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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야생의 5 종 철인 경기장 NCT (3)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9-02 17:10

2.가지 않은 길은 늘 그립다
싱싱한 파도소리에 일어나니 바다를 닮은 하늘이 감청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서녘을 바라보면 아침놀이 아쉽고 동녘을 바라보며 저녁놀을 그리워한다.

 어제의 긴 숲길에 질린 벗이 해변길로 가자 떼를 쓴다. 물 뜨러 갔다가 들여다본 숲속길의 험난함이 떠올라 그럼1.5km만 해변을 걷다가 본 트레일로 돌아갑시다. 하고 물러선 게 병통이었다.

 사람은 늘 가보지 못한 길을 동경한다. 해변을 가면서 숲길은 좀 낫지 않을까, 답답한 숲길을 갈 때엔 해변길로 가면 확 트인 바다 풍경이 멋질 텐데 하며 못내 아쉬워한다. 갈래길에서 숱한 고민 끝에 최상의 선택을 하고서도 그 길이 조금만 거칠면 금세 버려둔 길을 그리워한다. NCT 첫날의 트레킹도  후회와 아쉬움과 미련의 길이었다.

 첫 번째 헤드랜드를 돌아들자 레게머리처럼 칭칭 늘어뜨린 부표군이 있다. 숲길로 드는 표지인 성싶어 인근 숲을 뒤적여 보았지만 길목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바다 쪽으로 내민 바위 절벽을 넘는다.

처음엔 생전 안 해본 어드벤처에 신이 났다. 하지만 자갈길, 해초무덤길을 끝없이 걸어 다시 만나는 바위절벽. 11시가 넘으면서 물이 들기 시작한 해안 암벽 아래 시퍼렇게 아우성치는 파도는 기세등등한 전사의 기세로 집채 짊어진 달팽이들을 위협한다.

 이때 우리의 구세주가 활약을 시작한다. 성현 씨가 날렵한 몸으로 암초에 올라가 길을 살핀다. 혹여 암벽 뒤 비밀 통로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발 디딜 만한 틈이 있는 바위나 물때 앉지 않은 안전한 루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 그의 정찰 덕분에 무사히 세 번째 블러프를 넘어간다. 휴, 어드벤처는 다 끝난 걸까?

혼잣생각에 빠져 터덕거리고 걷는데 자갈길에 누군가 걸어간 흔적이 있다. 아하, 그렇담 우리도 갈 수 있다.

 길이란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첫 발자국을 남기고 그것을 따라 무수한 발자국이 덮이면서 길이 되는 법. 첫발을 내디딜 만큼 개척정신은 없지만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을 따라갈 만한 도전정신은 있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에 시름을 거둔다.

 해변길을 계속 가려면 또 하나의 복병이 있다. 밀물. 분명 저녁 나절에 만조가 된다 하였으나 웬일인지 정오 즈음부터 물이 찰싹찰싹 밀려든다. 해안 암벽타기는 또 한 차례 위기를 맞는다.

 아침에 길 나서서 처음 만나는 하이커를 보며 “앗, 피플, 피플이다.”평소에 안 쓰던 구식 영어까지 튀어나올 만큼 반가웠지만 그가 일러준 말,“로라 크릭 가려면 또 한 번 블러프를 넘어야 하는데 꽤나 힘들 걸.”을 듣고 심난해진다. 지금껏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더 어렵다고? 산 너머 태산이구나.

 그래도 바다는 평온하다. 모래는 황금알처럼 반짝이고. 에라, 어차피 예정대로 18km 가기는 틀렸고, 가다 힘 빠지면 새처럼 아무 데나 둥지 틀지. 경치 좋은 데서  쉬었다나 갑시다. 올 라잇! 모두 등딱지를 벗고 백사장에 벌렁 드러 눕는다. 배낭 키가 커서 한 번도 우러러보지 못했던 하늘은 줄무늬진 구름으로 은청색 발을 드리우고 있다. 바람이 달디 달다.

 배낭을 벗을 때는 날아갈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지려면 쉬는 사이 누군가 바윗돌을 몰래 집어 넣은 것처럼 무겁다. 주저앉아서 배낭끈에 양팔을 끼우다 말고 벌렁 나자빠진다. 이어서 영주 씨도 훌러덩 넘어지고. 마치 두 마리 거북이 뒤집혀 버둥대는 꼴이다. 웃음소리 울렁울렁 구름처럼 퍼진다.

 로라 크릭 전 마지막 블러프다. 위험하다는 구간.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와 정면으로 대결을 한다. 태초부터 그 자세 그대로 침묵을 지켜온 그의 앞에 왜소한 내가 서있다. 그러나 결코 초라하지 않다.

그는 침묵으로 세월을 일관해 왔지만 인간은 때로는 파도처럼 철썩이기도 하고 바람처럼 광포하게 불어치기도 하며 대자연에 적응하고 거기에 맞춰 변화해 왔기에 오늘 여기 그의 앞에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니 이기고 넘으리라. 그리고 저 넓은 태평양을 내 것으로 품으리라.

 블러프는 왜 쌍으로 나타나는 걸까? 물 빠지는 사이 용케 큰 바위 포개진 틈을 빠져 나와 안도의 한숨을 짓는데 문득 가로막는 바윗덩어리. 높이도 너비도 짐작할 수가 없다.

이 정도 되면 넘어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한다. 그러나 지체할 수도 없다. 허연 머릿단 풀어헤친 파도가 발밑을 핥고 있어서. 비상대책이 필요한 때다. 하는 수 없이 배낭을 벗고 하나씩 바위를 타고 내려가 다시 배낭을 받아간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서둘렀다가는 큰 부상을 입을 터라 재촉도 못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건넌다.

 드디어 편안한 백사장, 멀리 텐트 한 동이 보인다. 야생을 찾아왔으면서도 사람을 보면 왜 이리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반가운지. 텐트를 향해 가는 걸음이  나비처럼 가볍다. 구름이 그 뒤를 좇는다.

가슴 깊숙이 뻐근하게 밀려오는 기쁨과 대견함. 위험이 가신 뒤에야 팀원에게 전원 안전하게 위기를 잘 넘긴 점,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어려움을 잘 견뎌준 점, 길도 아닌 길로 안내한 리더를 탓하지 않고 잘 따라준 점을 치하한다. 예비산행 때 ‘환상적인 팀’이 될 거라는 감이 왔는데 역시. “Korean NCT팀 만세!” 만세를 부르기엔 이른가? 역시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었다.

 로라 크릭(Laura Creek, 22km지점)에 들러 물과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에 오른다. 조금이라도 더 가두어야 내일 길이 짧아지고 그래야 예정된 5 박 6 일의 트레킹을 마칠 수 있기에. 그러나 바다 쪽에 혀를 내밀고 있는 녹색 헤드랜드는 아득하기만 하다.

 모래알, 자갈돌을 헤아리며 다가간 크레스튼슨 코스트(Christensen Coast)에는 백사장이 없다. 텐트 치기 좋은 모랫결을 찾아 나섰다가 검은 바위 널브러진 포인트만 보고 돌아오는 길인데, 왼쪽 발이 웬지 무겁다. 들여다 보니 등산화 밑창이 입을 떡 벌리고 있다. 순간 트레킹을 그만 두고 돌아가야 하나? 나만 믿고 따라온 팀은 어쩌고? 밤내 어둑시니처럼 휘감아드는 갈등과 고민에 밤을  하얗게 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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