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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이야기 – 위험범위 (Zone of Danger)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04-01 17:52

1924년 8월 24일 미국 뉴욕주의 롱아일랜드 (Long Island) 기차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헬렌 팔스그래프 (Helen Palsgraf) 여사는 두 명의 딸과 함께 인근의 롸커웨이 비치(Rockaway Beach)에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기차 한 대가 출발하기 시작하고 두 명의 승객이 그 기차를 잡기 위해 뛰어 왔습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기차에 그들을 태우기 위해 두 명의 역무원이 돕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은 기차 위에서 그들의 잡아끌었고 다른 한 명은 플랫폼에서 그들을 밀어 올렸습니다. 이때 간신히 중심을 잡던 한 명이 무언가를 떨어트렸고 그 물체는 거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폭죽이었습니다. 물론 그 승객이 폭죽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역무원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요.
 
승강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폭죽 자체의 화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밀집된 사람들이 좌충우돌하면서 많은 부상자가 나왔는데 팔스그래프 여사도 그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팔스그래프 여사는 승강장의 반대편 끝에 서 있었는데 폭발 때문에 다친 것이 아니라 난리법석 중에 쓰러진 무거운 쇠 저울에 깔리면서 다쳤습니다. 이때 그녀는 팔과 둔부, 허벅지 등에 상처를 입었고 나중에는 충격 때문에 언어장애까지 호소했습니다.
 
팔스그래프 여사는 뉴욕주의 1심 재판소(New York Supreme Court)에서 롱아일랜드 철도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하였는데 근거는 두 역무원의 과실(negligence)이었습니다.
 
처음에 롱아일랜드 철도 회사는 이 소송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팔스그래프 여사가 이 소송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무원의 행동이 과실이었다는 것을 밝혀야 할 뿐만 아니라 역무원의 과실과 팔스그래프 여사의 부상 사이에 인과관계까지 밝혀야 했는데 둘 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던 거지요.
 
하지만, 1심을 맡은 판사는 판결을 배심원에게 맡겼고 배심원은 팔스그래프 여사의 손을 들어주며 롱아일랜드 철도에게 $6,000를 배상할 것을 명령합니다.
 
당황한 롱아일랜드 철도는 곧바로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도 지고 말았고 결국 뉴욕주에서 가장 높은 법원인 항소법원(Court of Appeal)에 항소하기에 이릅니다. 총 7명의 판사가 내린 항소법원의 판결은 4대3으로 롱아일랜드 철도의 승리로 끝나는데 그 이유를 카도조 (Cardozo) 판사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과실이란 피고가 원고에게 어떠한 잘못 (wrong) 을 저질러서 피해를 주어야 성립이 되는데 예측불허한 피해에 대해서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할 수 없다. 즉 과실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원고 자신이 예측 가능한 위험범위 (Foreseeable Zone of Danger) 내에 있었어야 한다.
 
카도조 판사의 논리에 따르면 출발하는 기차에 승객을 탑승시키려는 행위가 플랫폼 반대편 끝에 서 있던 팔스그래프 여사에게 부상을 입히는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팔스그래프 여사는 예측 가능한 위험범위 밖에 있었고 역무원들은 팔스그래프 여사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엔드류스(Andrews) 판사는 다음과 같은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
 
만약 우리가 브로드웨이(Broadway)를 무모한 속도로 운전한다면 그건 누가 다치던 그렇지 않던 과실이 맞다. 즉 과실이란 대상에 상관없이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 봤을 때 불필요한 위험을 일으키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즉 역무원들이 출발하는 기차에 승객을 탑승시키려고 한 것은 누구에게 피해를 줬던 그렇지 않았던 그 자체로 위험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과실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역무원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폭죽은 떨어지지 않았을 테고 그랬으면 저울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역무원의 행동과 팔스그래프 여사의 부상 사이의 인과 관계 역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심도 있는 의견은 이 판례를 오늘날 영미법에서 가장 중요한 판례 중의 하나도 만들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이 재판의 판사였다면 어떠한 판결을 내리셨겠습니까?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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