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쉰다섯 번째 이야기 – 오고포고 케이스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4-29 20:24

캐나다 대법원 판례 중에 “오고포고 케이스” (the Ogopogo case) 라고 불리는 판례가 있습니다. 오고포고는 BC주 오카나간 호수 (Okanagan Lake) 에 출현한다는 괴물로 거대한 뱀장어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사스쿼치 (Sasquatch), 캐드보로사우루스 (Cadborosaurus) 와 함께 캐나다를 대표하는 미지의 괴물입니다. 아쉽게도 오고포고 케이스에 진짜 오고포고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고포고라는 이름의 배가 등장하지요. 


1962년 5월 27일 온타리오 주의 맥라렌 (MacLaren) 씨는 오고포고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배에 몇 명의 친구를 초대해 오크빌 항 (Oakville Harbour) 에서 포트 크레딧 (Port Credit) 으로 향합니다. 항해는 순조로웠고 이들은 배 안에서 맥주와 샴페인을 마시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고는 돌아오는 길에 발생했는데요. 배의 후미에 있던 매튜스 (Matthews) 씨가 실수로 물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배의 뒤쪽에서 누군가 물에 빠지면 배를 유턴하여 구조하는 게 상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황했던 탓일까요? 맥라렌 씨는 배의 엔진을 끄고 후진을 시도합니다. 구조는 더디어졌고 조급해진 호스리 (Horsley) 씨는 매튜스 씨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매튜스 씨와 호스리 씨 모두 사망하고 말았는데요. 이들의 사인의 심장마비였습니다. 바닷물의 차가운 온도가 원인이었던 것이지요. 


매튜스 씨와 호스리 씨의 유족들은 맥라렌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tort)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근거는 과실 (negligence) 이었습니다. 매튜스 씨의 유족들은 1심에서 패소한 후 항소를 포기하였으나 호스리 씨의 유족들은 항소에 성공하여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미법 상의 구조의무 (duty to rescue) 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영미법상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어야 할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경우는 예외인데요. 먼저 누군가를 위험에 빠트린 장본인은 반드시 그 사람을 구조할 의무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특별한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 구조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방관이나 경찰관과 같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과 위험에 빠진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또한, 부모와 어린아이 사이에도 특별한 관계가 존재하지요. 특별한 관계는 부부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으며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맥라렌 씨를 상대로 호스리 씨의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맥라렌 씨와 호스리 씨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맥라렌 씨가 호스리 씨를 자신의 배로 초대한 이상 위험에 빠진 호스리 씨를 구조할 법적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구조에 나선 사람은 자신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즉 합리적인 사람 (reasonable person) 의 기준에 어긋나는 구조활동을 했다면 자신의 실수에 책임을 져야 하지요. 


호스리 씨의 유족들은 맥라렌 씨가 물에 빠진 호스리 씨를 구하기 위해 배를 돌리는 대신 계속 후진을 시도함으로써 구조가 늦어졌다는 점을 들며 맥라렌 씨의 과실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을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맥라렌 씨가 후진을 시도한 것이 합리적인 사람의 기준에 비추어보아 과실이 아니었으며, 설령 배를 돌려 구조를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호스리 씨의 사망 원인이 차가운 물에 의한 심장마비였음을 고려하면 그의 목숨을 건졌을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