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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고등어 한 토막에 얽힌 사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0-01-15 00:00

미세스김은 낮에 볼일을 보려 나갔다가 오는 길에 마켓에 들려 저녁 찬거리를 사기로 했습니다.

이것 저것 둘러보다 갑자기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반짝세일 한다는 안내 방송에 귀가 솔깃하여 생선부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보기에도 아주 먹음직스러운 싱싱한 고등어가 “어서 나를 사가시오!” 하듯 미세스김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녁 반찬으로 무우 숭숭 썰어 넣고 고등어 조림 하기에는 제격이라 생각되어 제일 실한 것으로 골라 행복한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으로 와서 오자마자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고등어조림은 미세스김의 18번 요리이자 남편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합니다.

아주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고등어조림 냄새에 갑자기 시장기가 확 몰려왔습니다. 낮에 볼일보느라 바빠서 점심도 걸렀기 때문입니다. 냄비 안에서 맛있게 유혹하는 고등어 한 토막을 먹고 싶어졌습니다. 먹을까 말까 망설이며 갈등하다가 늘 그랬듯이 결국 포기하고 아침에 먹다 남은 반찬으로 대충 시장기를 때우면서 자신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등어 한 토막도 마음대로 못 먹는 지금의 내 자신과 예전의 지난 일들에 대하여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맥도날드에 가도 자신은 배를 쫄쫄 곯아 가면서도 아이들만 사주고 자신은 집에 와서 찬밥과 김치로 대신하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장성한 지금, 어쩌다 집에서 피자를 시켜도 엄마 몫은 어느 날부터인가 아예 없게 되었습니다. 항상 “괜찮다.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라” 는 엄마의 이 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이젠 엄마에게 같이 먹자고 권하지도 않게 되었고, 가끔 남편의 밥상에 생선구이가 올라와도 머리와 꼬리 부분만 미세스김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남편도 같이 먹자고 권하더니 이제 엄마, 아내는 그런 것 못 먹는 사람으로 낙인 되어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그럴 때면 한편으로 가족들에게 서운한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또한 어쩌다 마음먹고 내 옷 하나 장만하려 쇼핑을 가도 결국은 남편과 아이들 옷만 사오게 되는 자신이 후회가 되면서도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자신을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신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게 되면 죄책감 마저 들어 마음이 편치가 않았고 어린 시절 내 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듯이 내 자신이 한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교류분석(TA: Transactional Analysis) 에서는 인생을 한편의 드라마와 같이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역할을 각본(script)이라고 합니다. 이 각본은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고 발달하며 인생 경험에 의해 강화됩니다. 각본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 결혼, 취업, 진학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숙명 또는 “내 팔자려니!” 하고 운명이라 체념한 것이 실은 무의식적 세계에서 강박적으로 연출하고 있던 드라마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각본분석은 자신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각본을 연출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비 건설적인 각본을 고쳐 씀으로써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참된 건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위 사례 미세스김의 인생각본(life script)을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미세스김이 항상 자신을 희생하며 사는 것이 자신만의 가족사랑이라고 해야 될까요? 가족들이 미세스김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미세스김은 왜 이런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 할까요? 앞으로 어떤 각본으로 살아가야 가족들과 자신에게 좀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 될 수 있을까요?

미세스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친정어머니는 위로 내리 딸 셋을 낳고 마지막에 겨우 막내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중 셋째 딸인 미세스김은 “네가 남자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말을 친정에서부터 아주 귀에 달고 살았고 남동생인 막내는 정말 애지중지하며 맛나고 귀한 음식이나 소중한 것은 모두가 남동생 차지였습니다.

이 경우 교류분석에서는 거딩(Goulding)의 12가지 금지령 중에 “남자(여자)여서는 안된다” 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금지령(injunction)은 각본의 기본이 되며 어린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이를 금지시키는 것입니다. 부모의 욕구 불만이나 자기애, 감추어진 욕망 등 주로 부정적이고 불공평한 상황에서 발신되는 메시지입니다. 

미세스김의 경우처럼 부모가 바라지 않은 성으로 태어난 경우, 성적 통일성을 부정하고 정체성에 혼란이 오며 “난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 라는 무가치 등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린 시절 이런 금지령에 묶여 살아왔던 것이 미세스김의 결혼생활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타인을 기쁘게 하라!” 는 대항지령에 너무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즉, 가족각본 속에 너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 는 각본에 얽매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미세스김은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으로 잘못된 각본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더 생각하고 내 자신을 채워가는 훈련을 통하여 이 금지령에서 해방되어 자주적인 삶을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내가 중심이 되고 내 자신이 기쁘고 행복해야 우리 가족들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세상에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사랑도 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가족들도 햄버거, 피자, 생선구이를 오손도손 함께 즐길 수 있는 엄마와 아내를 원할 것입니다.

가족이란 한 편의 따뜻한 드라마처럼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며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 즉 한 조각만 없어져도 완성된 그림이 되지 않는 퍼즐처럼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가장 소중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미세스김이 그 동안 가지고 살아왔던 각본을 이제 다시 고쳐 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 각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자신의 인생각본을 어떻게 쓰며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김순옥    전문심리상담 카운셀러 (CMC)/TA전문카운셀러
밴쿠버 아름다운 상담센터/다문화교육심리연구소
전화 (604)583-6568, 626-5943
밴쿠버 아름다움 상담센터 에서는 매주 우울증(화요일)과 실버정신건강(수요일) 워크샵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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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아름다운 상담센터 ‘마음’칼럼
  칼럼니스트: ‘마음’칼럼
  • BC주 임상카운셀러 협회의 등록회원을 중심으로 김미라 소장을 비롯한 10명의 심리상담 전문 카운셀러로 이루어진 한인 최초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문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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