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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다···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

권보라 kwonbr@hanaf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26-06-17 16:42

권과장의 생활 속 금융 클리닉

2026년 6월 10일, 캐나다 중앙은행은 정책기준금리를 연 2.2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다섯 차례 연속 동결 결정으로 언뜻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뉴스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았으니 경제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금리 동결은 때로 가장 어렵고 복잡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현재 캐나다 경제는 안개가 짙게 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운전자는 속도를 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갑자기 멈추자니 뒤차와의 추돌이 걱정됩니다. 중앙은행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춰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싶지만,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은 물가를 생각하면 브레이크를 쉽게 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지금의 캐나다 경제는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동시에 밟은 채 조심스럽게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이번 다섯 차례 연속 금리 동결은 중앙은행의 우유부단함 때문이 아닙니다. 물가와 경기라는 두 가지 상반된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고심의 결과입니다.


최근 캐나다 경제는 분명 예전만큼 힘이 없습니다. 소비자들은 높은 생활비 부담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고, 기업들도 투자에 신중해지고 있습니다. 주택시장 역시 과거와 같은 활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6년 1분기 캐나다 GDP 성장률은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으며, 소매 판매 지수도 수개월째 정체된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면 될까요?


문제는 물가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지나 어느 정도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은 국제유가를 자극하고 있으며, 미국의 관세 정책과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도 여전히 물가 상승의 불씨로 남아 있습니다. 경기는 약해지는데 물가는 쉽게 내려오지 않는 상황,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전조로 바라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보통 경제가 침체되면 소비가 줄고 물가 상승 압력도 완화됩니다. 반대로 경제가 과열되면 물가가 오르더라도 기업 실적과 고용은 개선되게 마련이죠. 그래서 일반적인 경기침체라면 해결 방법이 비교적 명확합니다. 금리를 낮추고 소비와 투자를 늘리면 됩니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금리를 올려 과열된 경제를 식히면 됩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다릅니다. 경기는 좋지 않은데 물가는 높은 사태가 지속되죠. 경기가 나쁘니 금리를 내리고 싶지만 물가가 불안해 내릴 수 없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싶지만 경기가 이미 약해 추가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부작용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이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습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무려 20%까지 올렸고, 그 충격으로 실업률이 급등하는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지금도 그 시절을 경고 사례로 꺼내 드는 이유입니다.


물론 현재 캐나다가 당시 수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업률이 급등한 상황도 아니고, 물가 역시 과거 고점 수준은 아닙니다. 다만 중앙은행이 금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제가 쉽지 않은 국면에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경제 지표보다 먼저 변화가 나타나는 곳은 우리의 일상입니다. 요즘 많은 가정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요즘 돈 쓰는 사람도 없는 거 같은데 물가는 안 내려가네”

“외식비는 물론이고 그로서리 가격이 너무 비싸.”

“장사는 안되는데 렌트비랑 원가는 그대로네. ”

“월급은 안 오르는데 생활비는 왜 계속 오르는 거야?.”


특히 캐나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캐나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80%를 웃돌며, 이는 G7 국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가처분 소득(disposable income)이란 세금과 각종 공과금, 모기지 상환 등을 지출한 뒤 실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을 일컫는데요,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 당연히 실제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중앙은행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번 금리 동결은 중앙은행이 방향을 잃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주시하는 변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물가가 추가로 안정되는지 여부입니다. 목표치인 2%에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에너지 가격과 서비스 물가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둘째, 고용시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입니다. 지금 당장 실업률이 급증하지는 않았지만,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들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고용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은 빠르게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미국 경제와 무역 환경의 변화입니다. 캐나다 수출의 약 75%가 미국으로 향하는 만큼,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나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결정은 캐나다 중앙은행의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번 다섯 번째 연속 금리 동결은 단순히 “변화 없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캐나다 경제가 성장 둔화와 물가 안정이라는 두 과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안개가 짙게 낀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는 무작정 속도를 높일 수도,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중앙은행 역시 지금은 속도를 조절하는 것보다 균형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금리 동결은 경제가 안정됐다는 의미가 아닌, 캐나다 경제가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어야 합니다. 앞으로 몇 달간 발표되는 물가 지수와 고용 지표가 그 방향을 가르는 결정적 단서가 될 것입니다.


(글 : 권보라 과장 / 캐나다 하나은행 코퀴틀람 지점 / kwonbr@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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