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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시대라는데, 어떻게 죽어야 하나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5-02-05 17:07

한인 마씨.  1929년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식민지시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한국 현대사의 험한 꼴은 다 겪었다. 열심히 살면서  예쁜 부인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얻었다. 행복한 결혼생활과 잘자라 준 아들.  아들 희창씨는 공부도 잘해 미국 시카고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외아들 학업 뒷바라지도 할 겸,  또 아들이 좋다는 미국에서도 살아볼 겸 마씨부부는 80년대에  미국으로 왔다.

마씨부부는 미국에 살기로 결심하고 투지이민을 신청했다.  서류가 잘못되면서 투자이민을 통한 영주권취득에 실패했다.   로스엔젤레스로 이사왔다.  마씨부부와 외아들 희창씨는 청소업을 시작했다.   잘나가던  청소업이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마씨부부는 불법체류자 신분에 가난이 찾아오고,  아들부부의 다툼도 심해졌다.  아들부부는 이혼을 했고 며느리는 딸 둘을 데리고 타주로 이사를 가버렸다.

마씨부부는 나이가 80을 넘기면서 여러 병들이 시작됐다.  그러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서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마씨에게는 치매증세도 시작됐다.  마씨부부와 외아들이 함께 하던 청소업도 더이상 계속될 수 없었다.  생활고는 점점 심해졌다.  그럴수록  마씨 가족은 더욱 교회에 매달리며 봉사도 열심히 했다.  마씨 아들 희창씨는 불법 택시영업이라도 해야겠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  택시영업도 잠깐, 단속에 걸려 차를 빼앗겼다. 차를 찾으려면  2천7백달러가 필요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한달  1,200여 달러의 아파트 렌트비도 몇달씩 밀렸다. 아들 희창씨는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아들 희창씨의 고생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들친구 강씨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친구는 9천달러를 빌려줬다.   몇달 밀린 렌트비,  약값등으로 빌린 돈은 금새 사라졌다.  

아버지 마씨의 치매병세는 악화되고 세식구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들 희창씨는 더이상 헤쳐나갈 구멍이 없어졌다. 절망중에 있는  아들 희창씨를   어머니가  불렀다.  우리가 먼저 가마. 너라도 혼자 잘 살아야지. 안돼요, 그러려면 같이 가요.  모자는 부둥켜 안고 울었다.  며칠후  어머니는 아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자네 돈을 못갚을 것 같네.  행복하게 잘 살게… 세식구가 한방에 모였다.  아들은 처방받은 수면제 모은 것을 가져왔다. 어머니가 먼저 남편 마씨에게 약을 타주었고, 곧이어 어머니가 약을 먹었다.  눈물로 이별을 하며 부모가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잠들어 가는 것을 확인한  아들 희창씨는 옆방으로 갔다.  그의 차례였다.  54살의 인생이 마감하는 날이었다.

아파트 매니저는 마씨 유니트에서 며칠동안 인적이 끊기더니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심한 악취가 나는 것을 수상히 여기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아파트 안에서  86살 마씨와 부인, 그리고 외아들 희창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마씨 가족의 지인들은 놀랐다.  그럴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열심히 살며 신앙생활하는 선한 사람들인데… LA 코리아 타운에서 지난주 일어난 일이다.

어떤 목사가  말했다 -  ‘자살한 분들의 장례식을 집례할 때가 제일 힘듭니다.’  자살을 금하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범했기 때문이다.  살 힘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마씨가족에게 성경을 들이대며 그렇게 말한다.   
2014년 6월,  29살의 브리타니 메이나드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지역에서  오레곤주로 이사했다.  오레곤주에는 개인이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브리타니 메이나드는  캘리포니아에서  뇌암(brain cancer) 판정을 받았고 수술도 실패로 끝났다.  그녀의 삶은 몇개월 남지 않았다.  브리타니가 의사에게 물었다.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증세를 그대로 말해주세요.  당신은 극심한 두통, 발작,  시력 상실, 그리고 급격한 성격변화가 올 것이며 결국에는 신체마비와 함께 뇌기능이 정지될 겁니다.  의사는 이같이 솔직히 얘기해 주었다.  브리타니는  그 공포의 나날을 맞지 않기로 결심하고 오레곤주  포들랜드로  부모와 함께 떠난 것이다.  그리고 존엄사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쳤다.   5개월후  11월1일,  브리타니는 마지막 발작을 경험한 후 유튜브로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미소를  지으며  ‘죽음 보조 약물(aid-in-dying-medication)’을 삼켰다.  그녀는  30분후에  영원히 잠들었다.

캘리포니아 주상원 민주당   지도자 빌 모닝의원은  이번주  ‘인생의 마지막 선택법(The End-of-Life Options Act)’을 발의했다.  브리타니 메이나드의  선택을 캘리포니아에서도 할 수 있도록 오레곤 주법을 모델로 한 것이다.  미국내 전국 13개주에서 존엄한 죽음 선택의 권리법이 현재 추진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는 74%의  미국인,  54%의 미국의료인들이  ‘사망 지원aid in dying’을  의료 행위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 당신이 사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었다.  Today when you live in is tomorrow when the dead yesterday long for dearly.’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의 말이다.  이를 의역해서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이었다’로 회자된다.

그러나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원하던 내일,  그날을  포기하는 사람들 – 마씨가족, 브리타니…
많은 사람들이 백세시대라며  노년의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로   핑크빛 설계를 계속한다.
어떤 이들에게  그 백년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연장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독실한  기독교인지만  당시 교회와 치열한  논쟁을 벌인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인지도 모르는 절망의 상태’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적고 있다.   마씨 가족은  최소한  ‘절망’이 어떤 것인지는 깨달은 사람들이다.   
2015년 2월7일  LA통신  김인종


김인종 밴쿠버조선일보 LA통신원
칼럼니스트:김인종| Email:vine777@gmail.com
  • 라디오 서울, KTAN 보도국장 역임
  • 한국일보 LA미주본사
  • 서울대 농생대 농업교육과 대학원 졸업
  • 서울대 농생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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