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초등학생이 되는 칠순 아들

늘산 박병준 pcpak@shaw.ca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3-25 16:18

기고자: 늘산 박병준
아직 밖이 어두워 잠자리에 있는데 전화가 ‘때르릉’ 울린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사람은 어머님이시다. 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음성이 전선을 타고 건너온다.

"눈이 많이 오고 있다. 꼼짝하지 말고 집에 있거라." 하신다.

“예”하고 대답했는데, 이때 70넘은 아들은 초등학생이 된다.

어머니는 지금 양로원에 가 계신다.

집에 계실 때, 어머님 방은 2층에 있었다. 물 한 잔을 들고 오를 힘이 없어 컵을 계단 한 단 한 단에 올려놓으시며 기어 올라가기도 하셨다. 그 모습을 뵙는 게 가슴 아프고, 아래층에 방을 만들 형편도 안 되어 죄송하고 퍽 난감했다.

또 우리 내외가 외출할 일이 있으면 문을 잠가야 할지 그냥 열어둔 채 가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열어두고 가면 귀가 어두워 누가 들어와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혹 도둑이 힘없는 노인네를 밀친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할 판이다. 만약 대문을 잠그고 나간다면 불의의 사고가 났을 때 구조대가 문을 부수어야 될 일이었다.

그러던 중 어머님이 양로원으로 가시겠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한국 음식을 제공하는 아메니다 양로원에 친구분들이 같이 지내자고 하는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는 듯했다. 혼자 계시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어지럼증 때문에 쓰러져 목숨을 잃게 되면 맏아들을 불효자로 만들고 만다는 염려 때문인 거다.



<▲ 박병준씨(오른쪽)과 그의 어머니.>

일본에서 공부한 신여성이 두매 산골 삼대독자와 혼인하여 맏아들을 낳으셨다. 일제의 압박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라는 의미로 아명을 ‘모세’라고 부르며 나에게 온갖 기대를 걸고 한세상을 살아오신 어머님이시다.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한 세기의 삶이 그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의 죽음보다 아들의 안위를 더 걱정하신다. 그 마지막 소원이 이렇게 단순하고 간절해지는 시점에 이르렀다.


양로원 얘기가 나왔을 때 가장 반대를 한 것은 아내였다. 아흔이 넘은 어머님의 여생이 얼마나 남았다고 낯선 곳에 보내느냐, 어머님 떠나시는 날까지 모시겠다는 아내의 고집을 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리가 집을 비우는 동안 라면이나 아니면 찬밥을 물에 말아 대충 끼니를 때우기 일쑤이신데 그곳에 가시면 일단 하루 세 끼니 식사를 제대로 드실 수 있으니 그게 효도가 아니겠느냐, 동생들과 조카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를 하였으니 그만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설득을 했다. 


어머님과 같이 양로원 답사를 하고 돌아온 후 아내가 고집을 꺾었다. 옛날 같으면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아랫목에 않아 상노인 대접을 받을 70넘은 아내가 90넘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늘 웃는 얼굴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새삼스러워 진다.


어머님을 양로원에 보낸다고 생각하니 우리 세 식구가 오손도손 마주 앉아 마시던 커피 시간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이 제일 아쉬웠다. 그리고 뒤뜰 농사는 어찌하나. 씨 뿌리는 시기와 씨앗관리는 늘 어머님이 해 오시던 일이었는데... 


텅 빈 어머님 방은 그 다정하던 음성과 낮잠 주무시던 모습이 남아 .있는 듯 나도 모르게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도 어머님 안 계신 빈자리에 칠순 아들이 서성인다.


<▲ 박병준씨(오른쪽)과 그의 어머니.>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세월이 가면 2023.01.23 (월)
세월이 간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오늘 사는 게 바빠지난 일을 가볍게 잊을 수 있고새로운 삶에 부대끼다 보면지나온 아픔도 비껴 가기 마련이니세월 가는 건 그리 나쁘지도 않다나이가 든다는 건 참 멋져 보인다오늘 많이 늙어 보여도추하게 보인다 욕하지 않고눈물 조금 보여도찬바람 탓하기 좋은 나이이니나이 먹는 게 그리 서럽지도 않다세월이 가니죽을 듯한 내 사랑 바비도텅 빈 가슴만 두고 훌쩍 떠나가기도 하고나이가 드니애 간장...
나영표
 국립신라박물관에 가면 관람자의 눈을 환히 밝혀주는 신라인의 미소가 있다. 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이다. 기왓장에 그려진 얼굴 한쪽이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초승달처럼 웃고 있다. 이 얼굴무늬수막새는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름 11.5cm이며 경주 영묘사 터(靈廟寺址)에서 출토되었다.    얼굴무늬수막새는 다듬거나 꾸미지 않은 맨 얼굴이다. 서민들의 진솔하고 담백한 마음의 표현, 가식 없는 무욕의...
정목일
겨울 산책 2023.01.16 (월)
뜨락에 노니는 햇살도 그려내고구름이 드리운 달님도 그려대니떠가는 세월에 눈감은 신선이네붓 끝에 고향 뜰 풍월을 달아매니남쪽 창가에 기대선 도연명인가환한 달과 마주 앉은 이백이려나차오른 맘 울림에 거니는 호숫가 제 멋 낸 울음소리 바람에 실리어앞서간 발자국에 켜켜이 쌓이네
우호태
 신세계 교향곡은 체코 출신 드보르작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작곡한 곡으로 이민자들의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교향곡의 도입 부분은 약간 공포스러운 연주가 나오고, 중반부에는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운율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나타내며, 끝부분은 승리를 다루는 듯 장엄한 연주로 마치는 곡이다.  이와 같이 이민은 과거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모두가 신세계를 만나 예상치 못한 일로 당황하며 시작되는...
김유훈
새해를 맞으며 2023.01.09 (월)
묵은 달력을 내려놓습니다내 마음처럼 무게가 천근이어요장마다 빼곡한 사연들을 되새겨보니복덩어리가 수북합니다가진 게 없다고 빈손이라고 하늘에 떼쓰던 두 손이 부끄러워집니다가붓한 새 달력을 그 자리에 둡니다내 마음도 새 달력 같습니다오늘또 오늘 쌓일 복 더미 생각에손등에 푸른 핏줄이 더 불거집니다.
임현숙
다시 수필이다 2023.01.09 (월)
  유리병에 개운죽竹을 기르고 있다. 물만 먹고도 싱싱한 잎과 줄기를 내는 모습이 여간 기특하지 않다. 줄기 하나를 집어 들면 나머지 줄기들도 따라 나선다. 서로의 뿌리 속에 뿌리를 내린 채 단단히 엉겨 있기 때문이다.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은 묵은 뿌리 위에서 하얀 어린 뿌리들이 걸음마를 익히고 있고, 중간에 가부좌를 튼 뿌리들은 어느 쪽으로 줄기를 낼 것인지 긴 생각에 잠겨있다. 어린 뿌리에 자꾸 마음이 간다. 수필을 쓰면서 어느...
정성화
인생의 변곡점에 힌지를 달아 놓고슬며시 겨울 산을 향하여 문을 열면낯 익은 상흔 하나가 폭설을 짜고 있다어딘가 엄동 속에 울리는 나무들의숨 고름 옹이처럼 힘들어 보이지만목 향이 첨가하는 맛 그 매력에 빠진다또다시 재 너머로 난장을 치는 바람해 오름 달 실속 없는 분주함 홰를 쳐도그렇게 스무 해 성상 눈물 꽃을 피웠다이방인 그에게서 조국은 무엇인가수 없이 그리워한 로키 태평양 넘어무른 곳 말려서 까지 피워내는 눈물 꽃
이상목
  마지막 한 장 달랑 남은 2022년 달력은  더 이상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2023년 새 달력에 자리를 내 주어야만 한다. 월말이면 어김없이 한 장씩 넘기다가 오늘은 12번째 막장을 내린다. 새 달력을 걸어 놓고 이제 막 내려놓은 낡은 한해를 한 장씩 훑어 본다. 크고 작은 일들이 어제 일처럼 펼쳐진다.  내 산책 견이 강원도 강릉에서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여 마중 나갔던  일, 형제들의 방문, 아이들과 여기저기 여행했던...
김춘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