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흥남철수 작전, 그배에 다시 오르며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5-06-26 13:27

캐나다에서 지인이 샌디에고로 놀러왔다.  오랜만에 만나서 호텔 인근의 씨포트 빌리지(Seaport Village)에 있는 미드웨이 항공모함 구경을 갔다.  2차대전때 일본해군과의 격전에서 일본해군을 궤멸시키며 태평양 주도권을 잡았던 미드웨이 전투의 주력 항공모함이다.  그후 몇십년을 더 현역으로 태평양을 누비다가 은퇴해 샌디에고 항구에 정박했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돼 일반인이 항공모함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전쟁사의 생생한 체험현장을 보고 배울 수 있다.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보며 지인에게 꼭 하려던 말이 있었다 – 다음에는 LA의  빅토리호를 보러 오세요.
SS 레인 빅토리호 – 흥남철수 작전에서 군수물자를 모두 던져버리고 한국인 피난민1만4천명을 태우고 거제도로 무사히 도착했던,  당시   625전쟁사의 꽃과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  
영화 ‘국제시장’에서 그모습을 재현하며 많은 실향민들을 울리게 했던 그 배(의외로 그배를 탔던 피난민들, 혹은 그 자손들을  ‘국제시장’ 영화후에 심심치 않게 만나 여러번 놀란 적이 있다)가 LA 남쪽바다 항구 샌페드로에 정박하고 있다.  1962년 전쟁 유공 선박으로 지정돼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민한인들의 메카인 로스엔젤레스의 샌페드로 항구에 영원히 머물게 된 것이다.  전쟁박물관으로  재단장돼 로스엔젤레스 관광명소의 하나가 됐는데  최근 ‘국제시장’ 영화와 함께  한인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는 625  한국전쟁  65주년.   
해마다  6월25일 전후해서  한국과 미국의  625 참전용사들이 이 배를 방문해 기념행사를 가지고 추억을 나눈다.  올해는 ‘국제시장’ 영화후 폭증한 한인들의 관심과 참여로 다양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번 주말에 이틀간 이어질 행사중에는 피난민들이 밧줄을 타고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는 흥남철수 작전의  애타는 모습을 재현하는 순서도 있다.  독도 화백으로 유명한 권용섭 화가가 선상에서 당시 흥남철수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한인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한국 전통무용단이 춤사래를 선보인다.  태권도팀들의 화려한 무술묘기도 펼쳐진다.   흥남철수 작전 당시 피난민들이 빽빽이 들어찼던 빅토리호 맨 아래층도 공개된다. 물도 화장실도, 불빛도 없는 이 배 지하실에서 피난민들은 한사람의 불상사도 없이 거제도에 도착했고 자유의 땅 남한을 밟았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영화 ‘국제시장’ 상영.  하루 두차례 상영되며 일반인 뿐만아니라 당시 참전용사들이 감회 속에 영화를 감상한다.  팝콘 대신 한국산 강냉이가 제공된다. 벌써 미군 참전용사  115명이  이 행사참여를 예약했다.  
625 전쟁이란?  이념전쟁의 모습으로 보지말고 그냥 참전용사들의 말만 들어본다.  노병들이625 한국전쟁을 기억하며 한 말들이다.  
두려움은 전장터의 가장 무서운 비밀이었다.  그것은 전염성이 있어,  용감한 자, 소심한 자 모두를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파괴했다 – 데이빗 핼버스탬
나는 그때 너무 어렸다 – 돈 드 릴로
내 옆에서 포탄이 터지며 동료의 머리가 날라갔다 – 노먼 갓프리
우리는 북한 도시에 대한 폭격을 중단했다. 더이상 땅위에 서있는 건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리아는 20세기에 가장 과도한  폭력으로 인간이 만든 지옥이었다 – 레그 휘트테이커
그 끔직하게 추운 날 밤, 세명의 우리 부상병들은 얼어죽었다. 지프차들도 모두 얼어서 멈췄다 – 패트 프랭크
너무 추워 잠이 들고 적이 오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많이 죽었다 – 로버트 브라운
나는 한국전쟁에 차출됐다.  2차대전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
중공군은 우리 오른쪽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 왼쪽에도,  우리 앞쪽에도, 우리 뒷쪽에도 있었다 – 체스티 풀러, 장진호 전투 생존자.  
코리안 참전베테란 협회(KWVA)는 미국에  46만 7천여명의 한국전 참전 베테란이 등록돼 있다고  한다.  다시 이념으로 보지말고 숫자로만 이전쟁을 돌아본다.
한국전쟁에서 전투중 사망한 미군은  33,000여명,  비전투중 사망 미군은 20,600여명,  합계  5만 3천여명,   실종 미군은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만3천여명이다.   전사자와 실종자를 합치면  한국전쟁중 미군전사자는 7만명.  이라크전 미군 희생자 4,800여명, 아프간전 미군희생자 2,200여명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미군이 한국이라는 이름모를 나라에 와서 죽었는지…
한국인의 희생의 끔직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숫자로 본 625는 한민족이  3년동안 온 산천에서  참담한  죽음을 치른 스펙타클한 역사의 흐름이었다.  미국에서는 흔히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베트남전등에 가리워져) 이라고 평하지만  최근 미군 참전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기억해야 할 전쟁’으로 다시 평가되고 있다.  80대의 참전군인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면서  이들이 가진 기록들을  모아가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들 미군 베테랑들은 말한다.  “우리들 모두는 한국에 우리 일부를 주었어요.  그리고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한국에 주었어요  All gave some; and some gave all.”
로스엔젤레스 샌페드로 항구  SS 레인 빅토리호에서 이번 주말 펼쳐진 ‘흥남철수 작전’의 재현은 그래서 뜻깊다.   로스엔젤레스에 오시면  ‘SS 레인 빅토리호’를 찾으세요…
LA 통신 2015년 6월27일 김인종



김인종 밴쿠버조선일보 LA통신원
칼럼니스트:김인종| Email:vine777@gmail.com
  • 라디오 서울, KTAN 보도국장 역임
  • 한국일보 LA미주본사
  • 서울대 농생대 농업교육과 대학원 졸업
  • 서울대 농생대 졸업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