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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세 번째 이야기 – 공간의 새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6-24 19:51

루마니아가 낳은 현대조각의 선구자 브란쿠시 (Constantin Brancusi) 를 아십니까? 


그는 사물의 본질을 지극히 단순한 선과 형태, 그리고 재질로 표현했는데요. 기존의 조각가들이 대상을 최대한 똑같이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단순하면서 추상적인 그의 작품은 놀라운 생동감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특히 1923년 작 “공간의 새” (Bird in Space) 는 200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조각품으로는 최고가인 US$27,450,000 에 거래되어 화제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미술품도 한때는 그저 별볼일 없는 쇳덩이 취급을 받았는데요. 1928년 있었던 Brancusi v. United States 라는 재판은 아직까지 현대미술사에 유명한 사건 중 하나로 회자됩니다. 


1926년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브란쿠시는 뉴욕에서 전시회를 갖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작품 20여 점을 증기선 파리호 편으로 뉴욕 항으로 보냈습니다. 이 중에는 “공간의 새”도 있었지요. 


브란쿠시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이 공간의 새도 추상적이기 그지없었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보기엔 그저 140cm 남짓의 길고 매끈한 청동 덩어리였을 뿐이었지요. 


문제는 세관조차 이 작품의 예술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술품에는 관세가 붙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세관은 공간의 새를 평범한 금속제품으로 분류하고 관세를 매겼습니다. 관세는 요즘 돈으로 US$3,000가 채 되지 않았지만 브란쿠시를 비롯한 많은 미술가들은 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관의 결정에 항소하였지요. 


수많은 미술계의 권위자가 증인으로 참석한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과연 공간의 새가 미술품인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관세법 (1922 Tariff Act) 에 따르면 미술품으로 면세를 받으려면 일단 실용성이 없어야 하고 (no practical purpose) 직업 미술가가 만든 미술품의 원본 (original work of art made by a professional artist) 이여야 했습니다. 


공간의 새가 미술품 이외에 아무런 용도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또한, 브란쿠시는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의 현대 미술전인 아모리 쇼 (Armory Show) 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미술가였습니다. 결국, 쟁점은 공간의 새가 “미술품의 원본” (original work of art) 이냐 하는 것이었는데요. 


사실 브란쿠시가 만든 “공간의 새”란 작품은 여러 점이었습니다. 브란쿠시는 20여 년에 걸쳐 날고 있는 새란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고 이 중 많은 작품에 “공간의 새”란 똑같은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데요. 같은 주제와 같은 제목으로 여러 작품을 남기는 일은 옛날부터 비일비재했으니까요. 


남은 단 하나의 쟁점은 과연 브란쿠시의 작품이 미술품 (work of art) 이라 불릴만한 미적 가치가 있는지 하는 것이었는데요. 수많은 미술계의 권위자가 증인으로 나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지만, 미술품의 미적 가치를 법원에서 판결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재판은 브란쿠시의 승소로 끝났는데요. 판결문을 작성한 웨이트 (Waite) 판사는 “공간의 새”에서 새 모습을 찾아보긴 어렵지만 “나름 보기 좋고 장식용으로 훌륭하다” (pleasing to look at and highly ornamental) 며 미술품으로 인정하고 관세를 면제해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의 대가의 명작에 내린 평치고는 수수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요.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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