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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여섯 번째 이야기 – 보면 안다 (I know it when I see it)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7-16 01:53

1992년에 제작된 데미지 (Damage) 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줄리엣 비노쉬와 제러미 아이언스가 출연한 이 영화는 예비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금기된 사랑을 그려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요.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거장 루이 말 (Louis Malle) 입니다. 


루이 말 감독은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프랑스의 영화운동 누벨바그 (Nouvelle Vague) 를 이끈 대표적인 감독 중의 한 명으로 심미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주제의 영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특히 그의 1958년 작 연인들 (Les Amants) 은 미국에서 외설논란과 함께 유명한 재판의 발단이 되었지요. 


연인들은 루이 말 감독이 25세에 만든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부유층 유부녀가 낯선 청년에 반해 가정을 버린다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한, 훗날 누벨바그의 여신이라 불린 잔느 모로 (Jeanne Moreau) 는 이 작품에서 과감한 상반신 노출과 농밀한 연기로 찬사를 받았지요. 


연인들은 흥행 면으로도 큰 성공을 거둬 프랑스에서만 25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을 정도로 예술성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너무 파격적인 주제와 표현방식 때문이었을까요? 이 영화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외설이라는 이유로 상영금지처분을 받았습니다. 


1959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인근의 한 극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니코 제이코벨리스 (Nico Jacobellis) 는 연인들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2,500의 벌금형에 처해졌는데요. 제이코벨리스는 이 같은 오하이오주 법원 (Ohio Court of Common Pleas) 의 결정이 미국수정헌법 1조 (First Amendment) 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항소심에서도 패했고, 결국 재판은 미국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었지요. 


무려 9명의 판사가 참여한 대법원 재판에서 제이코벨리스는 6대3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요. 6명의 판사는 제이코벨리스가 무죄인 이유에 대해 무려 4개의 각기 다른 의견을 펼치는 진풍경을 벌였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포터 스튜어트 (Potter Stewart) 판사의 의견이었는데요. 그는 미국 헌법은 노골적인 도색영화 (hardcore pornography) 를 제외한 모든 창작물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며 루이 말 감독의 작품은 도색영화가 아니므로 외설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도색영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은 스튜어트 판사에도 무척 어려웠던지 그저 “보면 안다” (I know it when I see it) 라는 말로 대신했고 이 말은 훗날 많은 법학도에게 회자되며 유명해졌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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