 못 한다. 그러나 빗겨갈 수 없는 건 짧아지는 햇발. 해는 이울고 바다물빛은 쇠약한 회청색이다. 요때쯤 파고드는 객수. 아, 이제 지친 몸을 눕히고 싶다. 편안한 집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그립다. 그러나 팀원 중 누구도 이런 탄식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멀찍이 흐린 녹색 머리가 보인다. 분명 케이프 서틀 헤드랜드이리라. 그러나 아득히 멀다. 저 너머에 오늘의 야영지가 있노라 감히 선언 못 한다. 지레 지칠까 봐.

 덜렁덜렁 숲길에 들었지만 발밑이 어두워 더이상 진행하기 어렵다. 만약 이번에도 쪽비치를 만난다면 그곳에서 야영을 해야겠지 마음 먹으며 내려선 곳은 어느 때보다 더 높은 암벽을 끼고 있는 작은 포켓비치. 캄캄한 절망이다. 그러나 식수가 오래 전에 떨어졌고 게다가 비치 목까지 모래가 젖어있어 만조 때 물이 텐트 턱에까지 차오를 게 틀림없다. 하는 수 없이 바위 타 넘을 방도를 살피는데 까마득한 낭떠러지. 길은 없다. 그 새 비치에서는 설왕설래 의논이 한창이다.


<▲ 지도를 살피고>


 지도를 살핀 아들애의 주장이다. “1.3km만 걸으면 케이프 서틸 캠프장입니다. 지도에 등고선이 나타나 있지 않으니 평지일 테고. 물이 없는 여기에서 야영을 하느니 한 40 분 더 걸어 목적지까지 가시죠. 헤드 랜턴 가지신 분 몇 분이세요?”일곱 중 여섯이 헤드랜턴을 꺼내 불을 밝힌다. 하지만 어둠에 싸인 숲길의 위험과 엉성한 지도를 믿지 못해 내가 머뭇거리자 아들애가 앞장을 선다. 하는 수 없이 ‘절대 안전’을 외치며 랜턴 갖지 못한 분의 발치를 비추면서 조심스레 진행한다.

 쪽비치 내려가는 길목을 세 번 외면하고 곧장 가는 숲길은 다행히 고슬고슬한 동네 고샅길이다. 걸음이 빨라진 아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컴컴한 곳에서 곰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랜턴 없는 분을 메이에게 맡기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뒤를 따른다. 아들의 대답이 산간을 울린다. 그 힘찬 목소리에 밤길이 환해진다. 세상 어느 것에서 이리 훈훈하고 밝은 기운이 돋아날까? 아침을 밝히는 태양보다도 더 튼실하고 훈훈한 아들의 대답을 등대 삼아 밤길을 날아간다.


<▲ 날은 저물어도 길은 끝나지 않고 >

 헐렁해진 나무 대궁이에 별이 대롱대롱 매달린다. “별바다네요.” 소리치고 난 후 한 5분이나 되었을까. 랜턴 불빛에 금속 물체가 반사된다. 뭐지? 푸드 캐취(Food Cache, 곰의 습격을 피해 음식을 보관하는 캐비넷)다. 야, 드디어 캠프장이다. 해변으로 튕기듯 나오니 별빛, 달빛 가득 부서져 내리는 백사장. 그러나 더 반가운 것은 콸콸 물 흐르는 소리.

 정수한 물을 들고 다시 숲길에 들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여기 물도 있고 푸드 캐취도 있어요. 케이프 서틀 캠프장이 바로 여기네요.”이보다 더 큰 웅변이 있을까? 야영객의 잠을 깨울 거라는 생각도 못 한 채 함성을 지른다. 다음 날, 아침에 만난 서양 하이커가 “너희 어젯밤 몇 시에 도착했니?”라는 질문에 “11시 반.”이라고 대답하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아이코, 간밤 내가 저 사람들 곤한 잠을 방해했구나.

 텐트 칠 엄두도 못 내고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쉬다가 문득 쳐다본 하늘. 아, 저 달을 보자고 밤을 도와 해변과 숲길을 누볐나 보다.

 암청색 하늘에 검은 줄무늬 죽죽 그어진 구름발을 제끼고 들어서는 주홍빛 상어 등지느러미 같은 달님. 무엇이 거대한 상어의 몸통을 삼켜버리고 세모꼴의 등지느러미만 남겨 둔 걸까? 별들이 회청색 바다에 잇닿아 있는 하늘 한 켠에  견장처럼 빛나고 있다.

 밤의 무도회에 도취한 팀원들은 저녁밥도 거른 채 텐트에 들어 몽환의 밤을 뒤척인다.(아무도 이 날 밤 사진을 찍지 못했다. 너무 피곤해서…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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