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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여덟 번째 이야기 – 이튼 센터의 캐나다 거위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5-20 13:37

토론토 다운타운에는 이튼 센터 (Eaton Centre) 라는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쇼핑몰이 있습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에는 한때 캐나다 제일의 백화점 체인이었던 이튼 사의 백화점이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미국계 백화점인 시어스 (Sears) 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99년 부도가 난 이튼 사를 시어스 (Sears) 가 사들였거든요. 


백화점 이름은 시어스로 바뀌었어도 쇼핑몰 이름은 여전히 이튼 센터인데요. 그 이유는 이곳이 바로 이튼 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튼 사의 창업주인 티머시 이튼 (Timothy Eaton) 씨는 1869년 이 장소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마른 식품과 옷가지를 파는 가게를 차렸는데요. 이 가게가 훗날 캐나다 전역에 70,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백화점 체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튼 센터에는 유명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중앙 홀 천장에 매달려있는 수많은 캐나다 거위 (Canada geese) 조각품들입니다. “Flight Stop” 이라는 이름의 이 예술작품은 토론토 출신의 미술가 마이클 스노우 (Michael) 씨가 1979년 설치한 것인데요. 섬유 유리로 만들어진 60개의 실물 크기 캐나다 거위 조각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예술작품은 이튼 센터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Snow v. The Eaton Centre Ltd. 라는 유명한 판례를 낳아서 더욱 잘 알려졌습니다.  


1981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튼 센터는 천장에 매달린 거위 목에 빨간 리본을 달았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보려고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며 즐거워했지만 정작 스노우 씨만은 그렇지 못했는데요. 스노우 씨는 이튼 센터가 자신의 예술품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빨간 리본을 제거하라는 법원 명령 (injunction) 을 신청하지요.   


판결을 맡은 판사는 이튼 센터의 행동이 캐나다 저작권 법 (Copyright Act of Canada) 28.2 항 (section) 에 명시된 작가의 저작 인격권 (moral rights) 을 침해했다고 밝히고 스노우 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저작 인격권이란 저작자가 저작물의 소유권과 상관없이 유지할 수 있는 몇 가지 도덕적 권리를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어 저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원하는 시기에 실명이나, 가명, 또는 익명으로 공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온전함 (integrity) 을 보호 받을 권리가 있는데요. 이는 작품에 수정을 가해 작품성을 해하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작 인격권이 가장 먼저 인정받은 곳은 대륙법을 쓰는 프랑스와 독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작 인격권은 영미법보다 대륙법에서 더 일반적인데요.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아직도 저작 인격권을 완벽히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캐나다는 이미 1915년 형법 (Criminal Code) 개정을 통해 작가의 허락 없이 작품에 수정을 가하거나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을 숨기는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또한, 1931년 저작권 법 개정을 통해 저작 인격권을 인정하고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지요.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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