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첫 날에
-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날에
또닥또닥 빗줄기가 대지를 두들긴다
남루한 몸을
굽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망설임과
또 어둠을 헤쳐야 하는
두려움이 배어있다
슬픔이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며
좌절이 새로운 희망의 싹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른 채
걸어온 미망의 길
타닥타닥 빗줄기가 새벽을 깨운다
긴 밤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야경꾼의 얕은 기침소리
저 짙은 절망 끝에는 여명이
혼란의 뒤에는 정돈이
기다리고 있겠지
아무도 손 내밀지 않은
절대 고독의 문을
옹이 박힌 손으로 또옥또옥 두드린다
<시작 메모>
악의 꽃이 성급하게 달리던 발목을 거머잡는다. 어쩔 것인가, 쉬어 가야지.
살다 보면 맑은 하늘도, 오늘처럼 울음을 쏟아내는 하늘도 만난다.
야경꾼의 순라 도는 소리, 맹인의 지팡이 소리 같은 빗소리가 어두움을 가른다.
슬픔의 바다에 떨어지는 유성 같은 기쁨과 아득한 불행의 폭포로 추락하다가 문득 비상하는 행복의 포말, 긴 인고의 터널 끝에 만날 평화의 작은 촛불을 향해 옹이 박힌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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